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Apr 04. 2019

엄마도 돈 공부가 필요해

집도, 차도, 휴지도, 기저귀도 사야 하니까

똥 싸게 휴지 사줘! 


며칠 전부터 우리 집 휴지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남편은 나에게 휴지가 떨어져 감을 반복적으로 알려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결혼 후 남편은 집안에 필요한 생필품을 스스로 사본적이 없는 것 같다. 뭐든지 알뜰하게 잘 산다는 남편의 칭찬과 부추김 속에 우리 집 구매 담당자는 항상 '나'였고, 우리 세 가족의 편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세제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기저귀는 충분한지 늘 집안 곳곳을 관찰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번거롭거나 귀찮지 않았다. 나는 사는(Buy)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혼시절 맥시멀리스트로 유명했던 나였기에 친구들은 종종 '요즘은 뭐 샀냐'라는 말로 안부를 묻고는 했다. 큰 금액의 쇼핑을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쇼윈도의 원피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적이 많았고, 자라 세일이 시작되는 동시에 가슴이 설렜었다. 이런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근 산 것은 휴지, 기저귀, 분유, 그리고 주식이었다. 허탈함과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밀물과 썰물처럼 몰려왔다. 

 


집을 산다는 것, 희망을 산다는 것

우리 둘 만의 힘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기에 수도권이라 불리는 땅은 너무도 잔인했다. 우리가 만져보지도 못한 큰 금액을 예산으로 잡았는데도, 30년이 다 되어가는 방 2개짜리 낡은 아파트만이 후보의 전부였다. 전세난이라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하던 때라, 집수리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무너져가는 싱크대에 한 땀 한 땀 시트지를 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꾸미고 쓸고 닦아도 세월을 숨길 수는 없었고, 집이라는 공간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다.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우리의 가난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 값이면 남들과 똑같이 세련된 공간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집 밖으로, 예쁜 곳을 찾아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우리에게 로또라고 불리는 청약 당첨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아이를 갖기 전, 집 한 채는 있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청약제도를 공부했었다. 어정쩡한 흙수저인 우리는 특별공급은 소득제한에 걸려 불가능했다.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고도 분양을 받을 수 있는 내 집 마련 제도를 이용해 보고자 땡볕에 몇 시간씩 줄을 서보기도 했고, 청약 공고가 뜨면 우리가 거주지로 삼기 적절한 곳인가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고는 했다. 몇 번의 탈락을 겪은 후에야 '당첨되고 나서 결정한다!'라는 마음으로 모델하우스도 보지 않고 청약을 했고, 마지막 추첨제도가 적용되는 아파트 단지에 떡하니 당첨이 되었다. 청약 당첨 화면을 보고 기뻐서 운다는 말이 무엇인지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청약 목표는 심플했다. 10년 동안 빚을 내는데 필요한 이자와 구매 원금을 합한 금액만큼 오를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 우리가 10년 동안 주거비로 사용할 금액이 0원이 될 만큼만 올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 구매에 두려움은 없었다. 다행히 우리의 아파트는 역세권, 대단지, 숲세권이라는 세 가지 프리미엄을 가진 단지였기에 현재 기준으로는 우리의 목표를 초과해 달성했다. 물론 언제 내릴지 모르고, 실거주의 특성상 팔 수 없기에 지금 가격은 무의미하지만.


신기한 것은 우리는 아파트를 샀는데, 희망도 함께 샀다는 것이다. 개발자인 남편은 방 하나를 자신의 작업장이자, 플레이룸으로 꾸밀 생각에 벌써부터 콧노래를 부른다. 지인을 초대해서 파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호두나무로 만든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룸을 만들고 싶다. 우리 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 차도 숨 막히지 않는 넓은 거실을 가지고, 차가 없는 안전한 단지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다. 집 하나 샀는데, 우리는 입주를 기다리는 몇 년 동안 희망의 그림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더욱 성실하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가족을 위한 돈 공부가 빛나는 시간이었다. 



 엄마의 투자가 성공한 이유도 '가족' 때문이 아닐까


작은 사업을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던 나의 아빠는 IMF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토끼 같은 자식에게 먹일 쌀 한 톨이 없어 돈을 빌리는 말도 안 되는 시절을 너무나도 춥고 서럽게 버텼어야 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사업이 안정화에 접어들자, 엄마는 알뜰살뜰 지출을 아껴가며 몇 번의 현명한 투자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한 땀 한 땀 배워가며 땅을 사고, 건물을 올렸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노년'을 선물했다.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위협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노후를 생각할 때면, 한숨이 나온다. 정년이 유독 짧은 IT업계에 종사하는 남편과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아이가 가장 돈이 필요한 순간 직장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희망이었던 집 한 채를 팔고, 줄이고 줄여야 하는 삶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돈 공부를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돈 공부 목표도 '가족'이다. 휴직 동안 아이를 키우고 싶은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를 유심히 살펴보고, 부동산 시세를 관찰한다. 재테크에 관한 책을 매주 읽고, 경제 아티클을 지나치지 않는다. 지인들의 주식 정보를 매섭게 새겨듣고, 직접 소액이라도 투자해서 시장을 경험한다. 아이에게 옷을 물려 입히고, 중고 장난감을 사주어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 꾸준한 경제 공부를 통해 우리 가족이 적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이 가득 담긴 집을 산 것처럼, 행복을 담을 '경제적 자유'라는 그릇을 사고 싶다. 


엄마의 돈 공부, 같이 하실래요?

아... 우선 절약부터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자신 있게 할 말이 없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들은 왜 무리 지어 다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