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곳

by 서오

생명력이 그 끝을 다했을 때 죽음이 다가온다. 생명력은 동식물에게도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생명력이 있다고 난 항상 느껴왔다.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보다 훨씬 빨리 삭아서 본래 모습에서 빠르게 후퇴한다.

문화유산 중에서도 절의 터를 뜻하는 ‘-사지’와 죽음은 근접한 단어로 볼 수 있다. 황룡사지 구층 목탑, 정림사지, 미륵사지 등등 현재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순 없지만 분명히 절이 있었다는 곳들이다. 그곳들은 대부분 돌이 재료인 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목재로 만든 곳은 대부분 소실되어 죽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얘기하려는 곳은 미륵사지이며 현재 탑 일부와 연지가 복원되어 있으며, 가마터 일부, 사찰은 터만 표시만 되어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미륵사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지, 왜 눈길이 선뜻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쯤 더 가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미륵사라는 절은 백제 무왕 시대에 만들어진 절인데 역사를 지나며 파괴되어 사라져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흔적으로라도 되살리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눈앞에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다. 빈터라고도 느낄 수 있는 이곳이 사람들에게 주는 공간의 생명력을 어디로부터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첫 번째 아무래도 ‘미륵사지 석탑’이다. 현재 미륵사는 건물을 복원하지 않았지만, 부지의 크기는 알 수 있도록 초석으로 기둥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 두었다. 그리고 미륵사 터로 추정되는 곳들은 잔디를 깔아서 공간이 어느 정도였을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륵사지 중간정도에 위치한 복원을 완성한 미륵사지 석탑의 존재가 사람들을 이끌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미륵사지는 이렇게 순서대로 관람한다면 다른 계절에 다시 오고 싶어질 것이다. ①박물관>②연못>③미륵사지 석탑>④가마터


①박물관에서는 미륵사지의 복원된 모습을 추정한 모형과 영상들이 많아 사람들이 직접 보기 전에 충분히 모습을 상상한다. ②그리고 나와서 보이는 연못을 지나치며 이제 미륵사지의 전경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③높지 않은 계단 몇 칸을 지나면 미륵사지석탑의 전경에 신기해하며, 위에서 아래로 지반을 편안하게 내려다본다. ④석탑 안과 밖을 요리조리 구경하다 보면 탑 뒤로 넓은 잔디밭을 지나 일부가 복원된 가마터 내부를 구경하며 입구로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복원된 정도만 보자면 백 퍼센트가 아니기에 보자 할 게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길이가 꽤 길다 보니 연못에서부터 가마터를 걷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본래 사찰이라 경사가 있는 편인데 복원된 사찰 건물이 없다 보니 중간에 우직하게 있는 석탑이 날 바라보며 지켜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찰 건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초석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형태를 약간이나마 맛보며 미륵사는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다.


두 번째 관람객과 미륵사지 사이의 관계성이다. 인간은 기억을 공유하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예를 들어 내가 기억하는 곳에 가면 반갑고, 새로운 공간에 가면 어색해서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곳은 현재 절로써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절의 기능을 했음을 모든 사람들이 지각할 수 있다. 휑한 공터라도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살아있는 자와 죽은 공간 사이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다르기도, 날씨에 따라 다르기도 한 이곳은 여러 번 이곳을 찾아갔을 때 내게 익숙하지만 다른 것을 보여준다. 마치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미륵사지라는 곳 구석 곳곳을 밟고 지나가며 사람들은 기억을 쌓고 이 장소와 관계를 만들어간다.


현재 미륵사의 일부만 복원했기에 복토되어 있는 부분도 많다. 이처럼 오히려 원재료인 흙 속에 잠시 멈춤 상태로 때를 기다리며, 학자들이 본인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며 다시 태어나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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