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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 Feb 16. 2023

LP가 영원할 거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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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은 아티클은<diffe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취향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좌절하는 이 질문 앞에 흔쾌히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있다. 국내 유일의 LP 제작 브랜드인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LP를 사랑했고 지금도 새로운 LP를 받아 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이 직업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직업

LP 제작자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

Q. 국내 LP 시장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2010년 즈음부터 전세계적으로 LP 열풍이 시작됐지만, 당시에 한국은 아직 LP 시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린다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또 다른 주류의 문화로 다시금 자리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LP에 대한 설렘을 잊지 말자’. 설렘은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 준 감정이다. 설렘과 재미, 흥미로움이 있어야 때로는 새롭고 무모한 도전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오랜 취미가 직업이 되다



학창시절부터 LP를 수집했다고요. 처음 LP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섯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유품 중 하나가 전축이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그분의 물건이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특별했고, 더 아끼게 됐죠. 그때부터 LP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생겼던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1980년대는 그야말로 LP의 전성기였어요. 등교하자마자 친구들과 ‘새로 나온 판’ 얘기를 하고, 용돈을 모아 LP를 사는 게 무척 자연스러웠던 때였죠.

좀 더 취향을 담은 컬렉션을 구축했던 시기가 있었나요?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 레드 재플린이나 에릭 클랩튼 같은, 좋아하는 뮤지션의 LP를 위주로 모으기 시작했어요. 대학 진학을 하며 서울에 오니 또 다른 신세계가 열렸죠. LP를 구할 수 있는 가게도 많고, 무엇보다 자취방이 생기며 혼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정말 좋았어요. 그러던 중 <레코드 포럼>이라는 음악 잡지에서 음악 평론을 공모했을 때 상품을 받고 싶은 마음에 응모를 했는데, 덜컥 당선이 되어 평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졸업 후에 그 잡지의 기자가 되었고, 또 6개월 후에는 편집장이 되었죠.
그 모든 게 1년 안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 후로 음반 기획과 제작자, 프로듀서, TV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의 음악 감독을 차례로 경험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게 됐습니다. 공연 연출은 지금까지 이어서 하고 있고요. 그렇게 30대 초반까지 치열하게 음악에 관련된 일들을 하며 영역을 넓혔는데, 결과적으로는 현재 LP를 만드는 일에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만난 뮤지션이 새 앨범 LP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요.




LP를 즐기는 모든 과정이 아날로그 라이프




다시금 음악을 감상할 시간



마장뮤직앤픽처스(이하 마장뮤직)의 대표가 된 2017년은 국내 LP 생산이 중단된 지 13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아직 국내 LP 수요가 적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재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유일의 LP 생산 브랜드가 사라진다면 앞으로 국내 LP는 모두 해외에서 제작될 텐데, 그것만은 막고 싶었어요. 그래서 백희성 엔지니어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다시 시작해 보자고 설득했죠. 언젠가 한국에도 LP 부활의 시기가 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 기대가 맞았어요. 마장뮤직의 2017년 생산량이 최대 2만 장이었는데 4년 만에 정확히 10배가 성장했거든요.

올해 마장뮤직 공장을 서울에서 하남으로 이전했으니 성장 그래프가 더욱 가파르겠네요.
2022년은 마장뮤직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 해로 기억될 거예요. 앞으로 이곳에서 더 많은 LP를 생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의지와 기대도 많이 생기고요. 2023년에는 30만 장, 아니 40만 장을 목표로 세우려고 합니다.

마장뮤직의 LP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마장뮤직을 재개한 후 처음 생산한 LP가 고(故) 조동진 선생님의 6집, <나무가 되어>였어요. 우리나라 LP 역사에서 선생님의 이름은 매우 특별하기 때문에 저에게도 의미가 남달랐죠. 그 앨범으로 인해 국내 LP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조동익, 장필순, 빛과 소금 같은 독보적인 뮤지션의 앨범을 생산하며 국내 LP의 높은 기술력을 재평가받을 수 있었어요. 백예린과 크러쉬 등 젊은 뮤지션들의 LP도 제작하게 됐고요.

2020년에 LP 판매량이 34년만에 CD 판매량을 추월했다고 하죠. 그 시기가 묘하게 팬데믹과 맞물려 있습니다.
늘 마이너였던 LP가 드디어 메인 스트림의 제자리를 찾은 거죠. 그 과정에서 팬데믹의 영향이 분명 있었다고 봅니다.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악도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비로소 허락된 거죠. LP를 수집하거나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모든 과정들이 곧 ‘아날로그 라이프’라고 할 수 있잖아요. 아날로그와 무관한 세대들에게는 조금 느리고 번거로울 수 있는 일들이 오히려 더 흥미롭고 힙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최근에 생산되는 음악들은 점점 길이가 짧고 속도도 빨라져 갑니다. 듣는 사람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다음 곡으로 넘기죠.
예전에는 음악 뒤에 ‘감상’이라는 단어가 붙곤 했어요. 취미를 쓰는 칸에 ‘음악 감상’이라고 쓰기도 했죠. 한 번쯤은 그림을 차분히 바라보듯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음악을 감상하는 경험을 가져 보세요. 지금도 저는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거든요. 모든 감각을 잠재우고 귀에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해보는 거예요.





오래되고 새로운 것의 공존



벽에 붙어있는 이달 출고 스케줄을 보니 게임 브랜드가 눈에 띄더라고요. 게임과 LP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인데요.
LP 속에는 음악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수 있어요. 예전에 LG텔레콤이 휴대폰 사업을 정리하면서 휴대폰 벨 소리를 LP에 담아 오랜 고객들에게 선물한 적도 있었어요. 세종시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뮤즈세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들의 음악을 담은 LP도 제작했고요. 가끔은 개인적으로 만든 음악이나 소리를 LP로 남기고 싶다며 소규모 제작 의뢰가 오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LP가 그 시대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역사적인 순간을 LP속에 박제한다고 생각하면 이 일이 더욱 의미 있고 즐겁게 느껴지죠.

LP 수집에 관심이 많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가장 쉬운 접근은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LP들을 구입하며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해 가는 거예요. 순서는 상관없어요. 다 완성하면 다음 뮤지션으로 이동하고요. 그 대상이 레이블이 될 수도 있겠죠.

아직도 LP를 수집하고 있나요?
그럼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아마 가장 열정적인 LP 생산자이자 소비자일 거예요. 지금도 택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웃음). 우연히 모노 LP를 발견하고 바로 구입했죠. 과거에는 노래가 한쪽 면에서만 재생되는 모노 LP가 많았는데 지금은 희귀하거든요. 집에 3만 장 정도의 LP가 있지만 아직도 구하고 싶은 LP가 너무 많습니다. 딱 한 개의 LP가 채워지지 않아서 완결을 하지 못한 컬렉션들도 있고요.

LP와 스트리밍 뮤직을 오가는 세대들을 보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시대라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앞으로도 그 주체만 바뀔 뿐 계속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다양한 취향과 필요성이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와 시대의 변화에 밀려 과거의 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누군가에게는 무척 소중한 존재에 대한 강제적 상실일지도 모르니까요. 디지털 기술은 이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날로그를 향한 인간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불꽃이 잠시 사그라지는 순간은 있어도 이렇게 다시금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 금세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Editor Chung Yunjoo

Photographer Lee Ju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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