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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Sep 07. 2023

결과를 기다리는 고시생의 용돈벌이

 치열한 과외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꿀팁

물 먹은 솜이 되어 칩거한 3일


   지난 6월 말 긴 수험생활이 끝났다. 시험이 끝난 후 3일은 낮과 밤 구분 없이 방에 칩거했다. 가끔 배가 고프면 시간이 언제이든 새벽이라도 까치발을 들고 부엌을 서성거리며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식구들이 무얼 먹었는지 남은 음식이 있는지 살폈다. 나만큼 힘들었을 텐데 부모님은 감사하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셨다.


    공부를 할 때에는 그렇게 무겁기만 하던 눈꺼풀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깃털처럼 가벼워서 모두가 잠든 새벽 애써 잠을 청했다. 그래서 시험 후 3일 동안 내가 잤던 잠은 밀려오는 졸음에 굴복한 잠도, 햇살이 따사로운 날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슬며시 찾아오는 단잠에게 기꺼이 몸을 맡기는 것도 아니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정신은 너무 멀쩡했기에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고자 불을 꺼두고 침대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시험이 끝나고 후련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곱씹을수록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 덜컥 겁이 나고, 숨이 막히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서웠다. 현실에,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후회에,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그리고 무엇보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두 달이라는 시간에 짓눌렸다.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분명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일단 무엇보다 너무 무기력했다. 정말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에게 영혼과 기를 다 빨려버린 것처럼 내 몸은 물 먹은 솜마냥 중력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도저히 뭘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무의 지경에 이른 기분이랄까.

(C) Harry Potter Wiki



식충이가 되지 않기 위한 발악


    그렇게 3일을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내가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티끌만큼 남은 힘을 모두 침대에 누워 버티는 것에 쏟아부어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니 이미 7월이 되어 있었다.


    일단 정신을 차리기 위해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부엌에 가서 보이는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저작운동을 하며 생각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온몸의 근육이 퇴화되겠다 싶었다. 진화의 시간이 무색하게 난 어쩌면 팔다리도 눈도 코도 없는 해삼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나니, 그 '뭐'가 뭐가 됐든 간에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께 설명드린다면 충분히 도와주시겠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세금도 내는 멋진 어른이 되어버린 동생을 두고 언니가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받아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팔 수 있는 거라곤 영어뿐이었다. 그래서 과외시장에 뛰어들었다.




정신차려 이 각박한 과외시장 속에서  


   대학생 때부터 느낀 거지만 우리나라 과외시장은 정말 치열하다. 대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전문과외 선생님들까지, 수요도 풍부하지만, 공급이 그 풍부한 수요를 능가하므로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을 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c) 무한도전


    그래서 치열한 과외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대학 입학 후 영어와 국어 교과목 내신과 수능대비, 특목고 및 대입 자소서 및 면접, 토론 및 글쓰기 대회 준비, 영어회화 등 학생과 성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의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선생님 유형별 어필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현역 대학생이라면, 그리고 입시를 치른 지 얼마 안 되었다면 그 자체로 수요가 높다. 학부모들은 따끈따끈한 입시정보와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노련한 경험보다 오히려 이제 막 입시 관문을 뚫은 새내기 선생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고등학교 때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을 올린 경험, 수시 입학이라면 어떤 전형으로 몇 개의 학교를 붙었는지 등을 상세히 적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소서와 면접과외 수요도 가장 높을 때이니 수시러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대학교 3, 4학년쯤 되면, 새내기 선생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연륜과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의 과외 경력과 학생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는 새내기 선생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과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수업방식이나 내신대비 노하우 등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자 그럼 나의 경우라면, 어떤게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입시와는 이미 거리가 멀어진지 오래이므로 대학생 과외 선생님들과는 경쟁할 수 없다. 즉, 나는 더 이상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타기팅해야 하는 대상은 성인이다. 비즈니스 영어가 필요한 회사원, 영어 성적은 좋지만 실제 회화가 부족한 대학생들, 각종 어학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

    다행히, 나는 학생 때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더 자세히 썰을 풀어보겠다... 하하) 학교를 다니며 학기 중에 스스로 등록금을 벌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닥치는대로 이 과외, 저 과외를 한 덕분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경험도 있었다.



    일단 타깃이 정해졌으니 어필 포인트를 정했다. 나의 어필포인트는 다음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풍부한 배경지식

    : 지난 3년간 한거라곤 고시공부뿐이니 이 부분에서만큼은 정말 자신있었다. 국제정세를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기본 일상회화를 넘어 시사주제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하는 수업을 개설할 수 있었다. 혹시 자기가 이게 좀 된다 하는 사람은 꼭 어필해라! 니치 마케팅이다. 생각보다 아직 우리나라 과외시장에는 고급회화/토론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정말정말 적다.


    2) 자체 제작 수업자료

    : 이 부분은 대학생 때부터 내가 자신하던 건데, 사실 고등학생 때 교내 멘토링을 진행하며 손글씨로 적어 내려 간 내신대비 자료를 복사해서 친구들에게 멘토링을 진행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특히나 내신 대비의 경우 학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좀 천편일률적이고 게으른 면이 있다. 학원 입장에서는 특정 학교를 다니는 학생만을 대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과외는 다르다. 그게 바로 학생과 학부모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학원을 두고 과외를 찾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원이 'Prêt-à-Porter'라면 과외는 'Haute Couture'여야 한다.

내 과외 폴더에 있는 자료들.

    어쨌든, 이 부분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회화 수업에서도 다르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 아니라 학생이 다니는 회사와 직무, 수준 등을 고려하여 완벽한 맞춤형 자료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면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3) 공부

    : 영어를 어느 정도 하기 때문에 초급 수업의 경우 물론 준비 없이도 수업을 진행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안일한 태도는 쟁쟁한 실력자들이 존재하는 과외시장에서 굉장히 무성의해보인다. 초급이든 고급이든, 늘 만반의 준비를 해간다.

    특히 나는 어릴 적 영어를 배워서 단어의 정확한 한국어 번역을 모를 때가 종종 있는데, 미리 다 찾아간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사전적 의미와 실제 일상에서 쓰이는 뉘앙스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것들을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좋아한다. 어쨌든 회화수업의 경우에는 정확한 단어의 뜻만큼이나 그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과외 플랫폼은 잘 알려진 김과외, 숨고 등 각각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 이용대상이 누구이냐에 따라 자신에게 더 적합한 플랫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김과외의 경우, 주로 내신, 모의고사 등 교과목 수업을 원하는 중고등학생이 많다. 반면, 숨고는 성인들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나의 경우에는 숨고가 더 적합했다.




    프로필 작성에도 팁이 있다.

    아까 언급했듯 우리나라 과외시장은 수요도 엄청나지만 그를 능가하는 공급이 있어 일단 학생 또는 학부모의 눈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잘 가르친다', '언니 오빠처럼 가르친다' 등등의 표현은 너무 추상적이고 평범하다. 입장을 바꿔 놓고 당신이 학생이라고 해도 '복사 붙여넣기'식의 멘트를 쓰는 선생님의 프로필은 거들떠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커리큘럼자신만의 차별점이다.


    우선 커리큘럼.

    나의 경우, 수업 유형별 TIME PLAN을 적어놓는다.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길게 줄글로 나열하는 건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그 대신, 가령 1시간의 수업이라면, 그 1시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일종의 스케줄표를 만든다.


    단어 시험 및 지난 수업 복습 10분

    당해 수업 주제와 관련된 단어 및 표현 학습 및 예시문 만들어보기 15분

    수업자료 읽고 생각 나누기 30분

    질의응답 및 없는 경우 금주의 idiom 5분


    뭐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이렇게 칼같이 시간을 맞춰 수업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대략적으로 수업이 어떤 흐름으로 이뤄지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두면 1시간을 매우 알차게 사용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독성이 좋기도 하다.


    어필 포인트.

    아까 내가 했듯 3가지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단, 절대 길면 안 된다. 각 포인트 별로 2-3 문장이면 충분하다. 요즘은 컴퓨터보다 모바일 화면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바일 화면으로 보았을 때 6줄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제발. 맞춤법. 상식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람이 맞춤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타가 없는지 맞춤법 검사기 꼭 돌려야 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자유를 얻다


    그렇게 하나 둘 수업을 하다 보니, 한 때는 동시에 8명의 학생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정해진 스케줄이 없는 백수의 삶이라서 가능했던 거긴 하지만.


    어쨌든, 대책 없이 일을 벌이다 보니 하루에 많게는 6개의 수업을 하는 날도 있었다. 최소 1시간 씩이나 하루에 6시간을 떠들어 댄 셈인데, 정말 기가 빨린다. 그리고 수업 전후 최소 30분은 수업준비를 하는 등 몸이 메여있게 되니 사실상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과외하는데 보내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 자본주의가 무서운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뭐 결론적으로는 그런 생활 덕분에 일본 여행이 가능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마음껏 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아주 아이러니하게도, 돈 앞에선 노예가 되었지만, 그 덕분에 이 나이 먹고도 부모님께 기생한다는 죄책감과 속상함, 사회인 친구를 만났을 때 그들의 지갑이 나를 배려해주는 일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혹시 나와 같은 애매한 자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면 뭐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어차피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workation을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대부분 내가 진행하던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전화/ 화상 영어이다보니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로망이기는 했다... ㅎ 이 얘기는 일본 여행 편에서!




    지금이야 이미 지난 일이고, 현재는 모두 다 원하는 시험을 응시해서, 면접이 끝나서 등의 이유로 정리가 되어 4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과의 수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과발표를 기점으로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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