유신의 산물, 미국의 명예 문화, 그리고 N번방
모든 현상과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문화적 기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 한 가지 양태를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삼는 일은 ‘참새의 해로움’ 만큼이나 위험한 입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앞에 버젓이 드러난 문제 있는 문화를 모른 척하고 무시하는 일은 더 위험합니다. 특정 집단에 의한 폭력이 관성적으로 용인되어왔던 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렇겠지요.
2020년입니다. 세기말, 세기 초(밀레니엄)라는 말이 어색해질 만큼의 시간입니다. 숫자는 간혹 굉장한 진보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줍니다. 괜찮은 미래가 다가온다는 희망찬 예측과 다르게, 예상치 못한 시대착오적 현실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현재 혼란함의 근원을 알기 위해 가까운 곳을 파헤칩니다.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가끔은 비슷한 모양의 오래된 이야기에 천착해 살펴봐도 좋겠지요. 이것은 오래된 원시적 습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제작했습니다. 1978년, 42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현재는 떡볶이와 옥상으로 따라와 그리고 우유를 누가 던졌는지... 뭐 그렇고 그런 밈들이 남아 더 유명해진 영화이지만, 영화는 개의치 않고 하나의 주제를 뚜렷이 제시합니다.
Sequence 1978 : 폭력이 폭력을 낳고
영화는 ‘충성’을 외치며 들어오는 주인공의 첫 등교를 얼차려로 장식하며 시작합니다. 한 줄로 여럿 엎드려 몽둥이질을 당합니다. 머리가 길면 가위로 곧장 서걱서걱 잘라주니 참으로 경제적인 학교입니다. 아무튼.
모든 수업은 매질과 함께 합니다. ‘매’라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체벌합니다. 와중에도 있는 집 학생들은 번번이 매질을 피합니다. 학생들의 인격을 벌레만도 못하게 짓밟는 교육자의 위선과, 숱한 불의를 저지르는 부패한 학교의 폭력은 곧바로 학생들에게 전달됩니다. 선배가 후배를, 힘 있는 동급생이 약한 동급생을, 부유한 학생이 가난한 학생을 상대로 폭력을 행해 서열화를 이끕니다. 감성적 소년이던 주인공 현수도 악에 저항하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핑계로 폭력에 친숙해지며 악인이 되어갑니다. 그의 잔인함은 점차 악랄한 교사들의 모습과 닮아갑니다.
“학교에서 뭘 가르치길래...”는 요즘도 심심치 않게 듣는 말입니다. 비단 학교뿐만이 아닌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공간에서 통용되는 말이겠지요. 강압과 권위주의적 습성이 교육이라는 도덕적인 명목으로 행해질 때, 그 대상에게 보다 거리낌 없이, 효율적으로 스며듭니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목적으로부터 정당화된 폭력성은 강자에게서 약자에게로 내리 물림 된다는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력의 외형은 일차원적이지만, 그 속에는 나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고 올라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비열한 심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불합리적 지침 아래에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교사의 비겁함을 폭력으로 이어받은 학생들이 다시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폭력을 전달합니다. 폭력은 학교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모습이었고, 동시에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었습니다.
정리하면, 현수를 악인으로 만든 이면에는 폭력적 교육이 있었고, 그 뒤에는 불합리한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단계 시야를 넓히면 그 모든 악습의 기저에는 사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접하는 환경이 당신을 만듭니다
「아웃라이어」에서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은 ‘명예 문화(culture of honor)’를 소개합니다. 명예 문화는 다른 무엇보다 명예를 중요시 여겨, 자신(주로 남성)의 명예에 흠을 내는 행위에 공격적 행태를 보이는 문화를 말합니다. 명예 문화는 주로 고도가 높고 농업보다 목축업을 종사자가 많은 지역에서 자리 잡습니다. 특성상 공동체에 의존하는 농부들과는 다르게, 목축업 종사자들은 홀로 동물을 지키는 수동적인 역할에 열중해, 타인에게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배타적이고 공격적 성향을 가집니다. 척박한 환경이 정서적 불안을 만들어내는 사례입니다.
명예 문화에 익숙한 지역 출신(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이 주로 살던)의 이민자들 비율이 높은 미국 남부는 아직까지도 명예 문화가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저널리스트 호딩 카터는 미국 남부 배심원 시절의 경험을 전합니다.
“욱 하는 성격의 신사는 주유소 주변을 얼쩡거리는 건달들과 손님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우롱을 당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이들에게 총탄을 날렸고 이로 인해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배심원 가운데 유죄에 한 표를 던진 사람은 나(카터)밖에 없었다. 배심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가 그 작자들을 쏘지 않았다면 남자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명예 문화가 만연한 미국 남부 사회에서는 타인을 향한 폭력, 심지어 살인이 상황에 따라 참작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개인의 폭력적 행위를 사회가 방관하고, 일부 용인해 준 측면이 있던 것이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 말기, 1978년은 유신의 중심이었습니다. 곳곳에 태극기가 넘실거렸고, 윗동네와 비슷하게 ‘그’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유신을 선전하는 교육을 받았죠. 군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교련> 과목을 담당했습니다. 이 수업은 안보의식을 기르고 전쟁을 대비하겠다는 목적, 즉 학생을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제식훈련과 총검술, 신나는 반공교육 등을 진행했습니다. 참고로 제국주의 일본은 2차 대전 막바지에 소년병을 양성했습니다.
일제 만주군 출신 대통령은 사회 전체를 병영처럼 집단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제도, 향토예비군, 국가재건 국민운동, 민방위대 등을 도입하며 국가의 의한 통제를 행정의 말단까지 영향을 끼쳤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남산’으로 대표되는 중정, 보안사 등의 억압적 국가기구를 이용해 폭력적 탄압으로 짓밟았습니다. 반공을 기치로 내건 권위적 기구들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 ‘나도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었고, 이윽고 폭력의 공포가 사회를 완전히 뒤덮었습니다. 사회적 병영화, 즉 사회를 군대와 같은 환경으로 조성하는 문화가 시대에 깊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군대는 사회를 투영한다
권위적 군사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사회의 악습은 군대의 그것과 닮아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하면 된다’는 정신력 개념의 오용, 결과 위주의 황금만능주의 등 군사문화의 잔재는 사회의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앞서 보다시피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한국 남성들의 ‘집단적 남성성’입니다. 사회적 병영화를 거치면서, 완전한 규율의 공간인 군대는 사회 지도층에 의해 우상화되었습니다. 군대의 우상화는 특히 당위적 이유로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에게 더욱 그 영향이 잘 나타납니다.
한국에서 군대는 구세대적인 폭력의 온상으로 여겨지는 한편, 역설적으로 성인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한 통과의례, 일종의 성인식으로 인식됩니다. 다른 두 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보통 한 사람이 군대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늘어놓으면서도 ‘안줏거리’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수단이 되거나, 규칙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군대를 다녀와서 좀 맞아야 사람 되겠네’라는 말을 흔히 건네듯 말이죠. 폭력성의 폐단과 규율의 이점은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영향입니다.
또한 성별 조건만으로도 징병 대상에 오르니, 사회적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성이라는 특질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유명인의(혹은 그들의 자녀) 군필 여부는 한국에서 부패와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등 각 분야별로 군필 여부로 공정성 논란이 빚어져 사회적 이슈가 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으로 때로는 징병이 여성들을 향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남성 문화 헤게모니의 중심에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의 특징인 폭력성과 규율, 보편성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특징을 투영합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거나 군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더라도, 군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악습의 대물림
여성학자 권인숙 교수는 <징병제하 인권침해적 관점에서 군대문화 고찰>을 통해 한국 군대 문화에서 ‘남성연대적 성문화’와 ‘여성성의 차별’을 지적합니다.
군대에서 군인으로서의 가치는 남성성의 기준과 동일시되어, ‘남성답지 못함’을 ‘군인답지 못함’으로 여겨집니다.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군인들은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불안함 속에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거나 극복하려 합니다. 이에 대립되는 지점에서 여성성에 대한 혐오가 드러납니다. 군인의 기질에 반하는 모든 특성을 여성성으로 간주하고, 여성성을 부정합니다. 남성성의 정도가 (반대로 여성성의 부정 정도는) 서열이 되는 위계가 명확한 집단인 군대에서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유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서열상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남성성을 어필해야 하는 공간에서 성과 관련된 주제는 남자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 관련한 표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유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 여성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됩니다. 권 교수는 이와 같이 남자만의 친밀감 확립이라는 명분 속에 성폭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성연대적 성문화는 군대 밖에서 2020년을 보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면입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 김학의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버닝썬 사건, 남성 연예인들의 불법 촬영·영상 공유 등 기득권 남성들의 성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이 사건들은 가해자 남성 집단의 이권이나 연대를 위해 여성을 도구화, 상품화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남성성을 입증하려 여성혐오 성향을 띄는 군 문화와도, 유신 시대 학교의 약자를 향한 폭력성과도 비슷한 형태를 드러냅니다.
권 교수는 군대 내 남성집단의 인권침해적 문화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군대 외부에서도 동일한 성질의 악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군대 내 남성집단의 ‘비뚤어진 남성성 지향’은 비단 군대만이 아닌, 사회 전반에서 군대와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앞서 제시한 문화적 유산의 전이가 한국 남성들에게도 원활히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볼 만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그 실체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유산의 전이
다시 미국 남부의 명예 문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90년대, 미시간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명예 문화와 관련한 실험을 했습니다.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하고, 복도 끝에 질문지를 놓고 오면 되는 간단한 실험입니다. 그러나 질문지를 놓고 돌아오는 복도에서, 한 남자가 그들을 어깨로 치며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합니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실험 대상 중, 남부 출신 학생은 공격성과 흥분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졌고, 이후 실험에서도 대부분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북부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 무난히 넘어갔습니다.
그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모든 미국 남부의 사람들이 다혈질적인 성격을 지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험 또한 단순히 그들이 ‘폭력적인 사람들이다’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남부 지역 출신의 특이하고 일관적인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요소인 명예 문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험에 참여한 남부 출신 실험 대상들은 목동도 아니었고, 목동처럼 경제적으로 냉혹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위 실험은 앞서 설명한 ‘명예 문화에 존속된 남부 사회’ 이후 100년도 더 지난 후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정서적 특성은 명예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한국과 미국, 20세기와 21세기를 오가며 품은 질문에 대해,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문화적 유산의 힘은 강력하며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오래도록 지속된다. 또한 문화적 유산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탄생시킨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소멸된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나아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Sequence 2020 : 한국적 문화유산, N번방
n번방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새롭지 않은 새로운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남성집단 내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보이기 위한 방식으로 여성을 상품화했습니다. 길거리의 ‘아가씨, 도우미’ 간판, 카톡 대화방의 ‘얼평’과 ‘몸평’. 남초 커뮤니티의 성희롱과 궤를 같이 합니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여태껏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던 문제들입니다. 한국 남성집단 곳곳에 머물러 있는 성 상품화입니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해서 꾸준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남성들이 가해자는 아니다.” 당연히 모든 남성들이 성폭력의 가해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성집단의 역사가 여성혐오와 함께 해왔고, 그 성질이 하위 계층으로, 아랫세대로 전이되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남성집단의 폭력적 남성성은 사회의 고위층, 권력자들에게만 존재하는 특수성이 아닙니다. 학교 교육과 같이, 군입대 대상과 같이 모든 남성 사회가 가진 보편성입니다. 미국 남부의 명예 문화는 지역에 깊숙이 침윤해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문화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비호를 받고 자라난, 여성을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혐오하는 ‘왜곡된 남성성’은 ‘26만 명’이라는 숫자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 남성집단의 문화적 유산입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봐 온, 특정한 누군가를 악인으로 인식하고 덮어두는 문제 해결 과정은 가장 간편하고 빠른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문제 해결의 근본적 단초가 될 수 없습니다. 남성집단 내부의 환경적 갱생이 있지 않는 한, 남성집단의 악습은 영원히 존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성이 깨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어온 ‘왜곡된 남성성’을 남성집단 내부에서 성찰하고, 지적해야 합니다. 이토록 한국적인 문화유산이 또 다른 비극을 거듭해 피해자를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군사독재와 반공주의, 그리고 우리 안의 군사문화>, 조현연
여성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하지율, 오마이뉴스
<징병제하 인권침해적 관점에서 군대문화 고찰>, 권인숙
「개발 독재와 박정희 시대: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서익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