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는 '담백한' 서비스가 없습니다.

데이터 인문학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혀끝이 솔직해진다는 뜻일까요?


예전에는 맵고 짜고 달콤한 소스가 듬뿍 뿌려진 음식이 좋았는데, 요새는 자꾸만 심심한 맛을 찾게 됩니다. 이것저것 섞어 맛을 낸 기교보다는, 신선한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이 정직하게 느껴지는 '담백한' 음식이 편안합니다.


그런데 밥상을 물리고 돌아본 세상은, 제 입맛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은 분명 발전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를 보고, 주식 투자를 하고, 쇼핑을 합니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모든 것을 연결해 준다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본질 위에 덧칠된 두꺼운 화장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저는 묘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어감부터가 그렇습니다. 원재료인 '본질'에서 곁가지로 뻗어 나와 이리저리 꼬아놓았다는 뜻이니까요.


은행 상품 위에 플랫폼의 색을 입히고, 그 위에 또 다른 제휴 혜택이라는 튀김옷을 입혀 내놓습니다. 마치 "이게 뭔지 정확히 알 필요는 없어, 그냥 맛있게(편하게) 먹어"라고 강요하는 기분이랄까요?


대놓고 속는 기분입니다.


그들은 늘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쉽고, 빠르고, 간편합니다." 삶이 정말 그렇게 간편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상품 치고, 그 뒤에 숨겨진 대가가 없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편리함'이라는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우리는 깨알 같은 약관 뒤에 숨은 복잡한 책임과 비용을 떠안게 됩니다. 그 결과는 파생상품의 손실만큼이나 지독하고 쓰라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 그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결국 범인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단순한 구조를 이리 꼬고 저리 비틉니다. 법과 사회적 합의를 교묘하게 우회하는, 사기인 듯 사기 아닌 합법적 기만을 위해 시스템은 점점 더 난해해집니다.


주식 시장의 복잡한 차트, 이해할 수 없는 금융 용어, 미로 같은 시스템 플로우... 우리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냐, 좀 쉽게 만들 수 없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오히려 딱하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시스템을 이해 못 하시는군요."라며 소비자를 공부가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하죠.


본질을 숨기기 위해 양념을 덧바르는 요리사들이 가득한 세상. 그래서일까요? 오늘따라 아무런 기교 없이 맑게 끓여낸 콩나물국 같은, 투명하고 담백한 서비스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unnamed.jpg Generated by Gemini

© 2025. Digitalian. (CC BY-NC-N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창조물은 신의 것이고, 퍼포먼스는 인간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