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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Nov 08. 2024

천재 남편의 미국 고등학교 이야기

아름다운 플로리다 #6


내 남편은 천재다.

물론, 내가 “자기, 진짜 천재야!” 하고 내가 남편에게 말하면 그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하곤 한다.

“아니야, 난 천재가 아니야.” 하고.


반쯤은 농담인듯 가볍게 던진말임에도 이토록 진지한 반응을 하는 걸 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나보다.


남편의 어린 시절 동네



그럼 과연 그의 과거는 어떠할까?


링크드인에서 보는 남편의 커리어는 헉 소리가 나올만큼 훌륭하다. 그래서 그가 어린 시절 똑똑한 아이였다는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떤식으로 똑똑했을까?


 IQ 테스트를 하고, 영재 학교를 가고, 전교일등을 하는 한국식 어린아이처럼 똑똑했을지, 아니면 미국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그런 엉뚱한 아이였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미국에서 자라고 커리어를 가지는 동안, 나는 그와 지구 반대편에서 자랐으니까. 한국과 미국은 교육방식도 문화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르다.


그래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남편의 과거. 나는 이번 플로리다 여행에서 그의 과거의 조각 일부분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의 어린시절이 있는 플로리다


플로리다는 그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지낸 곳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과거를 물으면, 태어났던 게스토니아가 아닌, 플로리다의 이야기를 주로 해준다. 그만큼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집 일부분


렌트카를 타고 그의 어린 시절 동네를 둘러보던 우리는 내친 김에 그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살던 집에 들렀다. 하지만 이건 뭘까? 분명 제대로 주소를 찍고 찾아왔는데, 이런 공사현장만이 보였다.


"집을 허물어버린건가?"


그의 말에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공사장 뒷편에 과거의 그 집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가족은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는 듯 했다. 새로운 주인이 있는 집이기에 우리는 더이상 가까이 다가 가지는 않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오해했던 공사장은, 내 시아버님이 닭을 키우던 농장 지대를 허물고 무언가 짓고 있는 중이었다. 닭들의 놀이터가 사라진 건 아쉽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편의 과거가 남아 있음에 기쁨을 느꼈다.



남편의 고등학교 운동장



그후 우리는 남편의 고등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여전히 학생들이 북적이는 고등학교였다.


남편이 살던 지역은 중학교 2년, 고등학교 4년 과정이었는데 남편의 교육과정은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고등학교 2년에 남은 과정을 전부 끝내고, 오후에는 차를 운전해 인근 대학교로 가서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똑똑한건 알고 있었지만, 미국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일이 남편에게 있었다니 놀라웠다.

나는 호기심에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남편의 고등학교



"대학에서는 어떤 수업 들었어?" 내가 묻자, 그는 뭔가를 떠올리듯 눈을 반짝였다.

"응, 컴퓨터 사이언스 수업 들었지. 그때 같이 수업 듣던 대학생 중 한 여자애가 나한테 호감을 보였었어."

 남편이 다소 자랑스레 말하며 이어서 덧붙였다.

“아마 내가 고등학생이라는 걸 몰랐을 거야.”

그는 잠깐 말이 끊긴 후, “근데 난 관심 없었어. 그냥 친구였지.”라며 결론을 내렸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굳이 덧붙이는 그가 재미있었고, 이 대화 덕분에 남편의 학창 시절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생 남편이 수업을 들은 대학교 건물


우리는 그가 수업을 들었던 대학교도 들렀다. 여기가, 네가 다녔던 학교란 말이지? 하고 나는 그의 어린시절을 상상했다. 꼬마 주제에 머리 좀 좋다고 어른인척 하고 다녔을 남편을 생각하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타 지역에 있는 공학대학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그 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 오랜시간이 외로움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삶을 누린다 한들,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남편의 나와의 삶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안일도 매우 기쁘게 한다. 설거지하고 방청소하고, 하는 그런 자잘한 일들도 행복의 일부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럴때마다 장난스럽게, "자기 진짜 천재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어김없이 “아니야, 난 천재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긴시간동안 ‘천재’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서인지, 그 말은 이제 농담으로 웃고 넘길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보다.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 그를 천재라 부르며 사랑해주고 있다.



글 / 사진  다이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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