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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소영 Dec 03. 2018

그래도 될까?

빗장을 푸는 일.

내 이름은 마리아다. 유아세례를 받을 때 할머니가 지어주셨다. 이 이름은 많이 불릴 일이 없었다. 종종 불리운 것은 최근에 들어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살면서 경험한 어려움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육아를 경험하며 나는 성당에 집착했고 지금도 꼭 움켜쥐고있다.


이르면 6시에 시작되어 늦게는 12시가 넘어 끝나는 내 하루는 잠시의 휴식 없이 꽉 찬 스케줄로 돌아간다. 몸은 쉴지언정 머리는 끊임없이 다음 스케줄을 예비하고 계획한다. 그렇게 5년이 되어가니 무엇이든 붙잡고 의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내 힘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매일미사를 드리고 고해성사를보고 다짐하고 기도하며,

그렇게 순항하듯 보이는 일상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우울증이라고 해야하는걸까.

표면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는데.

몸 안으로 숨 쉴 공간도 없이 무언가가

가득 차서 당장이라도 부서지거나 터지거나 할 것만 같다.

예민해진 신체는 잔뜩 긴장해 작은 소리나 자극에 쌀쌀맞고 냉정하게 반응하고

비아냥대며 속으로 욕을 삼킨다.


짐이 너무 많다. 무겁고 숨이 막혀.

ㅡ내려놓으면 되지.

어떤 걸?

ㅡ가장 덜 중요한 것부터.

그게 내 일이야.내 취미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돼는 가장 극단의 지점에 와 있었다. 덜어내지 않는다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ㅡ좀 더 편안하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할 수 없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ㅡ눈을 감아.
너를 좀 내버려 둬.
그래도 괜찮아.

할 수없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일상은

조금이라도 삐끗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격의 기준을 건드려놓는다.

엄마.작가.아내로서.

자격을 증명하지 못하면 세 번째 자아는 나에게 가차없이 비난을 퍼붓는다.


세 번째 눈.

내부의 적.

심판하고 가르고 벌하는 나.


포기해 버린다면.

갈증에 질식당해버릴거야.


모든 것을 쥐고 모든 것을 조금씩 양보한 일상.

간신히 찾은 균형이 반복되며 무거워져 과부하에 걸려버렸어.


솔직한 마음에 일에 대한 의지라기보다도
나는 엄마.아내를 놓아버리고싶다.

이것은 늘 양심에 큰 가책으로 남는다.

내 의지와 욕구대로 하루를 굴리는 것에 대한 갈망..그것은 정당히 대접받지 못하는 나쁜 욕심.


짓눌리고 짓눌리고

숨이 막혀

차라리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는 것을.


어깨가 많이 뭉쳤고 덕분에 두통이 계속되고있다.

혼자서 풀어내는 것의 한계다.


매달리고 있는 팔에도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감고.


숨을 쉰다.


빗장을 풀고.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그래도 될까?
그래도 괜찮을까?


일단,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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