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시작하며 가장 큰 도전은 역시 사람들과의 식사시간이다. 우리 회사에는 한 주에 한 번 팀장님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있는데, 채식을 시작하며 이 시간이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다. 채식 시작 6일째에 바로 그날이 왔다. 매번 미리 걱정하는 성격인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수차례 대화를 구성해 보았고 갈만한 식당도 물색해 두었지만, 사는게 늘 그렇듯 의외의 상황과 마주 했다.
내가 채식을 한다고 말하자, 가장 걱정하던 비판자였던 A 팀장님이 사실은 채식을 지향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반가이 자신의 채식 철학을 정리해둔 글을 내게 소개해준다. 그도 나와 비슷했다. 동물해방을 읽었고 지난 몇 년간 페스코(어폐류까지는 먹지만 소, 닭, 돼지등의 붉은 육류는 먹지 않는 채식)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무엇보다 채식을 해야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은둔형 채식을 해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식의 선을 적절히 타협하고 있었다.
한 시름 덜었다고 해야 할까. 막상 마주하고 보니 별거 아닌 일로 끝났다. 우리는 근처의 허름한 한 식당에서 강된장에 밥을 맛있게 비벼먹었다.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였던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A 팀장님이 정리했던 자신의 채식 철학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대목이었다. 은둔형 채식의 이유를 자신의 소박한 신념이 알량한 것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해야 할 때는 채식을 드러내기보다는 무엇이든 맛있게 먹겠다고 했다. 이것은 대단히 공감되면서도 가슴 아픈 말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흔히 잘못된 채식주의의 형태중 하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며 비채식인들을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깎아내리는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의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주의를 현재의 답보상태에 이르게 한 데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를까 늘 의식하곤 했다.
그러나, 여기 이와는 다른 형태의 채식주의자들이 있다. 자신들이 소수자임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채식인과 비채식인의 구도에서 누군가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채식주의에서 내가 늘 감탄하는 것은 그것이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공감능력은 너무도 훌륭한 나머지 인간이라는 종의 선을 넘어선다. 그런데, 때로는 바로 그 대단한 공감능력이 자신이 함께 식사해야 하는 타인에게 이르러 자신의 목을 조인다. 나의 채식이 그들의 식사권을 제한함으로써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도, 나 역시 그러한 부분이 가장 난관이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슴 아프다.
반면, 동시에 그런 가슴 아픔과는 상반되는 감정 하나도 짙게 남았는데, 그건 불편함이었다. 나는 평소에 상대적으로 높은 직책을 가진 A 팀장님을 늘 의식하곤 했는데, 그가 스스로에게 쓴 채식의 철학을 읽으며 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가 자신의 신념을 내게 요구한다고 느꼈다. 즉, 나 역시 채식을 하되 그것이 적당히 타협하는 채식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동체 - 회사 - 가 개인보다 우선 하므로, 개인의 신념을 내세우기보다는 회사가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은 숨기고 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비록 이게 A 팀장님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을 지라도 충분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많은 채식주의자와 소수자들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채식은 다수자와 소수자의 문제이고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다. 채식주의자 대부분은 다수가 무지했거나 묵인해온 폭력에 나 하나라도 기여하지 않겠다며 시작한다. 하지만 비록 시작은 개인적인 이유였을지라도 우리를 채식으로 이끌었던 그 생각을 전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에 그 모든 고통의 사슬을 끊기에는 나 하나의 영향이 너무 미미하다. 스스로만 도덕적으로 훌륭해지는 것이 진정 조금이라도 도적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채식을 향해 움직이기로 한 순간 우리는 그것이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게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작이 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움직임을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고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움직임을 개인으로만 한정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사실 우리 삶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우리 일상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개인들이 각자 믿는 것들을 서로 홍보하고 강화해 가는 것의 연속이라고, 다만 상대를 설득하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그렇게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