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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Jan 23. 2024

공연(空然)한 일

손으로 쓰는 글

손택수 시인의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는 시를 참 좋아한다. '공연하다'는 무엇이 아무런 까닭 없이 실속이 없다는 뜻으로 주로 '공연하게', '공연한'의 형용사로 쓰인다. 시를 읽고 나면 항상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듯 고개를 떨구며 겸손한 마음이 된다.


태풍이 올라와 텃밭이 엉망이 될 것이 뻔한데도 흙무더기를 끌어와 다독거리는 노파처럼, 비가 오면 분명 다시 어질러질 텐데도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 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처럼, 치우고 나면 쌓이고 또 쌓이는 눈을 무심히 치우는 일처럼. 나는 살면서 그런 공연한 일들을 얼마나 해보았을까 뒤돌아보게 된다. 실속이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에 대해 늘 불평하고 불만을 품지는 않았던가.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늘도 그랬다. 아이가 부쩍 활동량이 많아지면서 장난감과 책들이 거실과 온 집안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할 때가 많아졌다.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또는 조금 정돈된 형태로 정리해 주는 일이다. 장난감과 책들이 그냥 널브러져 있게 두면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보는 나도 아이도 산만해져서 노는데 방해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닥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블록들을 상자에 다시 집어넣으면서도 속으로는 한숨을 쉰다.


'아휴, 이래 봤자 또 쏟아붓겠지.'

'에고. 정리해 봐야 뭐 하나. 또 금세 어지럽혀질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찰나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게 바로 공연한 일들이구나. 열심히 해봤자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 실속도 없는 그런 일. 그런데 그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나는 어떻게 이렇게 매일같이. 피곤해하면서도. 지쳐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공연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게 하는 그 마음들은 얼마나 공연하지 않은 것인가. 참으로 다행이다. 내 삶에도 공연한 일들이 생겨서. 글을 마무리하며 좋아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 한 구절이 생각난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정말 먼지가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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