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위로하기 어려운 당신에게

프롤로그

by 한꽃차이

말로 위로하는 일이 저만 어려운 건 아니겠지요. 마음을 따뜻이 덮어 주고 싶은데 제 말이 서걱거리는 여름 이불 같을까 봐 망설인 적이 많았습니다. 그저 곁에 있거나 들어 주거나 함께 우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공감쟁이지만, 늘 그럴 수는 없잖아요.


소중한 사람들이 겨울을 만났을 때, 한마디 생각했다가도 아무래도 진심을 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한 말을 큰 알약처럼 애써 삼키면 목에 걸린 듯 까슬했습니다. 몇 번이고 카톡을 썼다 지웠다 했지요.


사람이 위로가 안 되는 인생 터널도 길었습니다. 진심이 좋은 의도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해도 말이라는 필터를 어그러짐 없이 통과해 다른 이의 마음에 가닿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요. 변형 이전의 진심만 남기려고 시간을 제법 들여 거르고 걸렀지만 복원이 쉽지 않았습니다. 불탄 문화재처럼 관계가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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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분면에 끼어 제대로 주지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거주지가 도시 속 무인도일 때 사람 대신 꽃을 만났습니다. 말보다 아름다운 위로를 받았지요. 점차 마음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마음들과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에 서툰 저도 이제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꽃으로, 꽃 일로, 꽃이 스며든 말로.


하필 컴퓨터를 전공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안 어울리는 과에 갔느냐는 말을 매번 듣네요. 사실 사범대에서 수학보다 컴퓨터가 합격하기 안전해 보여 골랐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생각 못 한 거죠. 적성에 안 맞아서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과외와 학원 강사, 교생실습으로 지쳤을 때, 어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가 재미있길래 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교육 담당자로 오래 일했고 30대는 대부분 육아로 보냈지요.


30대 후반에 꽃을 시작했습니다. 꽃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요. 종일 근무와 나이 제한으로 못 한 덕분에 꽃 수업을 하게 됐습니다. 숫자와 각도로 쉽게 가르치고, 자료를 수월히 만들 수 있었지요. 시간과 자본이 없어 꽃집 오픈은 엄두가 안 나다 보니 공간에 매이지 않고 어디든 가서 꽃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육 담당자였기에 담당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육아 경력이야 공감에 필수였죠. 인맥이 없어서 콘텐츠를 쌓다 보니 더 넓고 깊은 세상으로 연결됐고요.


그렇게 ‘없기 때문에’를 ‘없는 덕분에’로 바꿔 가기 시작했습니다. 꽃에게, 꽃을 닮은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3년쯤 지나고 보니 40여 곳에서 천여 명에게 수업을 했더라고요. 32개월 전, 최인아 책방에서 꽃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부끄러워했던 저는 제 꽃을 가득 들고 갔습니다. 꽃집 면접에 떨어졌던 강남역에서 잡지 인터뷰를 했고요. 젊은 날 살았어도 황량한 기억만 남아 있는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제일 예쁜 수업을 합니다. 장소마다 기억 복원은 되지 않아도 꽃 이불로 넉넉히 덮입니다. 마음이 꽃과 사람 사이로 이사 왔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하시니 참 행복하겠어요. 어떻게 꽃 일을 하게 되셨어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더 좋은가요, 덜 좋은가요?”


수강생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호기심이 반가워서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오지랖 최강인 제 수업은 시를 읽으며 시작하고 사진 찍는 법, 리본 묶는 법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인생 사진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메이크업까지 해 주기도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꽃처럼 쥐여 주고 싶던 기다란 대답은 이 책에 담았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꽃만 보이지만 사실 뿌리가 더 크게 존재하듯, 이 대답은 뿌리 끝자락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보여 주고픈 것은 지금의 열매가 아니거든요. 긴 겨울 아름다운 위로에 덮여 보이지 않게 뻗은 마음 뿌리, 햇빛이 막혀도 구불구불 돌아 다른 곳으로 뻗은 줄기입니다. 몽우리가 생기면 꽃이 피듯 마침내 나다운 일을 하게 됐지요. 은인이자 언어인 꽃을 통해 삶을 전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집이 누구나 편하게 오는 곳이 될 때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혼 초 살았던 청파동 골목 15평 빌라에는 사람이 오지 않는 날이 드물었습니다. 백수 동생들의 쉼터였지요. 나중에 대강 세어 보니 그 좁은 곳에 백여 명이 다녀갔더라고요. 지금도 집에 누군가 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신에게도 이 책이 오랜 친구네 집처럼 느껴진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꽃’스러운 글로 소담히 포장한 인생 한 송이 건네고 싶어서 꽃을 곁에 두고 쓴 보람이 있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설거지하겠다고 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 있다 가면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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