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그 이후.

결과를 기다리는 당신께

by ㄷㅣㅁ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던 시기가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데일 듯한 아스팔트의 열기가 슬슬 식어가기 시작하고,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점차 옅어질 즈음. 어딘가 여름이라고 하기 애매한 기온에 비가 올 듯 말 듯 묘하게 축축한 공기가 안 그래도 불안해 뒤틀린 속을 기분 나쁘게 덥히는 여름의 끝자락.


결과를 기다리며 불확실성만이 가득한 삶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었어요.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 잔인한 시간 속에서 누군가한테 말을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할 수 없어 괴로웠어요.
언제 바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 타들어 말라가는 마음.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할 것만 같은 외로운 처지. 일상의 모든 순간에 울컥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감정.

글로나마 스스로를 어루만지고, 달래고,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두려움, 속상함, 자책, 우울함, 막막함… 너무 응축되어 지독하게 끈적이는 검은 감정들을 잉크 삼아, 소리 없이 울부짖는 수억 개의 원망과 절망 가득 찬 감정들을 잠시나마 글 안에 가둬두고 싶어서.



그렇게 몇 해가 지나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보송한 상태가 되었고,

꿈에 그리던 곳에서 첫날의 설렘과 흥분이 어느새 익숙함이 주는 기분 좋은 느슨함으로 바뀌어가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된 지도 꽤 되어 과거의 간절함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가 아닌지.



최근 들어 제 글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읽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입 경로가 대부분 키워드 검색인 걸 보니, 원래 브런치를 하는 분들이 아니라 과거의 제가 지나온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 어떤 말로도 쉽게 진정될 마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럼에도, 글을 통해서나마 손을 꼭 잡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랬듯,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고, 영문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불안함과 눈물을 숨기며 버텨내고 있을지. 혹여라도 농담처럼 가볍게 말하다 보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 가족들과 서로 초조한 내색을 감추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을 부여잡기 위해 애쓰고 있지는 않을지. 이미 헤져버린 마음을 끊임없이 난도질하며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무 잘 아는 만큼, 너무, 정말 너무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일단 너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괜찮아요. 뭐가 됐든, 다 괜찮아요. 괜찮아질 겁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지금 설령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너무 지질하고 나약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건 진짜 당신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인생의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는 올라가고, 빛날 일만 남았어요.

정말 많이 애썼습니다. 한참 부족했다고,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날걸, 좀 더 집중할걸, 한 줄이라도 더 쓸걸… 끊임없이 자책과 후회를 반복하고 있겠지만, 충분히 잘했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을 멈춰주세요.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늦어버린 건 아닌지, 초조해하고 있을 수 있겠지만, 안 늦었어요. 정말로. 헛되이 먹는 나이란 없습니다.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어요. 다 삶의 생각지 못한 순간에 귀히 쓰일 거예요.
믿어준 부모님께 죄송하죠. 너무나. 그치만 너무 죄송해하지는 말아요. 죄송은 우울을 낳고, 우울은 죄송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니 조금은 뻔뻔해지세요.



아 참, 이 고시란 게 뭔지.
사람을 정말 좀먹는 것 같아요.


일주일 남짓 남았네요.
부디 고통의 시간을 무사히 견뎌내길 바랍니다. 어렵겠지만, 스스로를 잘 보살피며 버텨주세요.

마음으로 함께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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