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 Nov 05. 2024

나 쿠바 사람 같아??

아름다운 플로리다 #5



플로리다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곧바로 리조트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고, 우리 룸으로 가려는 그때 한 남자 직원이 다가와 짐을 실어줄까 하고 물었다. 남편이 그래주세요, 라고 대답하자 직원은 웃으며 우리 가방을 카트에 실었다. 키가 크고 구릿빛 피부에 짙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그는 가방을 우리 룸으로 옮겨주며 자신을 쿠바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두달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나는 남자가 이민자라는 그의 히스패닉 영어엑센트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다. 플로리다에는 히스패닉이 많다더니 진짜 그렇구나 싶었다. 리조트의 다른 직원들 역시 그 남자처럼 히스패닉 엑센트를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손님과 대화할 때가 아니면 자기들끼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때문에 플로리다에 있을 때면, 여기가 과연 미국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레스토랑이나, 쇼핑몰, 혹은 길을 걸을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많이 듣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쿠바 음식점. 플로리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많은 쿠바사람들이 이민을 온다.



쇼핑몰에서 만난 친근한 얼굴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어딜가든 물건들을 많이 사는데 여행용 기념품이 아닌 실생활에 쓸수 있는 좋은 물건들을 주로 구매한다.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이 이용하는 큰 쇼핑몰을 주로 간다. 그날도 옷을 구매하기 위해 몇가지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들고 피팅룸에 들어갈 때였다.

검은 곱슬머리카락을 가진 직원이 내게 스페인어로 말했다. 내가 아는 스페인어는 올라, 그라시아스 정도가 전부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껏 '몇 벌을 입을 것인지', '구매 안 할 물건은 이쪽으로 놓거라' 등등의 이야기로 이해하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길에서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더 많이 듣는 플로리다. 때문에 직원들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고용했나보다 싶었다. 나는 그냥 저사람이 영어를 못하나 생각하며  나는 옷을 입어본 후 구입하지 않을 옷은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 점원은 나에게 무언가를 더 말했다. 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대충 이해했다는 표시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 남편이 내 쪽으로 왔다. 그 역시 이미 몇 벌의 옷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곱슬머리 직원을 보며 말했다.


"와, 여기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일할 수 있나봐. 히스패닉 손님 비율이 정말 높아서 그런건가?"


나의 말에 남편은 화뜰짝 놀랐다.


"저 사람 영어할 줄 아는데?"

"무슨 소리야? 나한테는 스페인어만 쓰던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 들었어."

"나한테는 영어로 말했어. 저사람."


나와 남편은 구릿빛 피부에 검고 곱슬인 머리카락을 가진 직원을 보았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과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흰 피부에 갈색머리를 가진 남편에겐 영어로,  그리고 구릿빛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나에게는 스페인어로.


순간 나는 '내가 쿠바사람처럼 생겼나?' 싶었다.


그 후부터, 나는 히스패닉들의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했다. 구릿빛 피부와 어두운 머리카락, 그리고 높은 코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주 가끔, 저사람은 중국인인가 싶을 만큼 아시안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여기는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지. 이곳에선 피부색, 머리 색깔만으로는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마 그 직원은 나를 히스패닉으로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인사했던 것일 것이다.



플로리다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미국과는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인'이란 단어조차도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수많은 이민자들 사이에서 다수와 소수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 또한 그저 한 명의 이방인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서 "아시아계 이민자라서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을까?" 같은 걱정은, 오히려 어디서든 편안하게 숨 쉬는 기분을 준다. 스페인어와 영어, 그리고 다양한 언어들이 뒤섞여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곳은 그 자체로 다양성의 상징이자 소중한 경험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국인”의 이미지, 즉 낯선 이와도 스스럼없이 “하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대뜸 스몰톡을 시작하는 미국인들은 이곳에서는 의외로 잘 보이지 않는다. 플로리다는 다채로운 문화와 언어가 뒤섞여 평온하게 공존하는 환경을 가지고,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기 좋은,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마지막 날, 리조트의 직원은 히스패닉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로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쿠바 음식들.



영어를 잘 못하고 스페인어를 쓰지만, 그들 역시 미국인이다. 다양성의 나라인 미국!



이전 13화 도마뱀 천국 미국엔 악어도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