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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석 Nov 06. 2019

광고천재 이제석에게 배운다.

2010.10.16 23:37


광고인 이제석
광고인 이제석.
사람들은 그를 '광고천재'라 부른다.
오래전부터 나도 그 중 한명이다.
이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창의적인 광고들을 많이 접해보고자 했으며
그의 광고를 보고서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소비자의 지갑을 노리기 위한 수단인 줄만 알았던 광고가
그의 손에 만들어진다면 '작품'이 되었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을 가지고 정말 획기적인 광고를 탄생시키곤 하는데
내 가장 큰 가치관 중 하나인 '다르게 생각해보자'와 일맥상통하여서 더욱 감명깊었다.
나는 광고인을 꿈꾸고 있지않고있지만 그의 작품과 그는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 즉, 창의성을 '광고'라는 것에 투영시키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그 '창의성'을 충분히 투영시킬 수 있다.
즉, 그가 광고인이라고해서 광고인지망생들에게만 교훈을 주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를 천부적인 창의적 인재라고 생각해오기도 했다.
아니, 그냥 말그대로 '천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 '광고천재 이제석'을 읽고난 후
그는 결코 선천적인 천재가 아니라 스스로 천재로 발전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을 천재로 만들어나갔을까.
장담하건데 그의 그 비결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면 당신도 '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를 통해 무엇을 얻어가야 할지 함께 살펴보자.
어린 시절의 이제석. 영락없는 '루져' ?


천재에게 어린시절 연필이란 무슨 존재였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기 위한 도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석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연필이 공부의 도구는 아니였다.
즉, 공부에는 영 신통치 못한 아이였던 것이다.
때문에 당연히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취급을 받을 뿐만아니라
모범생들의 '한심하고 안쓰럽게 보는 시선'을 받으며 자랐다.
더욱이 친 형이 훗날 의사가 될 만큼 공부를 무척이나 잘했고 친척 또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어른들에게 이제석은 문제거리일 뿐이었을 것이다.
공부 못한다고 때리기도 하고 들들볶는 학교에서의 불만,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안좋은 시선의 불만.
그에게 '연필'은 이러한 것들을 해소시키는 탈출구였다.
그는 '학교선생님들을 조롱하는 만화'를 학교에서 그려댔다.
그리고 그의 만화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였고 말이다.
이 만화가 선생님들에게 걸려 크게 혼이나기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그 만화를 보고 화를 내지 않으시고 '미대'를 가보는게 어떻냐고 제시해주시기도 했고
미술선생님은 유일하게 그의 실력을 높게 사주셨다.
그는 미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로 갈 수 있는 대학교이기도 하고
성적이 조금 낮아도 갈 수 있는 4년제이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대구의 대표 미대였던 '계명대학교'를 목표를 삼고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열심히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를 하며 공부했고
결국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였다.
훗날인 지금 그는 저서에서 당시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까닭에 그리게 되었던 만화가
지금 그의 창의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았던 그의 행동이 오늘의 이제석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옛날 위인전이나 신화속 '천재'의 어린 시절은 정말 비범하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거의 '비범한 능력'이 없으면 '죽어라 공부해서' 성공해야한다고 교육한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창의성을 힘으로 천재소리 들으며 성공할 사람이라면


그의 어린시절은 비범한 능력이 나타나는 시기가 아니라 비범한 능력을 만들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죽어라 공부해서 남들보다 지식을 많이 쌓아 학교에서 1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나가서 생각할 수 있는 마인드와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인드와 능력은 결코 주입식, 암기식으로 이루어지는 학문쌓기로는 완성될 수 없다.


말썽을 부려보기도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일을 해보고 경험해보면서


느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창의성을 실제 '광고'라는 시각적 요소로 표현하고 있는 광고인 '이제석' 또한


어린시절 공부가 아닌 만화를 그렸던 경험과 느낌을 오늘날 창의력의 비결로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천부적인 능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공부, 공부'만 외치는 나라와 부모님들의 교육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깊에 느껴볼 필요가 있다.


대학수석졸업한 그가 얻은 것


물만난 물고기 이제석은 일주일 내내 그림을 그릴 수있는 미술대학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여 수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는다.
초중고등학교에서와는 달리 학교생활에 정말 충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수석졸업을 한 그는 사회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의 출품작들은 공모전에서 계속 무시당하기만하고
토익성적, 명문대 간판을 요구하는 큰 기업에서 오라는 제의는 당연히 없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세계 광고제를 싹쓸이 한 사람인데
취직은 커녕 공모전 수상까지 하지 못한 그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광고쟁이가 광고만 잘하면 되지 왜 토익 성적이 필요하고, 왜 명문대 간판이 필요한 걸까?


창의력을 이런 잣대로 잴 수 있는가?


태평양 물은 몇 바가지, 대서양 물은 몇 바가지 이렇게 바가지 타령을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가 저서 프롤로그에 적어놓은 글 중 한 부분이다.


저 말과 저 표현 모두 완벽히 옳다.


물론 훗날 유학을 떠나 더 성장하긴 했을것이지만 세계의 광고제를 싹쓸이할 능력을 지닌 이제석이


한국에서 완전히 무시받았다면 분명히 한국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창의력을 실제 눈으로 보게 만들어야하는 '광고'분야에서도 이정도이니 다른 분야에서는 오죽할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창의경영을 모토로 내세우면서 진정으로 창의적 인재를 알아볼 능력과 의지조차 없고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스펙쌓기에만 열중하는 것이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


"그기 무신 30만 원짜리고, 나한테 10만 원만 주면 훨씬 잘해주겠구만."
그의 인생을 바꾼 한마디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에 기업 취직에는 여러움을 겪고
스스로 동네에서 간판집을 창업하여 동네 간판디자인일을 하고 있었다.
비록 대학수석졸업 치고는 소소한 일이지만 
나름대로 동네의 이미지를 바꿔가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제석의 자존심을 긁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단골 국밥집에서 간판 한번 바꿔보라고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30만 원을 제시하고 있던 이제석에게
옆에서 국밥을 먹던 동네 찌라시 명함집 아저씨가 
그런걸 무슨 30만 원씩이나 받냐며 자신은 10만 원에 해결해줄 수 있다고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밥집 주인은 그 말에 솔깃해버렸고 말이다.
이제석은 동네 찌라시 아저씨와 동급취급. 아니, 더 모자란 취급받는 현실에 충격을 받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냥 마음가짐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세계 최고의 광고인들이 어디있는지 알아보았고
그곳이 미국의 뉴욕이라는 것을 알게된 후 곧바로 뉴욕행을 결정하였다.


마침내 안분지족하던 천재가 화가났다.


만약 이제석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소극적이고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가짐 없이 그대로 동네에서 머물렀다면


당연히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저앉지말고 움직여보라는 교훈을 주는 부분이다.


자신에 대한 강한 자존심을 갖고 부조리한 사회와 한번 부딪혀 보려는것도 멋있는 자세같다.


뉴욕, 진짜 가다.


그는 실제로 1년 뒤 뉴욕에 가겠다고 목표를 잡았다.
그가 1년의 준비기간을 남긴 이유는 적어도 영어를 해야 가서 배우지 않겠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살던 대구에 변변한 어학원이 있지도 않았고 금전적 여유도 부족하였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미군부대에 공짜로 미술 수업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해 승인을 받았고
강좌를 개설하여 그 안의 미군과 미군가족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혀갔다.
이렇게 영어까지는 왠만큼 배웠다고쳐도 환상의 도시 뉴욕에 멋지게 입성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요즘의 많은 학생들처럼 부모님이 돈을 다 대주고 편하게 몸만 왔다갔다 하는게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에겐 편도 티켓 한 장과 단 돈 500$가 전부였다.
한국에도 60만 원들고 유학오는 외국인이 있으면 미친사람 취급받을 텐데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비싼 뉴욕에 정해진 숙소도 없이 60만 원을 들고갔으니 오죽했겠는가.
그가 선택한 학교는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 SVA)이다.
이제석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최고의 강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광고계를 이끄는 걸출한 스타이자 BBDO의 수석 아트 디렉터인 프랭크 안셀모,
뉴욕 DDB의 부사장이자 로또 'You never know' 캠페인의 창집자 잭 마리우치,
아트 디렉터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리처드 와일드가 있는 곳이였다.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간 이제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 최고에게 배우는 것이였던 것이다.
SVA 같은 경우에는 이제석의 좋은 성적으로 거둔 졸업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학비의 절반을 지원해주어서 그나마 어려운 형편에 가능했다고한다.


그의 미국 뉴욕 유학행은 우리 한국사회의 많은 유학예비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요즘은 유학이나 어학연수가 초중고졸업처럼 필수 스펙으로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이를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데 과연 그게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대학교에 다니다가 이대로 졸업을 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취직은 해야겠으니 일단 유학이나 가보자.


그것도 부모님의 돈으로.


혹자는 글로벌인재가 되겠다 어쩌겠다 나름대로 멋진 의미를 부여하고 갈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한국에서 그대로 사회에 나갈 자신이 없다는 이유를 멋지게 포장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석은 달랐다.


그는 미군부대에 들어가 영어를 배울만큼 간절했고, 500달러만 들고 유학길에 오를 정도로 결심이 강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꿈이 확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SVA에 들어가서도 다른 수업은 하나도 듣지않고 오직 광고수업만 신청하여 그것에 집중했다.


이정도만 언급하고 그의 생활 에피소드를 여러가지 소개하지 않아도


그가 얼만큼 힘들게 생활했고 그 힘든만큼 열심히 실력을 쌓아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정도로 노력했기 때문에 그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석의 미국행 스토리를 보고


그저 한국에서는 무시받다가 미국에가니 드디어 빛을 발휘하고 인정받기 시작했다면서 역시 미국은 다르다.


이런 소리만하곤 하는데 참 어처구니 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런 느낌만 받는 사람은 미국에 유학갈 돈으로 로또 복권에 올인하는게 훨씬 이득일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물이 넘치다.


'대기오염으로 한 해 6만 명이 사망합니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각종 공모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빽도 없고 돈도 없던 그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거의 모든 공모전을 '싹쓸이'하기 시작한다.
위의 광고는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원쇼 광고제에서 2007년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매연을 배출하는 튀어나온 굴뚝 아래에 권총이미지를 붙여서 
그 매연이 우리 인간을 해치고 있다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달하였다.
어느 누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광고 작품이다.
세계 최고의 광고제에서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내자 이제부터 이제석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그를 전폭 지원해 줄 뿐만아니라 곱게 보지 않던 외국인 친구들도 먼저다가오기 시작했고
매우 좋은 인턴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공모전을 한 작품으로 모두 싹쓸이 하는 등 좋은 모습을 계속보여주며
초봉 7만 달러를 제안받기도 하는 등
드디어 '성공'을 거두게 된다.


공모전을 통해 그는 인정받기 시작했고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그에겐 어두운 한국에서의 공모전 '스펙'이 있다.


단 한차례도 수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무대에서는 연일 수상을하고 글로벌기업이 못데려가서 안달이 난 것일까?


우리나라의 공모전의 현실을 되살피게 하는 스토리이다.


우선은 제대로된 '명작'을 선정할 능력이 있는지가 의문이들고,


또 하나 다른점은 해외 공모전은 출품작이 주최측에 귀속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석은 한 작품으로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하며 더욱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 공모전이든 출품작은 주최측에 귀속된다고 명시되어있다.


내가 낸 출품작은 수상을 하든 꼴찌를 하든 주최회사가 어떤식으로 사용해도 할 말이없다는 것이다.


실제 내 주변에도 수상은 못했지만 실제 광고에서 활용되는 등 억울한 사례가 존재한다.


진정한 인재를 골라낼 수 있는 공모전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석같은 인재를 잃게 된다면 국가적 손실일테니.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라는 미국 속담을 인용해 만든 반전 광고
New York Festivals 옥외부문 그랑프리
D&AD 본상
CLIO 포스터부문 최고상 
이 작품으로 세계 3대 광고제를 포함한 5개 주요 국제 광고제에서 받은 상만 12개.
광고로 세상을 이롭게 하다.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


내가 그를 단순히 '성공인'으로서 비결을 연구하고 칭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유는 그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마 상업광고에서만 계속 활동했다면 지금쯤 헬리콥터로 이동을 하면서
편하게 일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광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거부하던 국내 대기업들도 그에게 제발 와달라고 하는 지경이니
편하게 한국 대기업에 취직해서 연봉 몇 억씩 받아도 무난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좋은 광고, 정직한 광고를 만들고 싶어 
작년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열었다.
이러한 그에게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냐느니, 유학을 다녀와도 돈 벌긴 글렀다느니 말이 많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광고로 끊임없이 사회 이슈를 만들어 갈 거라고. 
그 이슈에 내가 적극 반응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거야. 
작은 재능이라도 사회에 기부하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러다 돈이 벌리면 다행이지만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싶진 않아. 
너네들처럼 야금야금 재능이나 축내고 월급에 목매년서 살고 싶진 않다고! 
그러면 도대체 내 삶에서 남는게 뭐냐고."
그는 보는이로 하여금 지갑이 아닌 심장이 움직이는 광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10억을 기부할 수 있겠지만
이제석은 그의 가슴뛰는 광고로 사람들이 10억을 기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멈추지 않은 창의력으로 저먼 미국땅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얻고도
결코 자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 능력을 사회를 위해 펼치는 그를
존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사회에 이러한 훌륭한 천재가 있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고
앞으로 한국사회가 이러한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해외로 유출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일이 많음을 느낀다.


' 콩 한쪽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사랑의 열매 기부 광고


' 연장이 아닌 연필을 쥐어주세요. ' - 월드비전 빈곤국가아동돕기 기부 광고
당신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대한적십자사가 헌혈만이 아닌 기부금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광고


이제석에 대한 글을 마치기 전에 꼭 짚어봐야할 점이 있다.
바로 그의 '창의력'의 원천은 어디인가에 대한 것이다.
모두가 궁금할 것이다.
그는 이 질문에 항상 '파괴'라고 대답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으면 기존의 것을 부셔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그의 비결은 '관점을 바꿔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블로그의 이름이자 내 가치관인 '다르게 생각해보자'와 일맥상통한다.
관점을 바꾸면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에 창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옳다는 것에 목매봤자 극소수만 목적을 이룰뿐이며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인드를 바탕으로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나만의 룰'을 만들어 세상을 헤쳐나갈 것을 조언한다.
창의력을 키워나갈 뿐만아니라 남들이 뭐라하여도 반드시 이룰 수 있는 의지.
그에게서 배워야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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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 중 이제석씨의 개인적인 삶 스토리는 그의 저서 '광고천재 이제석'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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