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현 May 07. 2019

7. 기타큐슈로 가는 길목

홀로 일본에 뛰어들다

2010년 7월 23일 오전 9시


#누나덕분에


“오늘 너 출발한다고 해서, 회사에는 조금 늦게 간다고 말해뒀어. 어서 일어나서 밥 먹어.”


눈을 떠보니 소파 앞에 누나가 차려준 밥상이 놓여 있었다. 일본에서 홀로 가는 자전거 여행이라 걱정이 많은 눈치다. 게다가 잘 곳을 정해놓지 않고 떠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곳 사촌누나네 집에서 머문 3일간은 일본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대하고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순간, 일본어를 입 밖으로 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주문을 하고, 물건을 사고, 길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일본인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누나 덕분에 일본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생활 습관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낯선감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3일간의 느낌으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인지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행동거지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아직 익숙지 않음을 느낀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뭔가 알듯하면서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내 느낌으로는, 보다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짐을다시싣고

누나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가져갈 짐을 다시 확인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 중에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카메라도 녹음기도 이상 없다. 가방의 주머니는 빠진 곳 없이 가득 채워졌다.


비상시를 대비해 폴더폰의 배터리를 분리하여 가방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이 핸드폰을 꺼내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일본여행에서의목적

가져온 일본 전도를 펼치고 가야 할 길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한국에서 여행 출발 전날 밤, 목적지를 펜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도시를 기점으로 체크한 대략적인 위치다.


체크한 위치는 모두 안도 다다오 Tadao Ando 의 건축물이다. 여행 전 읽었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나오는 건물 중 횡단 루트에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만 체크를 하였다.


이 여행의 종착지는 도쿄이나 목적지는 아니다. 후쿠오카에서 도쿄 사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목적지이다. 안도 다다오 책에 나와있는 건물 약 50여 개의 주소를 구글로 찾아본 후에 그중 경로를 크게 벗어나는 것을 제외하고 추리니 약 40여 개가 남았다. 건물 주소를 모두 노트와 지도에 적어두었다.


지도에 가야 할 루트를 체크하지는 못했다. 전도의 특성상 세부도로가 나와있지 않아 세부 코스를 짜기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큰 번호가 적혀있는 국도로만 가야 할 판이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대한 세부지도만 구글 지도를 통해 프린트해서 챙겨 왔다. 건물은 정확하게 찾아야 하니까.


‘주소와 일본 전도만 가지고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체크된 지도를 보니 여행 전이 생각난다.


*실제 여행 동안 사용한 지도. 갈 곳을 체크하고(주황색), 지나간 곳을 선으로 그으며 여행을 했다(녹색)


#이여행이시작된이유

처음에는 횡단 자체가 목적이었다. 군 시절, 박수민 상병과 김동현 일병이 계획했던 여행은 스쿠터 일본 횡단이었다.


화장실에 비치된 ‘좋은 생각’을 읽다 그 안에 나와있는 책 소개 코너에서 ‘독도라이더가 간다’라는 책을 보고, 외박 때 한 권 사서 들어왔었다. 20대 중반의 친구 네 명이 모터바이크를 몰고 세계일주를 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군인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세계일주라는 것이 나에게 상당히 크게 다가왔다. 매일매일 바이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상상을 하며 나날을 보냈었다.


박상병과 같이 야간 근무를 들어갔을 때였다.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졌을 때, 횡단 여행에 대해 얘길 꺼냈다. 그냥 가십거리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박상병은 그렇지 않고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전역 후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을 목표로 계획을 짜곤 했다.


우리는 세계일주는 부담이 되니, 일본 횡단을 목표로 하였다. 둘 다 모터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었기에, 만만하게 보인 스쿠터로 횡단을 계획했다. 난생처음 스쿠터 잡지를 사서 어떤 기종이 좋은지 보고, 틈이 날 땐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가서 횡단 여행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전역 후, 우리는 사회에서 만나 계획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전역 며칠 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책이 신간 코너에 있는 것을 보았다. 건축학도로써 가장 좋아하던 건축가의 책이니 고민 없이 바로 구매했다. 책을 펴고 단숨에 읽었다. 책을 덮으니 마음속에 숨어있었던 건축에 대한 열정이 올라왔다.


‘안도의 건물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거야!’


수민이에게 이 얘기를 했다. 나의 건축 얘기를 종종 듣곤 했던 수민이었기에 흔쾌히 동의를 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직접 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어, 스쿠터에서 자전거로 변경하였다. 액티비티를 좋아하던 수민이는 오히려 더 좋아하면서 여행용 자전거를 검색했다.


그렇게 우리는 안도의 건축물을 따라가는 일본 건축 횡단을 목표로 여행을 준비했다.



#홀로일본에뛰어들다

매형이 찾아왔다. 그러곤 직접 오니기리를 만들어서 랩을 씌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일본에서는 여행 갈 때 오니기리를 싸간다고 한다. 맨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만 만든 오니기리였지만, 당장 오후의 식사를 걱정했던 나에게는 아주 귀중한 음식이었다. 가방의 가장 위쪽에 매형의 오니기리를 챙겨 넣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샀던 태극기를 꺼냈다. 가방의 오른편에 태극기를 달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달았다. 그리고 일장기를 가방 왼편에 달았다. 혹여나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시에 좋게 봐달라는 뜻으로 말이다.


밖으로 나가 여행 동안 나와 같이 지낼 자전거를 살폈다. 영덕까지 가는 동안 체인이 말썽이었는데, 지금은 큰 문제없어 보인다. 브레이크와 타이어, 전등 등 별 이상이 없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자전거 페니어를 자전거 보조 안장에 단단히 고정하였다.


전날 밤 얼려두었던 물을 냉동실에서 꺼내 챙기고,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왔다. 누나와 매형이 집 밖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그래도 여행 시작인데 사진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아? 카메라 줘봐”


자전거를 타는 모습 뒤로 셔터 소리가 들린다.


큰 탈 없이 잘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페달을 다시 밟았다. 누나가 사는 동네 골목을 나와 도로로 달렸다. 또다시 설렘과 두려움이 다가온다.


누나가 찍어준 나의 뒷모습



#3번국도

우선 규슈지방에서 혼슈지방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타큐슈로 향하기로 했다. 후쿠오카에서 기타큐슈로 가는 길은 많았지만, 그중 가장 빠른 길은 후쿠오카와 연결되어 있는 3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이다. 우선 그 길을 따라가기로 한다.


다행히 3번 국도는 일치감치 만날 수 있었다. 누나네 집에서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3번 국도였다. 길을 따라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섰다. 한산한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3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니 일본에 배를 타고 들어왔던 후쿠오카 항만이 다시 보인다. 문득, 배에서 내려 바로 출발했더라면 여기서부터 시작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일간의 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이 곳으로 다시 올 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코자키궁신사

자전거를 타다 옆을 보니 어떤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급한 것도 아니고, 한 번 둘러보기로 한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에 한글 설명문이 있어 잠시 서서 물그러미 읽어보았다. 이 곳은 하코자키궁 신사인데, 923년에 지어져, 1274년에 원나라 군에 의해 화재에 손실되었다가, 1500년대에 재건이 된 곳이다. 사원 내 건물이 국가 중요문화재라고 한다.


일본의 전통건축양식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 없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여기는 조금 더 세밀하면서 날카로운 느낌이 있다. 민무늬의 지붕 마감이 날카로운 선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사원의 모습이 궁금하여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다. 뭔가 엄숙하고 절제된 분위기의 사원이다.


붉은 기둥의 건물 앞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무녀(?)가 마당을 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채널에서 보던 모습이 눈 앞에 놓여있으니 신기하기도 했고, 내가 정말 일본에 왔음을 다시금 느꼈다.


사원 구석에 놓여있던 식수대가 보인다. 망설임 없이 빈 물병을 가지고 가 물을 채웠다. 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라이딩은 항상 수분 부족을 일으킨다. 비워있던 물병을 다 채운 후 사원을 나왔다. 가득 차 있는 물병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물을 채운 곳은 식수대가 아니라 신사 입장 시 손 씻는 곳이라고 한다.)


사원 입구 밖에 천막이 줄지어 서있다. 어떤 마을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 같았다. 비워져 있는 천막 아래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다. 무슨 행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궁금즘을 뒤로하고 사원을 떠나기로 한다. 3번 국도 위로 다시 올랐다.


신사 앞 도리. 여기를 보고 지나칠 수 없다 생각했다.
하코자키궁 신사
식수대인 줄 알았던 손 씻는 곳. 물 맛은 괜찮았다.
신사 앞, 행사 준비 모습



#응원의커피한잔

기타큐슈로 가기 위해 우선 후쿠오카와 기타큐슈 사이에 있는 무나카타로 향했다. 3번 국도를 달리는 찻길 옆 인도 겸 자전거 도로로 라이딩을 하였다. 인도 겸 자전거 도로라 표현한 이유는 자동차와 별개로 다닐 수 있도록 펜스가 있는 길인데, 보도블록이 아닌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동차와 섞이는 일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시외 국도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도로 주변에는 관리되지 않은 풀들이 무성히 줄지어 있다. 중간중간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식당만이 보인다. 주로 라멘이나 카레 전문점이다. 전통 형식을 반영한 목조로 지은 가게가 있는 반면에, 철근콘크리트에 페인트로 마감한 가게도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가게 풍경을 구경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라이딩을 했다.


어느 라멘집 앞이었을 것이다. 어떤 일본인 아저씨가 내 자전거 앞을 가로막으며 팔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혹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며 아저씨 앞에 섰다. 눈앞에서 웃음 짓는 아저씨 표정을 보니 놀란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를 멈춰 세운 아저씨는 갑자기 캔커피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일본어로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넸다. 아직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운전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너를 봤는데, 뒤에 달고 있는 태극기를 보니 여행객인 것을 알았지. 자전거로 여행하는 너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앞서 가서 기다리고 있었어. 캔커피 하나라도 사주고 싶어서 너를 세웠지. 간바레(힘내라)!”

“아..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자전거 여행을 온 나에게 굉장한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물어왔다. (출발 전날 사촌누나에게 여행 관련 일본어를 조금 배워서 다행이었다.) 나는 ‘도쿄로 가고 있으며,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왔다.’라는 말을 일본어로 최대한 답하고자 노력했다. 안도 다다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안도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해주신 것 같았는데,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다. 당장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몸짓 발짓을 동원해서 서로의 의사를 최대한 전달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출발할 때까지도 ‘간바레, 간바레!’라는 말을 해주시니,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의 표현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아쉬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인의 정이 느껴진 순간이다.


풀이 무성한 3번 국도
간바레 아저씨가 준 캔 커피


#주차장에서먹는첫끼니

어느덧 높은 건물들은 풍경에서 사라지고, 시골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곳에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어딘가 정돈된 느낌이다. 도로포장 상태가 좋아서 그런 걸까.


기타큐슈까지 약 40km 가 남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 노을이 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누나 집을 떠나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달린다는 것에 신경 쓰다 보니, 먹을 것을 챙기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드니 배가 슬슬 고파왔다. 마침 눈 앞에 보이는 로손 스테이션의 주차장에 잠시 쉬기로 한다. 주차장 한 켠에 앉아 매형이 싸준 오니기리를 꺼냈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오니기리를 허겁지겁 먹었다.


후쿠오카 시외 3번 국도 주변 풍경


#Take017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오후 6시쯤

후쿠오카에서 기타큐슈로 가는 3번 국도 중간에 있는 로션 스테이션 편의점. 간이 휴게소에 잠시 앉아 오니기리 먹으며 쉬고 있습니다. 로션 스테이션은 우리나라에도 몇 개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는 편의점마다 앞에 주차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동차) 휴게소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3번 국도를 타고 가고 있는데, 아직도 기타큐슈까지 38km 남았네요. 근데, 정말 자전거 타기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르막도 많이 없고, 평지길로 쭉 왔네요 그냥. 정말 근데 일본 자연경관이 사람 손이 많이 묻지 않은, 그런 형태의 자연경관이라 진짜 고개만 돌리면 영화에 한 장면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게 현실 같지 않은 느낌입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오늘 목표인 기타큐슈까진 가야 되기 때문에, 여기서 이상.


#잘곳을고민하지않았다

배가 채워지니 주변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노을로 덮인 시골의 풍경은 꽤나 멋있다. 이렇게 여행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니 잘 곳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길에서 노숙을 할 생각으로 왔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걱정과 두려움만이 마음에 가득 찬다. 무서워진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늘 잘 곳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런 주차장에서 자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차도 많거니와 사람들도 주기적으로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는 동안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곳은 위험하다. 자전거도, 짐도, 그리고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해가 지기 전에 잘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일단은 3번 국도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어디서 어떻게 자야 하는 것일까.’


두려운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로션 스테이션 주차장 위에서



#처음해보는노숙

해가 떨어지니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졌다. 앞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때쯤, 바로 근처에 보이는 마을로 무작정 내려갔다. 최대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잠을 자기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한다. 마을을 쭉 돌아본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적당히 외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벤치가 보인다. 잠깐 앉아 주변 상황을 보니, 가끔씩 지나가는 차를 빼고는 오가는 사람이 없다. 지금 당장은 이 벤치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여기서 잠을 자야겠다. 지도를 펴서 내가 어디쯤 왔는지 살펴보니, 대략 무나카타 시의 어느 마을인 것 같았다.


여름용 침낭을 꺼내 벤치에 깔았다. 갑자기 놓고 온 텐트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무거워도 들고 올 걸 그랬다. 수민이의 충고를 무시한 대가를 이렇게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침낭을 깔고 잠시 앉아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왔던 힘든 기운이 몰려온다. 그렇지만 낯선 곳이라 그런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자리를 잡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할 일이 없다. 일지를 쓰고, 녹음도 하니, 달리 할 일이 없다. 책을 읽기에도 손전등의 배터리가 걱정이다. 것보다 나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 멀리서 개가 끊임없이 짖는다. 계속 짖느라 지칠 법도 한데, 기운도 좋은지 밤새 짖는다. 아무래도 나를 향해 짖는 것 같다.


#Take018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한 9시쯤 됐는데,

무나카타와 미즈나라 사이에 있는 어느 한 마을 벤치에서 오늘을 마감하려 합니다. 여기 뒤에 있는 개가 너무 짖는 것 빼고는 잠자리론 무난하네요.

아까 오는 길에 태극기를 달고 다녔는데, 뒤에서 차를 타고 오시면서 저를 보셨는지, 앞에서 저를 기다리셨더라고요. 저를 세우더니 커피 한 캔을 쥐어 주시면서, ‘간바레 간바레’ 하면서 힘내라고. 그분 커피 잘 마셨습니다. 하하. 그리고 또, 가는 길에 어느 차 안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주먹을 쥔 모습으로 힘내라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일단 오늘의 소감은 그래도 정이 있는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한 50km 달렸는데, 아직도 기타큐슈까지는 30km 남았고, 시모노세키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겠군요. 일단 오늘은 여기서 정리를 하고. 너무 어두우니까 달리기 힘들어요.

자 그러면 이상 끝내겠습니다.
잠을 청했던 벤치



#잠이오지않는밤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서서 돌아보기도 했지만, 참 시간이 안 간다. 누워서 잠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이 두렵고 어색한지 정신만 또렸해진다.


‘자는 동안 누군가 내 자전거를 가져가면 어떡하지?’

‘내 짐을 도둑맞으면 어떡하지?’

‘나를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 …’


자는 곳에 얽매이지 않고, 다니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는 여행을 호기롭게 계획했던 나 자신이 무모하게 느껴진다. 자유로워지는 만큼, 위험도 커진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 이런 여행을 왜 왔을까.


억지로라도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생각을 비워본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따금 올라오는 개미들이 더더욱 잠을 방해한다.

그만 좀 물었으면 좋겠다.

너무 따끔거린다.


아직도 개가 짖고 있다.


#자전거일지0723
달린거리 : 55.32 km
누적거리 : 359.06 km
일본누적거리 : 129.80 km
평균속도 : 15.60 km/h
최고속도 :  35.80 km/h
달린시간 : 3:31:59
#정산0723
- (미기록) : 1500엔




2010년 7월 24일 오전 1시


#Take019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새벽 1시쯤.

쉬운 게 아니네요 이게. 진짜 아무것도 없이 잠만 자려니 더 힘드네.
지금 누워서 계속 눈 붙이려 노력해도, 자리가 편한 것도 아니고. 잠은 오는데 잠은 안 자고.

진짜, 자야 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6. 후쿠오카 동네 마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