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개발기
나는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개발 요건을 보고 회사의 코드를 수정하여 기능을 배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가끔씩은 동료 개발자, 아니 주로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오늘 개발하면서 낑낑거리며 이해한 로직과 프로세스가 당장 내일이 되면 휘발되어 버리는 경험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비루한 인간의 기억력을 탓하기 보다는 내일의 나를 위해서 글을 쓰다보니 불현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는 글을 쓰던 문과생이었지!"
대학생 때의 나는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소위 말하는 문과 출신 개발자이다. 학부 시절에는 주로 정치학, 사회학, 철학 책을 읽고 토론하고 답안을 쏟아내곤 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경제학, 수학, 통계학 수업을 들으며 과제를 제출하고 기출 문제를 풀었다. 각각의 시절에 나를 만났던 주변의 친구들은 내 이력을 신기해하며 나를 별종 취급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그때 충실히 나의 관심사를 따라갔을 뿐이고, 얼떨결에 남들에 보기에 특이한 이력이 완성된 것이라, 주변의 반응에 얼떨떨한 반응을 해왔던 것 같다.
개발에 관심이 있지만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개발자는 코드만을 작성하는 직업이 아니며 글을 쓰는 직업, 오히려 글을 잘 써야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얽히고 설킨 거대한 코드들을 풀어헤처 다른 개발자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요즘에는 코드도 한 편의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수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함께 첨삭을 하기로 약속한 거대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담아 글을 쓰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이력에서 느끼는 생경함도 자연스럽게 풀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개발 사이 사이에 개발과 관련된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컴퓨터 공학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분야이고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끼고 있다. 주변의 물음에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설익은 답변을하고, 임기응변에 감탄하기 보다는 찜찜함을 남기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경험상 찜찜한 코드는 반드시 결정적인 때 문제가 되곤 했다. 문제가 되기 전에 이러한 수요가 남아 있는 일에 나름의 방법으로 응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