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30부
“반장님 저 급하게 집에 가봐야겠어요. 개가 짖는다고 주인집에서 전화가 왔네요.”
컨베이어를 타고 나오는 과자 봉지는 끝이 없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자기가 맡은 품명의 과자 봉지를 걸러서 종이상자 안에 담느라 분주했다.
“에고 목줄 안 했어요?”
“그게 뭔데요?”
“왜 짖음 방지 목줄이라고 개가 짖으면 전기 충격이나 진동 발생하는 거 있어요.”
그제야 한영은 어디선가 봤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거 저도 알아요. 그런데 그거 못하겠어요.”
“그 마음 알겠는데 어떻게요. 함께 살려면 강아지들도 사회화해야죠. 사람이라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순 없잖아요. 다들 규칙을 지키며 살잖아요. 누구는 동물 학대라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죠. 목걸이를 채우는 건 규칙을 정해주는 거예요. 함께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여반장이 그렇게 말하자 한영의 가슴앓이 하나가 해소되었다. 그래 최소한의 규칙. 사실 한영은 여러 번 짖음 방지 목걸이를 사려고도 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에게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는 것 같아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것이 아기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누군가 이기적이다고 비난한다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한영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컨베이어가 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영아 여기 한영 삼촌 빠진 자리 대신 맡아 줘.”
돌아서는 한영은 영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급하게 택시에서 내리자, 인도 가장자리에 쌓인 눈이 무거워 보였다. 이별의 자리처럼 인적의 발길이 끊겨 더는 소통할 수 없는 곳에 더욱 두껍게 쌓인 차가움, 뜨겁게 불타던 한때의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간 뒤 햇볕 들지 않던 한영의 응달진 추억 속에도 녹지 못한 기억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영이 현관에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렸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방금 도착해서 진정시켰어요.”
“아니 삼촌 개를 이렇게 몰래 데리고 이사 오면 어떡해요?”
“사모님 얘기들이 아직 적응이 안 돼서 좀 짖었나 봐요. 원래 안 짖는 얘기들인데.”
“개를 못 키우는 원룸이에요. 분명히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짜증 난 어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노심초사했지만 스마트 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생각보다 상냥했다.
“네 할 말 없습니다.”
“어디 강아지 맡길 곳 없으세요? 지인이나 형제.”
“죄송해요. 얘기들이 제 자식이고 가족이네요. 자식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저도 강아지를 키워서 그 마음 잘 알지만 제 상황도 이해하셔야죠. 여기 원룸은 개를 키우기 어려운 구조잖아요.”
조심스러워진 그녀의 말투였다. 한영은 침대 위에 누워 말똥히 바라보는 다롱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럼 보증금 그대로 돌려주는 건가요?”
“그건 안되죠. 이건 삼촌이 애초에 계약 위반하신 거잖아요. 전기세 가스비 그리고 도배비까지 제하고 드릴 거예요.”
“사모님 그건 너무 하잖아요. 한 달 살고, 도배비라뇨.”
“한 달이던 두 달을 살던 새로운 사람 받으려면 무조건 도배 새로 합니다. 새것으로 사람을 받는 이치죠. 담배 냄새 그리고 개 냄새 안 나요?”
“그럼 이왕 젖은 거 월급날까지 시간 주세요. 반 토막 난 보증금으로 다시 방 못 얻으니 월급 받고 나갈게요.”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하려고요? 개 짖으면 안 된다니깐요.”
“당분간 베란다에 내놓을게요.”
“이 추위예요?”
힘 빠진 한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방주인의 목소리는 갑자기 얼어붙은 고드름처럼 딱딱해졌다.
“담요랑 사서 따뜻하게 자리 만들어야지요.”
“사람이 죄를 짓지 말 못 하는 강아지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어휴.”
한숨 쉬는 여주인 때문에 한영은 바가지 쓴 기분을 금방 떨쳐 냈다.
“아롱아 다롱아 이제 어쩌니? 아빠가 그렇게 짖지 말라고 했건만 아빠 돈 없단 말이야!”
눈치 없는 아롱이는 격하게 꼬리 치느라 엉덩이까지 실룩거렸다. 제법 의젓해진 다롱이는 한영을 말똥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겨울의 바람은 살얼음을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데 합세했지만 2월 중순의 바람은 얼어붙은 골목의 옆구리를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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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번호는 받지 않는 한영이었다. 전날도 받지 않은 전화번호를 다음 받은 건 천우신조였을까
“여보세요?”
“한영아. 어찌 사니? 고모다.”
“네 고모.”
“그래 한영아 저번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 내놓은 거 이번에 팔렸다. 고모가 네 몫으로 조금 더 챙겼다. 많지 않지만, 내일쯤 입금할게.”
2년 전 아버지의 부고를 고모의 문자를 통해 받았을 때 한영은 그저 올 것이 왔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죽음이던 자기 죽음이던 늘 생각하고 있던 한영이었기에 죽음은 낯설지 않았다. 그저 여기 있던 사람이 저곳으로 옮겨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한영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스미는 슬픔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한영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철없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맛있는 과자나 놀이에 집중한 아이처럼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에 죽음을 망각했고 그러니 두려움에 허우적거릴 리 없는 사람들, 마치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처럼 모르니깐 두려움에 무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영은 죽음의 실체를 알고부터 두려웠다. 죽음은 마치 어릴 적 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 같았다. 공포는 아버지가 출타하고 사라진 후 자유를 만끽할 때 더욱더 깊었다. 곧 있으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걸 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한영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를 대면하고 나면 후련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산불에 그을린 채 돌아온 할아버지 주검 앞에서 처음 만난 죽음은 낯설었다.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그 어떤 낯선 존재를 만난 것처럼, 그날 한영은 숙기 없는 아이처럼 그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자연히 그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성격은 어떤지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영의 어린 시절이 흘러가고 20살 무렵 작은 삼촌의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 잊었던 죽음을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오래전 해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그때 한영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후회 없이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계획했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꿈을 정하고 오로지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길이었다.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결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위해 정진하며 나아가는 인생의 과정이었다. 내일은 죽으니깐 오늘 아무렇게 살자가 아니라 한영에게 삶은 내일은 죽으니깐 오늘 온 열정을 다해 살자가 되었다.
한영이 아버지와 마지막 통화를 한 건 5년 전이었다. 그날 한영이 비틀거리며 정문 앞에 닿자 며칠 전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빼빼 마른 녀석은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아쉬운 듯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다. 잡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 많은 탐욕 앞에 서성거렸던 한영은 길고양이보다 못한 어리석은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리던 눈가가 금방 뜨거워졌다. 방에 들어서자 아무것도 줄 게 없는데, 강아지 두 마리가 껑충껑충 가슴을 향해 뛰어올랐다. 녀석들이 없었을 땐 켜켜이 쌓인 어둠만이 기다리던 방이었다. 그 어둠을 물리치느라 힘겨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둠이 주인 없는 방에 도둑처럼 들지 않도록 녀석들이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롱이 다롱이를 진정시켜도 계속해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매일 지겹게 보고 함께 뒤엉켜 잠도 자면서 뭐가 그리 절실한지, 녀석들을 진정시켜 보듬자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벌써 반평생을 살아버린 아롱이 다롱이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니 한영은 너무나 서러워졌다. 떠나는 녀석들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다시 홀로 버려질 그 참담한 내일이 두려웠다.
“괘씸한 녀석들.”
녀석들은 미안해서 그런 건지, 계속해서 꼬리 치며 한영의 눈물을 핥아 주었다. 뜨거워진 한영의 심장은 마치 활화산처럼 피를 솟구치며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아롱아 다롱아! 그래 너희들이 아빠 버리고 먼저 하늘나라 그렇게 갈 거니? 이 나쁜 녀석들아!”
강아지들이 인간보다 그렇게 짧은 생을 살다 가는 건 이미 인간보다 많은 걸 깨달아서 더는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영은 어디선가에서 읽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기에 배우고 또 배워야 하므로 신께서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래 남겨 두는 것이라고, 한영은 다시 생각했다. 하루빨리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배우는 일에 힘쓰며, 더욱 선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그러면 신께선 홀로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실 거고 자신과 함께 아기들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한영에게 삶은, 홀로 던져진 망망한 시간 위를 노 저어 가야 했던 항해의 연속이었다. 끝 보이지 않는 저 수평선 너머, 그곳엔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섬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수평선을 넘어온 해풍에 기대어 물어보아도, 기다리던 소식 없이, 오직 침묵 하나로 일관된 내일은 한영의 노를 녹슬게만 했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그날 한영은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아직도 살아 계신지, 그것도 궁금했다. 거대한 칼자루를 움켜쥔 어둠이 살결을 베던 그해 겨울밤, 나무를 해오라던 아버지로부터 탈출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것이 한영은 믿기지 않았다. 일찍이 인생의 단꿈에서 깨여 부질없고, 허망한 것에 마음 두지 않았으나 더해 가는 고단함 앞에서는 초연할 수는 없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한들, 하룻밤 꿈인 건 마찬가지, 버텨 낸 그 물거품의 순간에 비길 수 없는 그 어떤 잔인한 생을 살았던들, 거대하고 오묘한 자연 앞에, 하찮은 먼지에 불과한 목숨 그 무엇을 억울하다고 불평할 수 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 살아 본 것, 그 목숨 애초에 아버지의 씨로 잉태된 것으로 생각하니, 한영은 가슴 한쪽,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처럼 시렸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늙지도 않았는지 예전의 그 혐오스럽던 톤 그대로였다.
“아버지 건강하시죠?”
몇 번의 신호음 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한영은 왜 그렇게 나를 못 죽여 안달이었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요즘도 약주 많이 하세요?”
한영이 다시 물었으나 아버지는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버지!”
침묵을 깨고 다시 아버지를 크게 불렀으나, 아버지의 그 완강했던 하루들 또한 기계톱에 의해 잘려나가고 민둥산이 되어 버렸는지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치의 허기를 아직도 채우지 못한 아까의 그 고양이가 다시 왔는지, 그 어떤 세월의 풍화도 범접지 못할 심연 깊숙한 곳에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는 소리가 눈과 함께 쌓이고 있었다.
“아롱아! 다롱아!”
아기들을 부르며 이불을 걷어 올리자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 목과 가슴을 마구 파고들었다. 창밖엔 여전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한영은 녀석들과 영원하게 해 달라고, 그 무엇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아니, 모든 것을 앗아가도 좋으니 제발 녀석들만은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그동안 그토록 증오했던 하나님께 빌었다. 어느새 뜨거워진 눈가를 핥는 녀석들의 따뜻하고도 까칠한 혀의 촉감이 오래도록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