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채식을 시작한지 12일 만에 고기를 먹게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채식을 지향하는 팀장님과의 단둘의 식사시간이었으나갑자기 우리 팀원들 모두도 함께 한다. 그런 예상치 못한 단체 식사자리에서 채식을 내세우기는 어려워 그룹이 정하는 메뉴를 따라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지나치게 육식위주의 식당만 거절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타이음식점을 방문하게 되었고 여기서라면 비건은 어려워도 락토나 페스코 정도의 식단은 유지할 수 있겠지 했다. 나는 이름부터 채식하고 가까울 것만 같은 그린카레를 시킨다. 메뉴의 사진에도 녹색의 국물이 전부인듯 보인다. 하지만 또 다시 예상을 빗나간다. 카레에 숟가락을 담그자, 나의 식욕을 자극하는데는 실패한 짙은 녹색의 액체 속에 닭고기 덩어리가 떡하니 들어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그냥 먹어야만 했다. 채식을 하자고 음식 쓰레기를 만드는건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될 뿐이다.
그나마 붉은 육류가 아닌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닭고기의 육수가 모두 빠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육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인지, 카레 속의 닭고기는 단물이 다빠지도록 오래 씹은 껌을 질겅질겅 씹는 느낌이다.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할 무언가를 씹다 삼킨다. 소가 사료를 먹는 느낌이 이러할까.
즐거워야 할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가 별로 즐겁지 않게 되었다. 무얼 위해 나는 채식을 시작했던가.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내가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채식 12일만에 고기를 먹은 사실도 아니고, 음식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 자리를 돌이켜보면 내가 채식 12일 만에 고기를 먹게되었단 사실을 모두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나는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었고, 모두들 내가 채식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망각한 것인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원래 사람들은 타인의 일엔 무감각하기 쉬우니까. 나 역시 종종 무관심하곤 하니까.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12일 만에 드디어 고기를 먹네요" 하며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나는 나의 채식과 고기에 대한 거부감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채식과 채식이 주변에 끼치는 불편에 대해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농담하듯 한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들 그들이 크게 불편해 했을까. 오히려 공감대를 끌어내고 함께 나눌 화제거리를 만들고, 그 자리의 최초 목적이었던 사람들과의 교류에 더 기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자리의 기억은 내게 좋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나는 채식에 대한 태도에 힘을 좀 빼야 한다. 나는 대단히 힘든 길을 걷기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즐거움이고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항상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을 하기로 한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을 쉽게 말하듯 채식도 별거 아닌듯 툭하고 내 감정과 취향을 드러내기로 한다.
내 채식의 본질은 내가 채식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채식을 보이지 않게 슬며시 전파하는 것임을 상기한다. 내가 일회성으로 고기를 먹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내가 채식을 비채식인들에게 익숙하게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