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예쁜 젤라토[Gelato]
아주 하찮은 일들이 종종 소중한 기억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기억들은 무제한으로 통용되는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또 다른 기억들과 함께 힘을 부여하는 마법을 지닌다. 그 자체로 살아있는 거대한 역사를 품고 있는 낯선 도시나, 아름다운 건축물, 과거의 예술품들을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일에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 또한 혼자만의 여행길에 오른다면 으레 좋은 음악을 들으며, 미술관이나 도서관에서 명화들과 장서에 푹 파묻히는 것을 택하겠지만, 그런 거대한 사건이 주는 경이로움 보다는, 우연히 선택한 작은 사건들이 기억 속에서는 어쩌면 더욱 특별한 광채를 빛내며, 권태로운 일상의 숨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찾게 해 주기도 한다.
어렸을 적, 아이들의 혼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온갖 것을 파는 초등학교 앞 문구점이나, 집 근처 작은 동네 구멍가게라던가, 가끔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섰던 재래시장 안의 최신식 슈퍼마켓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왔던 떼쓰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가게 안이나 가게 문 옆에서 요란한 굉음을 내며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있는 냉장고에는, 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차갑고, 시원하고, 더위를 잠시 잊게 해 주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 이글거리는 한여름에도, 그 냉장고 안에 있던 아이스크림이란 것에는 전혀 눈이 가지 않았더랬다. 심지어는 초콜릿이며, 사탕, 젤리, 캐러멜 등, 이런 달달함의 전유물들 조차도 나의 작고 어린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었다.
그 달달한 것들이 입안으로 들어가 혀를 자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달금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면서, 마치 눈으로도 그 달근달근함을 맛보는 것 마냥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마침내는 뇌가 그 달콤함을 감지하는 찰나, 얼굴 한 가득 행복에 겨운 미소를 머금는 어른들이나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린 마음에서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맛의 세계였다.
"전 오늘 아주 유쾌하기 그지없는 한때를 보내고 왔어요.'유쾌하기 그지없다'는 건 바로 오늘 배운 새로운 말인데요. 아주 그 느낌이 잘 나타나 있죠? " – 빨강머리 앤 中 –
정말 그랬을까? 아이스크림 하나에 대한 기대감이 안겨준 하루에서 충분히 '유쾌하기 그지없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한낮의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으로 인해 주위 모든 건물은 이상야릇한 밝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잎이 무성하게 드리워진 시원한 나무 그늘을 뽐내고 있는 짙은 녹색의 가로수에서는, 2주간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아쉬움을 울부짖는 매미 소리가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매미의 울음소리로 인해 대기의 열기가 몸속 구석구석까지 스며들 지경이었다.
- 아~ 덥다.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 앞에서 네 친구는 그렇게 늘어져 있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녹아버리는 해파리들 마냥.... 더위마저도 찢어버릴 듯한 매미소리를 피해 겨우 안착한 곳이 하필이면 그늘 한 점 없는, 바람의 그림자도 느낄 수 없는 페르가몬 박물관 앞 광장이었다.
- 티어가르텐[Tiergarten]에 가서 수영이나 할까?
짙고 검은 눈썹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굉장히 매력적인 스페인 친구가 참다못해 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다들 그의 제안에 솔깃한 눈빛은 보냈지만, 손끝 하나 움직일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모양인지, 다들 박물관으로 옮겨지기를 기다리는 석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마저도 햇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바닥을 원망하며, 들고 있던 책을 방석삼아 주저앉고 말았다.
- 아... 빙수가 먹고 싶다...
한국 이야기를 좀체 하지 않던 나도 뜨거운 베를린의 여름을 책망하며, 유리처럼 투명한 하늘에 떠 있던 한 점의 구름을 소복이 쌓인 빙수로 상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 빙수??
- 먹는 거야?
- 한국 음식이야?
'빙수'라는 말에 세 친구는 벼랑 끝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차가운 폭포수를 맞은 것처럼, 녹아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두 다 또다시,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신기한 단어'를 들어버린 것이다.
- 빙수가 뭐야???
뜨겁게 달구어진 광장 바닥으로 인해 이미 반숙이 되어버린 나의 입술은 좀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지경인데, 다들 끈질기게 물어보았다.
언젠가 한 번은, 뚝배기 불고기가 너무나 먹고 싶어 친구들을 초대해 손수 만들어 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은 가난한 유학생의 먹성만큼 어찌나 거대하던지, 애타게 먹고 싶었던 뚝배기 불고기는 그렇게 친구들의 비어있는, 혹은 욕심 가득한 배속을 행복하게 해 주었고, 나의 입은 만드는 법이나,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음식들이라던가, 심지어는 쓸데없는 음식궁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뱉어 놓느라, 겨우 고기 몇 점만 먹을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무의식의 반사작용 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이야기, 특히나 한국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 날 베를린의 뜨거운 태양은 나의 무의식까지 녹여 버린 것이다.
친구들의 그 칠 줄 모르는 질문 공세를 피하기란, 베를린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햇볕을 피하는 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이리라 이내 단념하며, 녹아 붙은 입은 그대로 둔 채, 그냥 들고 있던 노트에 그 빙수라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뒤집혀 있는 사다리꼴 네모에 봉긋하게 쌓인 얼음과, 그 위에 소복이 올려진 팥고물, 빙수용 떡과 각종 과일이라고 표현한 형체 불분명한 네모들, 그리고 얼음 속에 깊숙이 묻은 스푼의 손잡이. 하지만 그림을 보던 친구들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 앗!! 젤라토다. 그릇에 담긴 젤라토!!
갑자기 이태리 친구가 너무나 신나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반평생 그림을 그려왔던, 나름 미술학도인 나의 팥빙수 그림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젤라토[Gelato]'라 기뻐하며 허여멀건한 피부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벌겋게 닳아 오른 것도 망각한 안젤리코의 소란스러움에, 당혹스러운 기색조차 내 비칠 틈도 없었다.
- 너희들 8월의 이태리를 느껴볼래?? 8월의 이태리에서 먹어야 젤라토를 제대로 먹는 거야!!
- 으흐흐... 이, 태, 리???
다들, 그리고 나 마저도 '이태리'라는 말 한마디에 베를린의 뜨거운 여름을 매몰차게 버렸다.
- 자, 그럼, 젤라토 먹으러 로마로 가 볼까??
그해 여름은, 그렇게 '젤라토[Gelato]'라는 새로운 존재를 만난 여름이었다.
젤라토[Gelato]
젤라토[Gelato]
이 이름만큼이나 요상한 아이스크림은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은 젤라토로 통한다. 과즙이나 과육, 우유, 설탕, 때로는 커피나 향초 등을 섞은 것을 얼려 만드는 이탈리아만의 아이스크림. 그것이 바로 젤라토인 것이다.
"겔라투스[Gelatus]"라는 라틴어에서 어원을 두고 있는 젤라토. 이태리 어로 "얼린"이란 뜻을 가진 젤라토.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아이스크림 그 자체를 젤라토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면 "젤라테리아[Gelateria]"라고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부르고 있다.
젤라토의 기원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1595년 피렌체 메디치 가의 궁정에서 열린 연회에서 "환상적인 소르베티와 젤라티를 먹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문화, 예술, 사회, 경제, 정치도 모자라, 아이스크림까지? 이러니 내가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세력인 메디치가에 관심이 쏟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 확실히 이태리 역사, 아니, 유럽의 역사에서 메디치 가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 분명했다. 그 후 1686년 시칠리에서 첫 번째 아이스크림 기계가 개발되면서 젤라토는 점차적으로 퍼져나갔으며, 특히나 이탈리아의 젤라토 장인들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자신들만의 젤라토 레시피는 그렇게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저 나갔다.
과일 계열의 젤라토는 보통 과즙에 물, 설탕, 계란 흰자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정제도 함께 섞고, 서서히 공기가 들어가도록 저으면서 얼려 만드는 것이라 한다. 그로 인해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해서 녹는 속도도 굉장히 천천히 녹아내리며,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질감과 선명하고 은은한 맛, 그리고 독특하고 화려한 빛깔을 띠게 된다고 하는데, 특히나 밀도가 굉장히 진하면서 맛도 진하다는 것이다.
젤라토를 맛보는 중간중간 얼음 알갱이가 씹히는 경우가 있는데, 최고의 장인이 만드는 젤라토에는 이 얼음 결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도 향미와 크리미함의 강렬한 조화는 온몸 구석구석까지 느껴질정도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요리가 그러하듯, 이 젤라토라는 요상한 이름의 아이스크림 역시 유지방이 일반 아이스크림의 절반 수준으로 저칼로리 디저트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아닌 아이스 밀크류로 분류되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아이스크림이다.
현재에도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장인이 직접 만드는 수제 젤라토 전문점이 많이 있고, 일부 젤라토 전문점에서는 물을 전혀 넣지 않고 과즙만으로 만들기도 해, 과육의 풍부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어, 이탈리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이태리 사람들답게 이태리 볼로냐에서는 젤라토 제조 기술 양성을 위해 "젤라토[Gelato] 대학"도 설립하였다.
이런 젤라토를 맛보러 네 친구는 다음 날 새벽 기차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여름 한낮, 온몸으로 느꼈던 그 열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열차 안에 은은히 퍼지는 냉랭한 냉기를 모공 깊숙이 흡수하면서, 장장 15시간이라는 하루도 채 안 되는 긴 시간 동안을 로마행 기차에 여름을 잠시 맡겼다.
잠자는 시간을 재외하고 연신 떠들어 대는 안젤리코의 젤라토 무용담을 들으면서 각자 맛보고 싶은 젤라토를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그전까지 아이스크림이란 것을 그리 즐길 줄 모르던 난, 안젤리코의 독특한 이탈리아어 억양이 섞인 독일어로 설명해주는 젤라토의 맛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빨강머리 앤 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유쾌하기 그지없다"는 그 맛일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행복한 황홀경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바로 그 맛일까?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미지의 맛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15시간 동안, 대신 독일인처럼 무뚝뚝하고 강하면서 쓰디쓴 커피로 간질거리는 입안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젤라토라...
달의 그림자가 태양을 저 멀리 밀어내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기차는 떼르미니 역[termini station]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의 뜨거운 열기는 베를린에서 로마로 네 친구를 따라나선 모양인 듯, 떼르미니 역을 빠져나온 네 친구를 너무나 반갑게 – 하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 감싸주고 있었다.
보통 혼자서 로마로의 짧은 여행길에 오르면, 떼르미니 역에서부터 숙소까지는 낮이고 밤이고 이성의 끈을 절대 놓지 않은 상태로, 길고양이 마냥 주변의 모든 것에 경계를 풀지 않기 마련인데, 장정 셋을 거느린 그 날만큼은 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집시 무리도, 하이에나 떼처럼 킁킁거리며 먹잇감을 찾는 좀도둑들도 전혀 두려울 게 없었다.
심지어는 역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가로등과 화려한 쇼윈도의 불빛들로 인해, 지금 당장 한 시간만이라도 이 허영과 사랑의 광장에 동참하고, 흥겨움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로마의 들뜬 어둠을 둘러볼 힘이 솟아났다. 떼르미니 역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젤라토의 부드러운 맛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안젤리코의 가족들과 한바탕 요란스러운 아침 식사시간을 보낸 후, 네 친구는 8월 이태리의 열기에 맞서는 본격적인 젤라토 사냥길에 올랐다. 동쪽으로는 빌라 메디치[Villa Medichi]의 근사한 전경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테베레[Tevere] 강 너머 바티칸 시국[Vatican City]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안젤리코의 집 근방을 시작으로, 로마 시내 곳곳에 숨어 있는 안젤리코의 추억이 가득한 젤라토 가게들을 누비고 다녔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늘 지나다녔다던 이름 모를 골목 어느 모퉁이 작은 젤라토 가게라던가, 올곧은 청년기를 보냈던 안젤리코의 학교 앞 오래된 카페 테리아나, 지금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다던 보르게세 미술관 앞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젤라토 가게 등에서, 어린아이처럼 한 손에는 한가득 젤라토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안젤리코의 추억을 헤아리며 시내 곳곳을 만유 했다.
걷다 지치면 산탄젤로 성[Castel sant'angelo]이 훤히 내다 보이는 테베레 강변에 놓인 노천카페에 앉아, 내가 그려 보여 주었던 빙수처럼 생긴 투명하면서도 앙증맞은 유리볼에 담긴 젤라토를 맛보았고, 안젤리코의 극구 만류에도 고집을 꺽지 않은 내가 데리고 간, 어느 여행자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극찬에 극찬을 한 바티칸 사국 입구 근처의 젤라토 가게에서 보기 좋게 실패도 해 보았으며, 100년 전통의 수제 젤라토만을 고집하는 전문점에서 10여분을 고민해 선택한 두 가지 맛의 젤라토도 맛보았다.
나의 상상으로는 절대 그려지지 않는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젤라토의 맛은 연 분홍빛의 피오니 꽃처럼 부드러우면서 달콤했고, 투명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노란 포플러의 눈물인 호박처럼 쫀득거리면서 상큼했으며, 새벽이슬처럼 고요하면서도 뺨이 떨어져 나갈 듯 차갑게 향긋했다. 야릇한 평온함을 느꼈다. 젤라토라고 하는 요상한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여름의 정적이 주는 여유로우면서도 명랑한 품위로 나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교양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로마의 오래된 명소와 볼거리를 쫓아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한 주변이, 마치 그림자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듯 보였다. 잠시만이라도 숭고해지고 싶다는 가엾은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젤라토가 천천히 녹아내리듯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지긋이 관망했다.
- 어때?? 아직도 한국의 빙수라는 음식이 생각나??
짙은 쌍꺼풀 속 8월의 이태리 하늘과도 같은 파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안젤리코가 물어보았다.
- 응 그래도 생각나. 시원한 얼음 알갱이가 아작아작 씹히는 그 맛은 절대 잊히지가 않아.
180cm가 넘는 장신에 매일 수영과 자전거로 다져진 흠잡을 데 없는 체형과, 이탈리아인 특유의 조각과도 같은 시원스러운 미소의 소유자도 순진 무궁한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진한 젤라토의 맛을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음미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조금은 실망한 안젤리코를 보면서 내심 어린아이마냥 낄낄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 하지만.. 넌 말이지..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좋아하게 만든 유일한 친구라는 것은 인정해!!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아이스크림이 젤라토처럼 이렇게 감미로운 맛이라면, 난 아이스크림을 매일매일 사랑해~라고 했을 거야!!!!
네 친구는 하루 종일, 그리고 주말 내내 그렇게 로마의 젤라토 가게들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며, 신나게 젤라토를 맛보았다. 젤라토 먹고 아침 먹고 젤라토 먹고, 젤라토 먹고 점심 먹고 다시 젤라토 먹고, 젤라토 먹고 저녁 먹고, 자기 전 베개에 몸을 묻으면서까지 젤라토를 맛보았다.
로마에 겨우 3일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덕분에 일생 동안 마음속에 간직할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맛의 이미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참으로 큰 즐거움과 만족을 맛보았으며, 여유 있는 분위기에서 로마의 뜨거운 공기를 만끽하였다.
젤라토라는 그 신비로운 맛과 함께 나눈 로마 사람들과의 대화로 인해 나는 그 도시가 정말로 실재하는, 살아있는 대상임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고대 유적지와 중세 대성당이나 궁전 등, 로마의 다른 명소들이 기억에서 더욱더 뚜렷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그것은 예전 여행처럼 관광 안내 책자를 손에 들고 부지런히 명소를 돌아다니는 일보다 더 나은 경험이었고,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로마를 내면에 간직했다고 믿게 되었다.
특별히 계획하지 않고 부딪힌 사소하고 우발적인 체험들이 그 믿음을 한결같이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고, 그런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소박한 여행의 비밀과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본 아름다운 그림들은 잊어버릴지라도, 어린아이처럼 양 손에 탐스러운 젤라토 하나씩 들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친한 친구들과 담소하던 밤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나눈 대화는 별 것 아닌 시시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의 본성과 삶의 작은 한 조각을 배우고, 간직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대화였으리라.
8월... 젤라토의 8월이 하루하루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