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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Apr 09. 2023

어쩌면 내 여행의 목적은 ‘해방’

해발 1500m에서 담은 카파도키아

아무래도 8월은 여행하기 썩 좋은 달은 아니다. 전 세계의 휴가철이 몰린 탓에 여행 비용이 최소 몇 배는 오른다. 카파도키아 하면 떠오르는 열기구 투어도 마찬가지다. 성수기에는 가격이 30만 원을 웃돌았다. 당시 긴 해외생활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여행 초반부터 이 체험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는 게 맞는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 망설이는 사이 모든 표가 매진되었다. 스스로에게 사악한 가격을 상기시키며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던 날, 마침 숙소에서 운영하는 벌룬 투어에 운 좋게 자리 하나가 났다. 원래 하늘을 날게 될 운명이었다는 듯한 전개에 제법 감동하며 서둘러 신청했다.


흙먼지를 잔뜩 마셔가며 보고 담은 괴레메의 풍경과 이곳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들. 이 광활한 땅 위에서 한 모든 경험을 사랑하다 못해 찬미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단연 열기구 위에서 보낸 1시간 남짓의 시간 일테다.

생애 첫 혼자 해외여행의 목적지, 카파도키아



새벽 5시가 콜타임이었는데 행여 일어나지 못할까 봐 알람을 15개나 맞추고 잠에 들었다. 카파도키아는 내륙지방이라 일교차가 굉장히 크다. 가지고 간 옷을 모두 껴입고 나갔음에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지만 로비에선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 하늘을 날아본다는 생각에 다들 피곤함보다는 설렘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인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커플 한 쌍과 영국 발음을 구사하던 5명의 가족과 함께 셔틀버스를 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창문 너머로 너른 모래밭과 열기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계속되는 비포장 도로였다. 옆에 앉아있던 영국인 남자아이가 끝내 토를 했다. 아이와 그 가족들이 느끼고 있을 난감함과 피곤함을 같이 느껴가며 창 밖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의식적으로 집중했다.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을 무렵,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이 밀려나고 푸른색으로 물든 하늘로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열기구가 떠오른다. 차가운 모래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경이롭다 못해 가슴이 벅찼다. 내가 사는 지구엔 이런 장면도 있구나, 괜스레 겸허해졌다. 인간이 긴 시간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하늘을 날기 위해 만들어낸 열기구는 광활한 자연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그러고는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의미한 존재인지 일깨운다. 모든 자연의 섭리를 통달했다는 듯 일관되게 오만한 자세를 취하던 인간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고개를 숙인다. 형형색색의 열기구가 담긴 풍경도 귀한 볼거리였지만 카파도키아의 기이하고도 생경한 지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벌룬 투어는 충분히 제 값을 했다.



모양을 찾아가는 열기구와 분주한 사람들

여러 명의 직원들이 열기구에 매달려 바람을 넣고 모양을 잡기 위해 한참 동안 씨름을 했다. 널브러져 있던 거대한 비닐이 풍선의 형태를 갖추자 끈으로 연결되어 있던 바구니에 사람들이 올라탄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떠오른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잔뜩 상기된 얼굴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대지. 내 시선은 마치 다른 행성으로 간 탐사선의 시선과 닮아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풍경이 제법 익숙해지더니 서서히 감흥이 줄어들었다. 우리네 감각이란 무엇이 와도 끝내 무뎌지고 마는 것이었다. 고조되었던 감정이 가라앉고 고요히 떠다니던 순간 그제야 떠오르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예상 밖의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평소에는 집중하거나 조명하지 않았던 내 삶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건 ‘떠올렸다’가 아니라 ‘떠올랐다’는 것이다.



해발 1500m에 놓이자 기압 때문에 재채기 한 번에 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내가 아주 높이 올라와있음을 살짝 가빠진 호흡으로 인지했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리 멀리 떠나왔어도 결국 이 얼굴들로 귀결되는 삶이구나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이어서 평소에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던 것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내가 이 대상을 이런 30만 원어치 순간에 떠올릴 만큼 중히 여겼던가 당황하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상상의 일부 끝에선 내 도덕성을 의심해야 했고, 태어나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종류의 다짐을 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이라 소상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생각의 고삐가 풀린 느낌이었다. 정처 없이 흘러가고 퍼져나가던 생각은 항상 같은 문장으로 끝났다. ‘그래, 나는 고작 이런 인간이었구나’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자 오히려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해발 1500m에서 바라보는 카파도키아 전경



그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내뱉는 말들이 정말 나의 것인지 헷갈렸던 적이 많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베끼고, 마음에 들었던 말을 따라 하며 되고자 하는 자아에 어울릴 법한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니 말이다. 물론 주변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내어 담거나 닮으려 하는 것이 삶의 주된 동력이자 방식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자꾸만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조작’과 ‘포장’ 같았다. 게다가 익숙한 것들에 둘러 쌓여 있으면 내 생각이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오랜 시간 영향을 받아온 것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 없고, 내 삶에 들어서 있는 타인을 멋대로 배제할 수도 없으며, 관성에 따라 편한 방향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지를 여행하게 되면 나를 둘러싸고 정의하던 것들로부터 분리될 기회를 얻는다. 국적, 문화, 부모, 친구, 학교 등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다른 환경과 문화권에 놓인 사람들은 무슨 선택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관찰하며 자신의 구성요소도 대충 분석해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적부터 자주 여행을 다녔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어디론가 떠났다. 꼭 길게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살던 동네를 벗어나 근처 산이나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캠핑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부모님이 의도한 건 단순히 견문 확장이 아니라 '여행하는 감각'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낯선 곳에서 사람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해지는지, 동시에 얼마나 자유롭고 솔직해지는지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적 풍요를 그리며 관성적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고독 속에서 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살피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고유성’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꼽을 수 있게 된다. ‘자기 존중’에 확신이 들어서는 과정이다. 어딘가로 향한다는 설렘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진실된 나의 모습. 이게 내 여행의 이유다.



땅 위의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준다.

오늘 비행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고,

무려 이번 시즌 최고 고도를 기록했다며

조종사는 우리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정말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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