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플로리다 #7
미국에 관심이 없는 내 한국 친구조차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다는 플로리다. 그만큼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이곳은 유명한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에게 플로리다는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은 나의 남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자, 우리가 향후 미국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릴 후보지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플로리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따뜻하고 습한 공기 속에서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참고로 한국에서 플로리다로 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 내에서 환승을 거쳐야 하기에, 인천을 출발하여 목적지인 올랜도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비행시간만 18시간이 걸린다. 환승 대기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는 그 시간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초록이 우거진 열대 나무들과 하늘 위로 비치는 햇살이 어우러져, 마치 지상의 파라다이스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렌트카를 타고 플로리다 여러 지역을 돌면서, 차창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태양열을 느끼며 우리는 이곳에서 살 경우 어떤 모습일지 상상에 빠졌다.
바다 근처에서는 어떠할지, 강이나 호수 주변에서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내 직장은 어디서 구할 지 등 모든 것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다. 마치 대학교 입학을 앞둔 청소년처럼 우리는 들떴다.
마음에 드는 동네를 발견하면 미국 부동산 앱인 질로(Zillow)를 열어 가격대를 확인하고, 근처 마트와 상점들을 점검했다. 또한, 호수에서는 플로리다의 야생 악어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악어는 전혀 보지 못했다. 기차가 다니는 모습도 보았고, 한국 음식점과 다른 아시아 음식점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 모든 것들이 플로리다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 속에서도 나를 감싸는 두려움이 있었다. 플로리다는 우리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와는 달리, 스패니쉬 비율이 높은 곳이다. 거리에선 체감상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더 자주 들었고, 언어 때문인지 사람들의 성향도 다르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아시안인 내가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나는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설렘과 정착의 걱정을 모두 안고, 플로리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미국 이주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지역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후 한국에서의 나날은 바쁨의 연속이었다. 회사와 집을 왕복하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고 개인 작업들을 틈틈히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해가 극적으로 짧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10월말부터였나.
아침해는 늦게 뜨고 이른 저녁 사라졌다. 일조량이 부족해지자 사람들은 우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을탄다라고 하기엔, 회사에서의 주요 프로젝트가 빛과 생체리듬에 관련된 것이기에,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과 관계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 보스턴은 오후 4시면 일몰이 된다고 한다. 한국은 오후 6시가 넘으면 어두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플로리다를 생각했다.
일년내내 덥고 습한 날씨인 그곳은 겨울이 되어도 해가 길다. 물론 한겨울엔 0도가 되는 날이 하루정도는 있지만 추위를 고려할 만한 곳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년 내내 해가 길고, 일조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말은 일년 내내 안정적으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래서 플로리다가 좋은거야."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아마도 우리는 높은 확률로 플로리다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여유롭게 미국식 아침을 먹고 바닷가를 걷고 개인작업을 하거나 출근을 하고, 저녁시간이면 다시 둘이서 손을 잡고 레스토랑을 가고 잠이 드는 하루.
나는 사진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그림을 그릴수 도 있고, 평생 커리어를 쌓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남편은 그동안 미뤄뒀던 개인 작업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니,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