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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Aug 15. 2020

'온전한' 황시목을 기다리며

손상의 인식론으로 <비밀의 숲>  읽기

전선에 연결된 무언가를 머리에 쓴 채 수술대에 누워 있는 어린 황시목. "보통 사람의 뇌에 비해 지나치게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소리도 참지 못하고 통증을 느낍니다."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황시목. "수술 후유증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거나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은 뇌 수술의 부작용 내지는 후유증으로 인해 감정 표현이 제약되고, 가끔 심한 두통이나 이명, 어지럼증을 경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1회에서 나오는 어린 시절부터의 개인 서사는 질병에서 손상, 장애로 이어진다. “지나치게 발달한 두뇌” 때문에 소리에 너무 예민해서 통증을 느꼈기에 수술을 받아야 했고(질병), 그 수술이 남긴 달라진 뇌(손상)로 인한 후유증이 운전이나 대인관계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장애). (미주1)


특히 감정과 관련된 후유증은 황시목이 비리에 휘말리지 않게 해 주면서,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받게 하기도 한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그러한 증상의 연장선으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황시목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관계에서의 오해를 야기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는 수술 이전에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학창시절, 시끄럽다는 이유로 그가 친구를 때린 사건은 극 초반에 그의 자질을 깎아내리는 도구로, 중반에는 조력자와 관련된 일화로 꾸준히 활용되기도 했다.


수술 장면에서부터 나오듯, 이 수술은 그의 증상을 충분히 치료하지 못했다. 즉, 황시목은 완치되지 않았고, 계속 그 증상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딱히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는 여전히 초보인 만성질환자다. 그는 표정이 거의 없고, 가끔 눈 근처를 찌푸리는 정도만 나오는데, 소통을 위해 얼굴 표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면장애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미주2).


요컨대, 황시목은 현대 의학의 한계로 인해 뇌 손상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계속 통증이 발생하는 만성질환을 갖게 되었으며, 표정과 감정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를 경험하며 살아간다(한편으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하는 장애가, 그의 달라진 뇌를 ‘손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검찰과 정치권, 브로커의 유착과 비리를 다루는 드라마인 만큼 손상이 핵심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손상을 지나치게 낭만적/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손상의 장단점을 모두 포함하려고 꽤 노력한 드라마다.


다만 한국 미디어가 서번트 증후군을 너무 좋아해서, 지적장애인/자폐인을 항상 특정한 영역에서 유독 특출난 천재로 그려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밀의 숲>의 재현이 적절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황시목이 뇌의 손상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한편으로 미디어의 자폐 재현의 역사와 상당히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뇌손상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정의로운 천재’라는 설정은 생각보다 식상하기도 하다.


이처럼 비밀의 숲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정의로운 검사’를 위해 손상/질병/장애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미 이렇게 시작된 거 시즌 2에서는 좀 더 나은 재현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비밀의 숲>은 한편으로 (당사자들의 의견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어떤 형태의 뇌질환자 재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자동차에서 갑작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도로를 정체되게 만드는 장면은 뇌전증 환자가 운전면허를 딸 때 별도의 심사가 필요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른 황시목이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멈춰 있다. "또 다른 부쟉용이나 후유증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러니 황시목의 질병/손상/장애를 스쳐지나가는 요소가 아닌 '떡밥'으로 활용하여 운전을 돕는 근로지원인을 도입하면서 근로지원인을 또 다른 변수로 만들거나, 운전 면허가 취소되어 수사에 차질을 빚는 계기로 활용하면서 그가 자신의 손상을 더 잘 다루게 되는 과정을 서사에 통합할 수도 있다. 즉, 이는 <비밀의 숲>에 '손상의 인식론'을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나는 이전에 쓴 글에서 손상의 인식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손상의 인식론은 손상을 중심으로 쟁점을 다시 해석한다.
손상을 부정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과 이야기에 통합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역사와 나의 삶이 깊이 관계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요즘처럼 검찰이 뜨거운 감자인 상황에서 <비밀의 숲>은 더 일상에 와닿는 드라마일 수 있다. 게다가 시즌 2는 검경 수사권의 문제도 다룬다고 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손상의 인식론을 통해 황시목이 경험하는 질병과 장애를 서사의 핵심으로 포괄한다면, 이 드라마는 더욱 많은 이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자, 자폐인, 뇌전증 환자, 안면장애인 중 황시목과 비슷한 상황을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상의 인식론은 손상을 다르게 상상하는 방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초점을 뇌와 감정에서 청력으로 바꾸는 것이다. 소리에 너무 예민해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라면, 그의 청력을 제한하는 보장구의 존재를 설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통상적으로 보장구는 '상실된 능력의 보완이나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잔존 청력'을 활용해서 '손실된 청력'을 보완하는 보청기나 인공와우, '없어진 사지'의 자리를 채우는 의족/의수가 그렇다.

어른 황시목이 양쪽 귀를 막고 인상을 쓰고 있다. '괴로운 신음'이라고 음성을 설명하는 자막이 나온다.

하지만 '능력'이 과도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는 신체 능력을 너무 중시해서 장애를 신체 혹은 신체 능력의 결함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애'라는 경험의 초점을 '능력의 부족'이 아닌 '삶'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쉽게 말해, 능력이 많든 적든 일상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지를 핵심으로 본다면, '넘치는' 신체 조건을 제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나에게는 인공와우를 빼고 자기 때문에 여름 밤에 모기의 앵앵 소리에 깨 본 적이 없는 사람, 공부할 때는 보청기를 끄고 집중력을 높이는 친구가 있다. 만약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부분에 칼을 대지 않고 청력과 관련된 부분에만 의료적 조치가 가해졌다면, <비밀의 숲>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이 경우에는 속기나 수어 통역이 필요한 황시목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하려면 기본적으로 접근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제작 현장에서 편의 지원이 되어야 하며, 당사자들에게 자문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한편으로 배우의 연기만으로 충분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믿는 뇌 손상을 황시목의 특징으로 설정한 건, 접근성이 갖추어지지 않은 드라마 제작 환경과 사회를 반영하기도 한다.


오늘 밤에 <비밀의 숲> 시즌 2가 시작된다. 과연 이번 시즌에서는 황시목의 질병/손상/장애가 어떻게 묘사될지, 그것이 서사 안에 통합될지 아니면 겉도는 불행 요소로만 사용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마치 그가 완치된 듯 모든 증상이 사라진 황시목이나, '냉철함'이라는 것만 남고 사람들에게 갑자기 이해받는 황시목을 그리는 것은 결코 황시목의 온전한 재현이 아닐 것이다. 명백히 '아픈 사람'인 그의 삶을 그릴 때 그의 아픔을 빼는 건 정당하지 않다(미주3).


나는 기다려 보려 한다. 그의 선천적 질병,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장애, 그 장애와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손상'이 된 그의 뇌를 통합한 서사 속의 '온전한' 황시목을.


(미주1) 여기서 ‘장애’는 주변에서 그를 은근히 꺼리는 상황들이 사회적 모델의 의미에서 ‘장애’가 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모델에서의 의미와 가깝게 사용되었다. 드라마 안에서 황시목이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미주2) 노들장애학궁리소 박정수 활동가는 '장판'에서 푸코 읽기』(오월의봄, 2020)에서,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장애 분류 체계가 의료적 인간학에만 기초를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안면장애가 신체기능 장애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양화된 의료적 기준으로만 장애의 정도를 파악할  없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쓴다. "'안면' '머리'라는 신체기관이 아니라  표면에 형성된 사회적 '의미' 기관이다.  안면은 신체적 기능이 아니라 심미적, 기호적, 소통적 기능을 갖는다. 따라서 안면의 기능 장애는 성형외과, 피부과뿐만 아니라 문화기호학의 판단도 요구되는 영역이다."(59) 따라서, 얼굴의 기호적, 소통적 의미를 감안할 , 황시목은 안면장애가 있다고   있다.

(미주3) ‘아픈 사람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도서출판 여이연, 2018)  전혜은의 “‘아픈 사람정체성에서 제안된 용어다. 이는 “충분히 오래 아픈 바람에 ‘아프지 않은  기본 값으로 설정할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 “‘아픈  ‘아프지 않은 보다  일상적이고 꾸준히 지속되며 자기 삶의 과거-현재-미래를 그릴   아픔과 동떨어져서는 삶을 설명할 수도 설계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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