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

우리집엔 우렁각시가 살아요.

by 조용해

친구들은 모두 나의 선언에 의아해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시아버지를 그것도 홀 시아버지를 모신다니...


신랑은 막내였고 공무원인 큰형도 의사인 작은형도 두 형수 모두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되신 아버님을 모실 수 없다고 하여 총각인 우리 신랑이 아버님과 함께 살던 차였다. 같이 사시던 아버님을 내가 결혼한다고 하여 따로 나가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신랑은 내게 나의 의향을 물어봤고, 나는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사람의 아버님을 따로 나가시게 하는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결정에 예비 큰 형님과 예비 작은 형님이 각각 따로 "정말로?"를 시간 내어 물었고 나는 "그렇다"라고 답한 것뿐이다.


뭔가 대단한 사명감에서 아버님을 모시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뭔가 당해보기 전에는 체감을 못하는 선경험 후체득형 인간이었다. 그탓에 조금은 섣불리 아버님과의 동거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 섣부름은 그 이후로 별로 내 삶에 타격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소한 도움을 생색내지 않고 주고 있었다. 알고보니 우리 아버님은 <혼자서도 잘해요>족 이셨다.


그래도 시집온 첫날은 잘해보고 싶어서 새벽 5시에 게이트볼을 치러나가시는 아버님께 아침상을 차려드리려 4시에 일어나 한 번도 끓여 본 적 없는 곰국을 끓여서 사온 김을 잘라 놓고 친정엄마께 협찬받은 밑반찬을 내어 정성스레 상을 봐드렸다. 태어나 처음 해본 시집살이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 상을 차렸으나 아버님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에 나가신 뒤였다. 내가 좀 더 일찍 일어나자 아버님은 나보다 더 일찍 식사를 마쳐버리셨다. 그래도 챙겨드리려 더 일찍일어나면 어김없이 더일찍... 이러다간 베틀이 붙을 것 같아서 포기하자 그제야 원래 가시던 5시에 집에서 나가실 수 있는 평화가 내가 시집 온 지 2주가 지나서야 우리집에 잦아들었다. 그렇게 나의 <아버님 아침 챙겨 드리기 프로젝트>는 2주를 못넘기고 폭망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5시에 나가시면 시계처럼 오후 5시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현관에서부터 좌측에 화장실과 그 맞은편의 아버님 방 이 짧은 동선이 아버님께서 주로 이용하시는 우리 집의 동선이었다. 아버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부러 TV를 거실에 놓았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우리가 행여나 불편할까 봐 절대 밖으로는 나오지 않으셨다. 그 짧은 동선만을 오가시며 마치 세사는 총각처럼 우리 쪽으로 좀처럼 넘어오시지 않으셨다. 그나마 화장실이 2개 있어서 남편과 나는 주로 안쪽 화장실을 쓰는 바람에 우리들의 동선은 전혀 접점을 갖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우리 집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38선이 그렇게 존재했다.


누군가 나에게 아버님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아버님은 절대 내게, 우리 생활에 간섭도 하지 않으셨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셨고 그러나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티 안 나게 솔잖히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아이 혼자만을 두고 도우미 아주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서는 게 사실 내키지 않았다. 아버님은 내가 일을 나가는 날에는 오전에 잠깐만 운동을 하시고는 내 출근시간에는 돌아오셔서 나와 교대를 하시고는 아이를 돌보셨다. 물론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이를 케어했으니 아버님이 특별히 하실 일은 없었지만 아버님의 그런 보살핌은 내가 마음놓고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되고 있었다.


새로 분양받아 들어온 집이어서 모든 것이 새 거였어도 신혼초 청소를 잘할 줄 몰랐던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가스레인지를 닦는 일이었다. 살림도 어설퍼서 끄떡하면 무언가가 타거나 넘치게 방치하여 가스레인지가 성할 날이 없었다. 구석 틈새에 넘처버린 찌게 자국이나 눌어붙은 음식물은 여간해서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집의 가스레인지는 늘 반짝반짝했다. 우리 아버님은 가스레인지를 닦으시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지 새집에 들어올 때 준공청소를 해주던 업체의 솜씨로 매일 가스레인지를 닦아놓으셨던 것이다. 나와 신랑의 퇴근시간이 7시 정도여서 약간 저녁이 늦을 경우가 많았으므로 아버님은 준비된 반찬에 끓여놓은 국을 데워 거의 5시 반이면 저녁식사를 마치셨다. 식구가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은 주말에 두 번이 될까 말까 했다. 그 짧은 주말에 내가 대충 닦아 놓아 엉망이 된 가스레인지는 월요일이 되면 우리 집 <우렁각시> 아버님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아버님은 다른 집안일은 전혀 안 하셨지만 딱 그 가스레인지만큼은 정말 반짝반짝 윤을 내놓아 직장에서 퇴근해 돌아온 내가 피곤함에도 다시 살림을 할 맛이 나게 해 주고 계셨다.


지금도 가끔 가스레인지를 보면 아버님이 생각난다. 내게 한 번도 낯을 찡그리시지 않던 분, 세 살 아가에게 사서삼경을 설명해주시던...



" 그이가 그렇게 가고... 매일매일 생각나지만 가장 미치겠는 건 그릇장을 볼 때야..."


키가 작은 친구는 손을 뻗어 그릇을 내어 쓰고 덕분에 싱크대 상부 그릇장에 쌓이는 먼지는 자기 눈에 안 뜨이니까 그곳까지 청소할 엄두는 못 내고 살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다 손님이 와서 의자를 놓고 올라타서 큰 그릇을 꺼내느라 장안을 보면 어느새 깨끗이 행주질이 되어 있는 상부장을 발견하곤 했다고 했다.

'우리 집엔 우렁각시가 사나 봐'라고 잠깐 생각하고는 잊고 지냈었다.


어느 날 슬픈 소식을 전화를 통해 받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그녀의 안부가 걱정되어 그녀의 집을 찾았다. 깔끔한 인덕션을 보며 내가 우리 아버님 얘기를 하자 친구가 해준 말이었다. 키가 컸던 그녀의 신랑은 외아들이었다. 외아들이어서 시부모님들과 식사를 할 때 맛있는걸 자기 혼자 다 먹는 모습에 부모님들 뵙기가 민망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었다. 외아들인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 형제가 많은 집의 친구에게는 거슬렸던 것이다. 이렇게 애 같던 남편이 친구는 끔찍이 생각하여 가끔 설거지를 하는 때면 키 큰 자기의 시선에서 보이는 먼지를 아내를 위해 행주를 꼭 짜서 닦아주며 지내던 거였다. 그가 있을 땐 몰랐던 그 일을 그를 보내고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릇장에 쌓여있던 먼지를 보고... 그가 떠나고 우렁각시도 떠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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