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참여한 희곡 독서모임에서 <리어 왕>을 읽으면서 자신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그 답은 안전하다는 감각이다. 몇 년 전의 윤이었다면 틀림없이 이 질문에 사랑이라고 답했을 것 같다. 그 당시 윤에게 사랑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에 대해 단지 심드렁해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너무 모호한 것으로 생각되고, 관심사로 둘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두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하는 요즘이다. 사랑과 달리 안전과 불안전은 명확하게 판별이 가능하다. 위협받거나 불안감을 느끼거나 소외되는 상황 등은 안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편안하거나 몸을 마음껏 늘어뜨릴 수 있는 공간과 상황 등은 안전한 상태이다. 이것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상황이 있을테니 독자 여러분도 한번쯤 떠올려 보아도 좋겠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 안전함을 느끼는가? 그때 기분은 어떤지, 그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보통 안전하다는 감각은 원초적인 자연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특히 인간 동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연과의 관계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내 손 밖의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는 자연과의 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데, 그 부분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내 선에서 조절이 가능한 영역이라 관심 대상이 된 것이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불사르는 편이다. 위협이 되거나 부정적 영향을 주는 존재들과 연을 끊는 것도, 데면데면하게 굴다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경우, SNS 계정을 차단해서 눈 앞에서 대상을 없애는 방법을 나는 강력 추천한다..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작동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들(전부는 아니다. 가족, 애인 등은 예외이다) 은 그렇게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면 특별히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관련해서 감정 소모를 할 일이 없다. 정말 별 감정이 들지 않게 된다.
한편, 당연하게도 나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데, 선택의 순간들에서 늘 내 앞에 있는 이 선택이 나를 단기적, 장기적으로 그러한 삶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 고뇌하는 것도 좋다. 고뇌의 결과로 삶의 지향점을 한 단어 혹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더 도움이 된다. 그것을 내가 하는 행동의 이행 기준으로 두면 개인은 여러 선택들 앞에서 더욱 자유롭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현재 윤은 가정 내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가족은 앞서 언급한 방법처럼 쉽사리 끊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것이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여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이유이다. 원가족에서 벗어나 안전한 삶에 이룩하기 위해서. 삶은 계획하는게 아니라고들 하지만, 조각조각의 계획들이 윤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면 나는 기꺼이 계획을 세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