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타트업>의 '눈길'

비장애인, 시장 중심적으로 상상되는 접근성의 문제

by 벼룩

* 이 글에는 드라마 <스타트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N, A:B~C:D)는 <스타트업> N회의 A분 B초부터 C분 D초까지에 나오는 장면임을 의미합니다.

* 음악의 분위기에 대한 서술은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자막을 참고하였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원래는 드라마 하는 시간을 딱 맞추기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넷플릭스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어져서 드라마를 보는 일이 더 쉬워졌다. <스타트업> 또한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어서 종종 봤는데, 드라마를 보는 내내 걸리던 게 있었다. 바로 '눈길'이었다.


'눈길'은 드라마에서 남도산(남주혁)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진 어플리케이션으로, 카메라에 보이는 대상들을 인식해서 음성으로 설명해준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좀 더 편한 일상을 위해 고안되었는데, 인공지능과 화면인식 기술이 결합한 결과는 상당한 정확도와 편리성을 갖춘 어플리케이션으로 그려졌다.


사실 기술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었다. 극중에서는 눈길로 글자를 인식해서 읽기도 하는데, 이는 TTS(Text to Speech) 혹은 OCR(Optical Character Reader)이라고 불리는 기능과도 같다. 이미 많은 스마트폰에서도 지원하고 있으며, 구글독스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물론 드라마에서와 같은 수준의 정확도에 미치지는 못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대체 텍스트를 만들어주곤 하는데, 이때도 나무, 인물, 음식 등을 인식하여 알려준다(당연히 성능은 아직 부족하다). 또한, 앞에 사람이 몇 명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은 기능은 배리어프리 영화를 볼 때 나오는 화면해설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화면해설은 아직 사람이 해야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이를 인공지능으로 바꾸기도 한 것이다. 남도산을 중심으로 하는 '삼산텍'이라는 스타트업이 만든 이 기술은 이후 자율주행 자동차라는 가능성에서도, 공익적 효과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냈고, 실제로 이들은 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큰 성과를 이루기도 한다.


괜찮은 점을 이만큼 이야기한 이유는, 저걸 뺀 나머지에서 마음에 걸린 게 많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눈길'이라는 장애인 접근성 기술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는 (1) 계기, (2) 진행, (3) 홍보, (4) 사후 처리,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사적인 관계’라는 키워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비판적 재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에서조차 기존의 문제를 답습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드라마의 한계, 나아가 이 드라마의 대전제인 '시장주의'의 한계가 선명해진다.


(1) 계기


우선 남도산이 '눈길'을 떠올리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달미(배수지)의 할머니 최원덕(김해숙)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에 자신이 원래 잘하던 화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할머니의 일상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렇게만 쓰면 큰 문제가 없는 듯하다. 물론 언제나 장애/인 문제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1) 본인이 장애인이 되거나 (2) 본인과 가까운 사람이 장애인이 되는 것으로만 그려진다는 점에서 완전히 문제가 없다고는 못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현실적이긴 하니까.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남도산의 태도다.


(도산) 눈이 많이 안 좋으세요?
(원덕) 아직 괜찮아, 잘 보여. 관리만 잘하면 나빠지더라도 천천히 나빠진다더라.
(도산) 달미는 모르죠?
(원덕) 어 몰라. 그러니까 너도 모르는 척 해.
(도산) 아니 어떻게 그래요. 달미가 나중에 알면 얼마나...
(원덕) 울겠지, 왜 말 안 했냐고 원망하며 울겠지. 그리고 너처럼 날 딱하게 보겠지.
(도산) 할머니, 저는...
(원덕) 난 그 딱한 눈이 싫다. 그 눈을 보면 진짜 내아 큰일 난 것 같아. 당장 세상의 모든 빛이 몽땅 사라지고, 일상이 송두리째 박살날 것 같고 그래. 그런다고 내 눈이 좋아질 리도 없는데 말이지. 그 딱한 눈은 너 하나만 하자, 어? 더는 그런 눈 보태기 싫어.
(7, 06:15~07:55)


할머니는 도산에게, 절대로 자신의 손녀인 달미에게 자신의 시력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이유는,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한 눈" 때문이다. 그는 달미가 이를 알게 되면 달미 또한 자신을 "딱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시선을 받을 때에 자신의 일상이 정말로 무너지게 될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즉, 그에게 불행은 시력 상실보다도 주변의 딱한 시선이었다.


(뜨개질을 하던 도산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원덕) 그 눈을 보면 진짜 내가 큰일 난 것 같아.
(도산) 큰일 났다 싶겠지.
(원덕) 일상이 송두리째 박살 날 거 같고 그래.
(도산) 겁이 많이 날 거고.
(원덕) 그런다고 내 눈이 좋아질 리도 없는데 말이지.
(도산) 눈이 좋아질 수 없다면 그 눈을 우리 기술로 대신해보면 어떨까?
(7, 69:00~70:05)


도산은 대화가 끝나고 집에 가서 혼자 뜨개질을 하며 할머니와의 대화를 회상하는데, 놀랍게도 "딱한 시선"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 빼놓고, ‘딱한 눈’을 그냥 ‘눈’으로 떠올리며 할머니의 의도였던 주변의 시선에 대한 문제는 빼 버리고 기술을 통한 개선만을 상상한다. 이 장면에서 그는 뜨개질에 실패하고, 실뭉치를 놓쳐서 굴러가는 장면은 '상실'이나 '실패'로 그려진다. 그는 뜨개질을 좋아할 뿐 아니라 아주 잘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런 그에게 '뜨개질의 실패'와 '시력 상실'이 같은 층위로 느껴지게 연출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장애에 상실과 실패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니 '눈길'의 시작은 할머니의 시력 상실이 아니라, 할머니의 시력 상실에 대한 도산의 연민이었고, 그것도 당사자가 바라지 않은 방식의 "딱한" 시선에서 비롯된 연민이었다.


(2) 진행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역시 수익성이 문제가 된다. 기술을 만들고, 테스트하는 등의 과정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시각장애인 당사자가 사무실에 방문하여 직접 어플리케이션을 테스트해보는 장면도 무겁지 않고 재밌게 잘 그려냈다. 안내견에게 과도한 관심을 주는 등의 부적절한 행동도 없었고.


여기서 문제는 투자를 따내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건 현실이 문제라서 드라마에서도 그랬겠지만, 현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룰지, 공허하게 다룰지는 연출의 역량이고 선택이다. 극중에서 삼산텍의 멘토였던 한지평(김선호)은 수익성도 안 나오고 의미밖에 없는, 심지어 잘 될수록 손해를 보는 이상한 수익 구조를 가진 사업에 그냥 투자할 기업은 없다면서,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있거나 '탈세 등으로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받아 이미지 개선책이 필요한' 기업의 목록을 찾아준다. 이에 달미는 고맙다고 했고, 그 이후 다른 이야기 없이 바로 열심히 투자를 따러 다녔다. '우리 사업에 투자하면 그쪽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달미) CSR팀 리스트네요?
(지평) 광고도 못 하고 유료 서비스도 못 하잖습니까. 스스로 매출을 낼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대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올해 CSR 예산이 넉넉한 기업들로 리스트 업 해 봤어요. 자, 봐 봐요. 파란색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있을 기업들이고, 빨간색은 오너 리스크니 탈세니 구설수 때문에 이미지 회생 프로젝트가 필요한 기업들이에요. [달미가 호응한다] 그 점을 잘 공략하면 아마 얘기가 좀 쉽게 풀릴 거예요.
(달미) 감사합니다, 팀장님. [부드러운 음악]
(지평) 뭐가요?
(달미) 맨날 브레이크만 거시더니 이번엔 액셀을 세게 밟아 주시네요.
(8, 22:20~23:07)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자선, 기부, 환경보호와 같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이는 인권, 특히 장애인권이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이용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난치의 상상력> 3장의 "'착한' 기업은 충분한가"에서도 길게 설명한 바 있지만, 뒤에서는 장애인 의무 고용 기준을 어겨서 벌금을 가장 많이 낸 기업이고 공장에서 발생한 문제로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돈으로 매수하거나 무시하면서, 앞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을 벌이고 (범용성도 떨어지는) 시각장애인용 기계를 만들어 홍보하는 삼성과 같은 사례는 그야말로 기만 그 자체다.


이외에도 인권이 장식으로 사용되는, 이미지 개선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다. 최근 멋진 여성들을 내세운 광고로 많은 호응을 얻은 나이키는 사실 2018년 말까지도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라는 취지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침공이라는 이미지를 여성 군인의 이미지, '동성애 지지', 그리고 발달장애인 군인 채용 등으로 상쇄하려고 애쓰고 있기도 하다. 젠더 문제와 관련하여, 이런 방식의 기만은 '핑크 워싱(pink washing)'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말하자면 <스타트업>에서 한지평은 삼산텍에 '장애 워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고, 삼산텍의 대표인 서달미는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한다면서 여기에 어떠한 다른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좋다고 그 리스트를 받아 열심히 발품을 판 것이다. 현실적으로 스타트업의 사정상 발품을 팔아서 어떻게든 투자를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비판적인 의도의 한 문장조차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인 지점이다.


이뿐 아니라, 이 사업에 대한 한지평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는 지점은 할머니의 시력 상실을 알게 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내내 사업에 대해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 이렇게라도 도와주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어릴 적 자신을 도와준 달미의 할머니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곤 할머니에게 달려가 울며 할머니를 껴안고 사업의 필요성을 재고하게 된다. 물론 이 지점 또한 현실적이긴 한데, 앞서 (1)에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하게 완전히 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3) 홍보


앞서 '장애 워싱'으로 발품을 판 것도 홍보의 일환으로 보자면, 이후 이어지는 게 다소 당혹스러운 사적 관계의 활용이었다.


우선은, 물론 유명인이 DM을 확인하고 답장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박찬호가, 아주 어릴 때 한 번 만난 도산의 스타트업 소식을 듣고, 이를 뉴스에까지 나와서 홍보해준다? 이렇게 갑자기? 솔직히 말하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는데, 내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들은 홍보할 방법을 못 찾다가 박찬호를 찾았는데, 사실 그들이 시각장애인 당사자 단체에 연락을 하거나 그들과 미팅을 가지는 장면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당사자 딱 한 명의 테스트만을 거쳤는데, 솔직히 말하면 너무 허술하고 쉬운 방법이다. 여러 당사자의 테스트를 받고,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냥 '와 좋아요'가 아니라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았어야 한다.


특히 어플리케이션 중 버튼이 어떤 버튼인지 인식이 안 되어서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아주 많다. 각 버튼에 텍스트를 입력해 주어야 TTS 기능을 통해 뭐가 뭔지 알 수 있는데, 사실 그런 것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눈길'은 화면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기술의 스펙터클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달미에 대한 도산의 마음과 원덕의 일상의 '개선'을 보여주기 위한 사적인 도구에 가깝다. 이들이 스타트업이라서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고, 운과 능력이 좋았기에 글로벌로 퍼졌을 뿐.


다시 돌아가서, 홍보에서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건 시각장애인 당사자 커뮤니티일 것이다. 뉴스에 나온다고 바로 모두에게 전달될까? 시각장애인들이 자료를 주로 공유하는 커뮤니티나 당사자 단체에 먼저 접촉하여 피드백을 받고 소식을 알리는 것이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이들은 그런 걸 시도도 안 해 보고 어디에 홍보를 해야 하는지 막막해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이라면서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는 연락 취할 생각을 못 한다니..?


그리고 솔직히 홍보가 그렇게 성공하는 것도... 아주 비현실적인 설정이었다. 지금까지 배리어프리를 내걸고 만들어진 어플리케이션을 여러 번 봤지만 꾸준히 업데이트되거나 유지되는 사례는 아주 손에 꼽는다. 물론 박찬호가 뉴스에 그걸 들고 나오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면 나야 할 말이 없겠지만, 아무리 전세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어플리케이션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빠른 홍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서 매우 벗어난다.


(4) 사후 처리


(도산) 눈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원덕) 야, 너 또 딱한 눈으로 나 보고 있지, 지금, 어? 쯧.
[도산과 달미가 웃는다]
(도산) 아니에요, 아니에요, 할머니. 너무 좋아 보이세요. 앉으세요.
(원덕) 응, 그래. [잔잔한 음악] 도산이 니 덕에 편해. 이 눈길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 의지가 많이 돼.
[도산과 달미의 약간 그렁그렁한 눈을 보여준다]
(아현) 그러게, 눈길 성능이 너무 좋아서 내가 땡땡이를 못 쳐요. 눈 좀 붙이려 그러면 ‘졸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 일러댄다니까?
(원덕) 그러게? 용해! [함께 웃는다. 그 와중에 도산의 눈에는 약간 붉은 빛이 돈다] 눈길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맙다. 갚지 못할 빚을 졌어. 이게 무슨 복이냐 그래, 응?
(도산) [도산이 계속 울먹임을 참으며 원덕의 손을 잡는다] 더 많이 누리셔야 돼요.
(달미) 할머니, 도산이가 눈길 엔지니어랑 엄청 친하거든? 그러니까 불편한 거 있으면 도산이한테 다 얘기해!
(도산) 저한테 말씀만 해 주시면 제가 바로바로 업데이트해 달라고 할게요.
(16, 13:06~14:30)


'눈길' 프로젝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이후 역경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이겨내고 마무리 단계에 온 최종회였다. 거기에서 도산과 달미는 달미의 엄마 아현(송선미)과 할머니 원덕의 핫도그 가게를 찾아가는데, 할머니는 눈길을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사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생겨서 눈길을 청명컴퍼니가 직접 관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그래서 달미가 '도산이가 개발자랑 친하니 얘한테 피드백 주면 빠르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개발자와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편리하다. 빠르다. 하지만 이는 앞서 (1), (2), (3)에서 꾸준히 등장한 문제, 바로 ‘사적인 관계’라는 문제를 보여준다. 설명했듯이 남도산이 '눈길'을 기획하게 된 계기도, 그것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지평이 설득된 과정도, 이 기획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기댄 것도, 모두 사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공익' 또한 목표로 한다고 말하지만, 모든 것이 과할 정도로, 오직 사적인 틀에서만 이뤄졌다. 게다가 기술의 AS에서도 사적인 해결 방법이 우선 튀어나오니, 그야말로 이 드라마에서 '눈길'이라는 시각장애인 접근성 기술의 기승전결은 모두 하나같이 사적이다.


여러 번 언급했듯 사적인 계기로 인권 의제에 익숙해지고, 그 문제에 뛰어드는 사람은 많다. 나 또한 나의 질병, 그리고 들어간 이후에 친해진 사람들이라는 아주 사적인 이유가 내가 5년째 장애인권 활동을 하게 한 계기였다. 하지만 계기가 사적일지언정, 그 이후에 벌어지는 활동은 어디까지나 장애인의 차별 해소, 보편적 접근성 개선이라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의 수혜를 받는 일부의 일상만이 편리해지고,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디지털 접근성과 계급에 따른 위계화가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등장하는 "갚지 못할 빚"은 드라마 안에서 주로 지평이 사실상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원덕에 대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똑같은 표현을 여기서 원덕이 도산에게 하는 것으로 씀으로써, '눈길'은 공익이라는 목적보다 도산과 원덕의 관계라는 사적인 요소로 다시금 환원된다. 이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원덕의 대사 중 '복(福)'이라는 표현은 접근성이 시장주의 안에서 착한 기업의 존재는 행운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난치의 상상력>의 "'쓰레기'의 욕망'에서도 다루고, 이전에 했던 인터뷰에서도 상세히 설명했듯이, '기업이 신기술을 통해 장애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식은 주로 대기업들이 장애를 활용하는 자신의 광고에서 내보이는 틀이다. SK도, KT도, 삼성도, 현대도, 다 마찬가지다. 기술 그 자체가 나쁜 경우는 별로 없으나, 그걸 재현할 때 장애와 엮으면 언제나 '불행한 당신을 기술로 구원한다'라는 방식이 된다. 기술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장애인은 차별과 불행으로 가득하지만, 기술을 만난 이후로는 차별도 불행도 없이 행복해진다는 것처럼 광고를 만든다(직접 찾아서 보면 아주 뚜렷하다. 관련한 비판은 아주 많지만 최근 유튜브 영상 중에는 이것을 참고하라).


기술은 도움이 되지만,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악화한다. '눈길'도 여기서 피해갈 수 없다. 화면을 인식해주는 기술은 한편으로 물리적 접근성 자체는 개선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즉 환경은 그대로 두고 개인이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첨단 기술은 환경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달미) 에? 도어 록 어쩌고?
(원덕) 아, 고장이 나서 바꿨어. 아, 야, 너도 너도 이거 하나 갖고 다녀.
(달미) 음, 열쇠 귀찮은데. 왜 굳이 시대를 역행해?
(원덕) 응?
(달미) 기술이 훨씬 좋고 편한데. 그냥 도어 록 다시 달자, 할머니.
(원덕) 할미 기술 싫어. 노인네 따만 시키지, 뭐.
(달미) 기술이 왜 싫어. 기술이 얼마나 편한지 보여 줄까?
(원덕) 뭐 해?
(달미) 우리 삼산텍이 드디어 서비스를 시작했거든
(원덕) 뭔 서비스?
(달미) 눈길이라는 앱인데, 시각 장애인용 어플이야.
(원덕) 가, 갑자기 시각 장애인은 왜? 인공 지능인가 뭔가 한다더니.
(달미) 인공 지능 이용한 앱 맞아. 도산이 아이디어인데.
(원덕) [차분한 음악] 도산이 아이디어라고?
(달미) 응. 음성이랑 이미지 인식을 이용해서 그분들 눈을 대신해 준다. 뭐, 이런 서비스지.
(8, 41:35~42:53)


극중에서 할머니는 터치 방식으로 된 도어락을 버리고 열쇠 방식으로 바꾸는데, 달미는 이에 '왜 시대를 역행하냐'며, '기술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맞게 환경을 바꾼 할머니에게 ‘눈길’을 보여주고, 할머니는 눈길로 ‘성경’을 읽으며 감동받는다. 평소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설정이 있긴 했으나, 읽을 글로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작동하는 게 연출의 의도다. 굳이 성경을 선택한 이 연출을 통해 기술적 혁신은 '구원'이라는 종교적 의미로까지 확장되려 한다.


특히 그는 AI기술을 활용한 인력감축 솔루션을 내놓은 '인재컴퍼니'와의 경쟁에서, 자신들은 혁신의 속도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빠른 혁신 안에서 다칠 수 있는 사람들, 힘들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눈길'을 소개한다. 10회에서 인재컴퍼니의 발표가 끝난 후, 도산의 아버지인 성환(김원해)은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노동자로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혁신의 속도가 조정될 거라고 말했는데, 그 직후에 등장한 게 삼산텍의 눈길이었다. 즉, 눈길은 여기서 명백히 ‘좋은 기술’로, 삼산텍은 ‘좋은 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기술은 좋게 쓰일 수 있다. 기술은 진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진보는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바꾸는 데에만 집중하곤 한다. 눈길을 사용하더라도 할머니는 여전히 터치스크린으로 된 도어락을 그대로 누르기 어렵다. 각 번호가 있는 위치 옆에 만져서 느낄 수 있는 표시를 해둬야 한다. 할머니는 중도장애인이라 이런 상황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환경의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환경의 변화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똑같은 AI 기술을 활용했지만 한쪽은 인력감축, 한쪽은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구도에서, 정말 난감하게도 인력감축을 목표로 하는 쪽의 사람들은 성격도 아주 나쁘게 그려지고, 경쟁하는 내내 거만하게 나온다. 삼산텍의 경쟁사로 등장하는 인재컴퍼니의 CEO 원인재는 극의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달미에게 훼방을 놓는 '악역'이다. 즉, 여기서 인재컴퍼니와 삼산텍은 '나쁜 기업'과 '착한 기업'의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같은 기술로도 나쁜 기업은 인력을 감축하여 갈등을 만들고, 착한 기업은 장애인의 삶을 개선한다는 게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구도다. 기업의 성격과 개인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것은 공을 사로 환원하는 문제뿐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시선의 폭력은 싹 가려 버린다.


그러나 '눈길'은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사실 그 이상한 수익 구조가 바뀌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았고, '눈길'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건 박찬호(...)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사업에서 운도 많이 작용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그걸 미디어에서 재현할 때는 또 여러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열정 넘치는 착한 비장애인들이 뭉쳐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만들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전개는 현실과 동떨어져도 너무나 동떨어져있다. 사업의 성패 여부를 떠나서, 한국에서 접근성 관련 사업이 오래 지속된 사례는 정말 드물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서 장애인권동아리, 장애인권위원회를 5년째(졸업은 언제..)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너무 많은 비슷한 기획들이 1~2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대체로 앞의 기획보다 뒤의 기획이 더 나은 경우마저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을 기획하는 이들이 기존에 어떤 비슷한 사업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경우를 별로 못 봤는데, 어쩌면 기록이 별로 안 남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현실이 그렇다. 그러니 이렇게 드라마틱한 성공을 다루려고 했으면 좀 더 그럴싸하고 말이 되는 방식의 전개가 필요한 거지, 박찬호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면 사실상 접근성을 소재로 한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밖에 더 되나.


기승전결이 모두 사적인 관계로 범벅되어 있고, 시장주의적 해결에 의존하여 그 기술에서 배제되고 있는, 즉 디지털 소외 계층 또한 외면하고 있으며, 장애인권에 대한 문제적 현실을 비판적 의도 없이 그대로 재현하는 이 드라마는 접근성을 길게, 핵심 소재로 다루면서도 접근성의 현실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부분을 퉁쳐 버리고 있다.


물론 이를 다 해결하려면 드라마를 통째로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을 소재로 하니 시장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후에 이것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공적인 방식도 결말에서 잠깐이나마 등장했다면, 약간의 진정성은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근본적 한계는 벗어나지 못할지언정, 드라마 기획이 기만적이지는 않게 느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계기부터 그 이후 진행까지 모든 게, 그러니까 어느 착한 비장애인의 (당사자가 바라지 않는) '딱한 눈물'에서 시작하여, 다른 착한 비장애인의 '미안한 눈물'로 이어져서, 착한 비장애인인 손녀가 '오늘까지만 울고 내일부터 열심히 만들어서 할머니 도와줄게'라고 말하며 전개되는 이 모든 과정이, 정말이지 너무도 비장애인 중심적이라고 느껴진다. '시대에 역행'하고, '도와주기보다 딱한 시선부터 거두어라'라고 말하던 할머니가 막상 기술을 접하자 너무 고마워하며 잘 쓰는 모습은 기존의 '도움이 필요한 당신을 우리가 구원합니다'라는 대기업들의 메시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도움이 필요 없다는 당신이 틀렸음을 우리가 보여줄게요'라는 메시지까지도 담고 있는 듯하다.


좋은 기술이고, 분명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책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필요와 욕망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고, 당사자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거스르는 비장애인의 연민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구도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장애인이지만, 빛나는 건 비장애인이다. 장애를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기업들의 존재처럼, 장애를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활용하는 비장애인들이 있다. 지금과 같은 서사에서 접근성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비장애인의, 비장애인에 의한, 비장애인을 위한 도구가 될 위험이 너무도 크다.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며 다시 생각해 보자. 드라마 <스타트업>은 접근성 문제에 어떤 '눈길'을 보내고 있을까?


기존에 문제적인 재현의 역사가 있는 소재나 주제를 사용할 떄는, 그런 역사를 답습하지 않도록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디테일에서 나아진 점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장애인중심적인 틀 자체에서도 벗어나는 재현이 꼭 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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