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혜와 미덕을 완성할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언제든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 미덕이 결여된 인간은 가장 불경하고 야만적인 존재가 되며,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가장 사악한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문제로 끌어올린다.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질서이며, 정의로움이란 그 질서를 분별해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정에는 역할과 도구가 있고, 재산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이 맥락에서 노예란 ‘인간이되 자기 자신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 규정된다. 오늘날 이 개념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국가는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체제에 대한 논의는 정의를 둘러싼 오해에서 본격적으로 갈라진다. 민주정은 평등을 정의라 말하고, 과두정은 불평등을 정의라 말한다. 그러나 두 주장 모두 전체가 아닌 부분만을 정의로 착각한다. 평등은 대등한 자들 사이에서만 정의이며, 불평등 역시 대등하지 않은 자들 사이에서만 정의가 된다. 문제는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려 할 때 발생한다.
이때 분쟁은 필연적이다. 사람들은 덜 가졌다고 느낄 때, 혹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데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싸움을 시작한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이득과 명예, 혹은 불이익과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행동한다. 정의는 명분이 되고, 이해관계는 동력이 된다.
정치 체제는 이런 인간의 성향 위에 세워진다. 가난한 사람이 수적으로 우세하면 민주정이, 특정 계층이 질적으로 우세하면 과두정이 나타난다. 문제는 어느 체제가 더 옳은가가 아니라, 각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특히 강조한 것은 교육이다. 정치 체제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법도 무력해진다. 민주정의 법을 민주정답게 지키지 않고, 과두정의 법을 과두정답게 지키지 않는 순간, 체제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개인의 무질서는 곧 국가의 무질서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유 역시 오해 위에 서 있다. 민주정은 자유를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이는 체제를 붕괴시키는 자유다. 정치 체제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보장받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심지어 참주정조차도 유지의 논리가 존재한다. 참주는 쾌락에 빠진 폭군처럼 보이기보다, 국가의 관리인처럼 행동해야 한다. 국고를 착복하는 자가 아니라 관리하는 자로, 방탕한 인물이 아니라 절제된 인물로 인식될 때에만 권력은 유지된다. 이는 권력이 본질적으로 신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 모든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정의는 언제나 전체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분의 언어로 오해되기 쉽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는 제도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가장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