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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3년을 보내고...달라진 것

이 글은 서울에서 쓴다. 해외 백신 접종자들 입국 시 격리면제가 이번달 초 개시됐다. 나는 개시 첫날 강아지와 함께 입국했다. 짐 정리하랴, 강아지 적응시키랴 정신이 없었다.


홍콩에서의 3년을 정리하는 책 형태의 글을 브런치에 써보려고 한다. 아이디어가 많으니 차근차근 쓰기로.


이번에 집 정리를 하며 안 읽는 책들, 초중고 시절 사진과 친구들의 편지 등 추억거리를 되새겼다. 지난 3년. 내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정말 개인적이고 사소한 얘기니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길...!)


1. 영어가 엄청 늘었다. 그래도 너무 어렵다.


홍콩 첫 직업이 '영어로 매일 글을 쓰는 일'이었지만, 3년 전 내 영어실력은 정말 초짜였다. 뜻은 전달되지만 원어민 입장에선 굉장히 어색한 표현 투성이였으니.


첫 상사는 아르헨티나계 캐나다인이었다. "~하지 못하도록"이란 뜻으로 to prevent라고 말했는데 상사가 귀엽다는듯이 "허허허허" 웃어서 영문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영어 머리가 안 돌아가서 한국어로 글 개요를 대충 쓰고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의 1년 가까이 했다. 그 다음부터야 영어로 먼저 개요를 쓰게 됐다. 정말 끝끝내 힘들었던 것은 '듣기'였는데, 어휘 암기와 빠른 속도의 말을 체화하는게 잘 안 됐다. 독해도 너무 힘들었다. 한국어라면 읽기도 1페이지를 쓱 보고 대충 감이 올텐데 영어는 이게 잘 안 됐다. 나는 하루에 글을 한 편씩 쓰는 직업이었어서 망정이지, 업무할 때 영어 좀 쓰는 식으론 중급 이상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직업상 글을 쓰고 틀린 글을 체크받는 입장이라, 내가 쓴 표현이 어떻게 고쳐졌는지 매일 보고 외우기를 2년 정도 하니 실력이 꽤 늘었다.


하지만 나같은 직업이 아니라면...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선 자신이 친숙한 주제 (예: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코로나 대응 정책)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쓰인 영문기사들을 읽어보는 게 꽤 도움이 된다. 즉 처음부터 여러 주제를 영어로 파고들지 말고, 한 가지 토픽을 각각의 기자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익히란 것이다. 익숙한 지식을 반복해 읽기 때문에 다양한 영어 표현이 머리에 훨씬 잘 들어다. 영어공부 방법은 다음 편에 자세히...


영어를 '괜찮게' 하는 실력을 넘어서 넓은 지식의 바다를 경험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높은자리까지 승진하는게 목표라면, 10대 때 혹은 대학생 때는 정말 열심히 하세요. 남들보다 좀 나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영어신문 수월하게 읽을 만큼 하세요. (서른 넘으니 실력 증진도 느리네요)

전자제품 가게,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몰린 샴수이포. 다른 구룡(카우룽) 지역보다 사회 빈곤층 시민들을 더 자주 마주친다.


2. 한국은 꽤나 괜찮은 나라


외국 다녀온 사람들에게 '한국만큼 살기 편한 곳 없다'는 소리,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상당히 맞는 말이다. 한국만큼 상업이 소비자의 편의, 빠른 속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홍콩은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소포 하나 보내려면 줄 두 번 서는 우체국, 현금만 받는 가게들 등 고객 편의와 업무 효율을 생각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 서비스 인프라가 참 후다. 또한 중국의 일부다 보니 이와 관련된 불쾌한 일들도 많다. 사기성의 인터넷 쇼핑몰이라든지, 스팸 전화, 반려동물 밀수(로 의심되는) 정황들, 수준 이하의 서비스들 등.


(물론 한국이 아직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지만) 지난해 잠시 입국했을 때 인천공항에서 잘 마련된 입국시스템을 경험하고 기분이 좋았다. 격리기간 동안 (약간 형식적이긴 하나) 공무원이 집에 방문해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었고. 한국은 업무를 책임감 있게, 이용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 마인드가 높은 것 같다. (그 뒤엔 '갑질 고객'이나 엄격한 평가 시스템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있다. 하지만 이로써 소비자 편익이 증진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3. 유학생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다


한국에선 유학생, 또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해외에서 산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나도 그랬다. '복 받은 친구들' '해외에서 힘들지 않게 2, 3개국어를 터득한 친구들'. 하긴 한국에서 스카이대 가기도 힘들고 영어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터지는데 어찌 샘나지 않으랴.


하지만 홍콩에서 만난 20대 한국인 동생들을 알아갈수록 이런 편견이 지워졌다. 홍콩에서 대학 나온 친구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 유학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0대 때 중국 본토,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 생활한 친구들이 더 많다. (인도, 뉴질랜드, 체코에서 생활했던 친구들도 봤다)


이 친구들 대다수는 각국의 외국인학교에서 2개국어 이상을 배웠다. 외국인학교 특성상 영어+제2외국어를 배운 경우가 많아, 정작 자기가 살았던 나라의 현지어에 능숙하진 않다. 이것 역시 자기가 생활하는 국가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는 이방인의 삶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느 나라로 가게 될지 몰라 2가지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게 마냥 '복 받은' 삶일까?


가족이 해외에 나와 살 경우 구성원 모두가 해외살이에 잘 적응하란 법도 없다. 10대인 자식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해외살이를 선택한 부모님 때문에라도 잘 이겨내야 한다. 고단한 삶이다.

 

전에 교회 목사님에게 "부모님이 한국, 홍콩인인 친구들은 한국어, 영어, 광동어, 중국어도 해서 좋겠어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목사님의 반응은 이랬다. "부모님 국적이 다르고 여러 언어를 쓰는 가정의 친구들은 그 나름의 아픔이 있지...".


나보다 좋은 조건을 누렸다는 이유로, 누구의 인생도 쉽게 넘겨보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알면서 또 실수했다.


2021년 6월 말, 홍콩 반환 24주년을 앞두고 마오쩌둥에 대한 연극 상연을 홍보 중. 중국 정치 홍보가 홍콩 문화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4. 남성에 대한 오해 불식(?)


젠더는 민감한 주제라 이 부분은 불편하게 보는 분들도 있을 것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유독 한국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평생 숱하게 보고 겪은 성희롱과 성추행. 여성들의 별 의미 없는 행동을 툭하면 '섹스'와 연결지어 곡해하고 비웃고 욕하는 말들. 데이트 폭력, 불법촬영 사건, 텔레그램 채팅방에 대한 끔찍한 뉴스 등. 2017년 말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서 나 역시 자극을 받았고 트라우마들이 되살아났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 대해 참 폭력적이란 피해의식에 묻혀 지냈다. 


3년 동안 몇몇 홍콩 남성 지인들을 알고 지냈다. 내 결론은, 홍콩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sexual objectification-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은 '(섹스를 통해) 취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홍콩에서도 만연하다. 몸매가 예쁜 여성이 자길 기분나쁘게 무시하면 성적으로 조롱하며 분풀이한다. 여성이 어떤 제스처를 취하면 성적인 호감 또는 거절의 메시지로 생각한다. 이전 데이트경험에 대해 얘기하면 '이 여자가 얼마나 섹스 경험이 많길래?' 생각한다. 레스토랑에 온 섹시한 여성 고객 뒷모습을 찍어 종업원들끼리 재미로 공유하는 것도 봤다.


한국에는 '너는 예쁘니까 남자를 조심해야 해'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한다. 칭찬/질투/농담/조언 그 어디쯤에 있는 말인데, 보통 윗 연배의 여성들이 아래 여성들에게 쓴다. 의미는 알겠으나, 주의할 사람은 예쁜 여성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남성들 아닌가? 그런데 이 말을 홍콩에서도 아주 당연하게 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말 하면 아주 똘아이 취급받을 거 같다.


한번은 동네 펫샵에 들렀는데 홍콩인 주인에게 이런 성희롱적 농담을 들었다. "개에게 간식 많이 주면 spoil되니까 조금만 주세요." "저 간식 많이 주는데요." "제가 당신 남자친구였음 좋겠네요. spoil되게" 처음 방문했고, 아빠뻘인 아저씬데 내 참 어이가...


홍콩에도 지하철 불법촬영 근절 캠페인이 있다. 큰 건 아니고 열차 내 포스터를 붙이는 것인데 여성이 몇 계단 앞서 올라가 있고 아래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며 곁눈질을 한다. 아래쪽 (머리에 뿔 달린) 남성이 핸드폰을 바닥에 향하게 하고 있다. 문구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불법촬영 하지마세요' 이런거였던 듯. 범죄자를 단속하려면 좀더 serious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나 여성의 표졍은 알듯말듯 미소를 짓는거 같기도 하고...


motherfuXXXX이라는 영어 단어도 광동어로 있는데 홍콩에서 아주 흔히 쓰인다. 왜 fatherfuXXXX는 없냐니까 원래 없댄다...


여담으로 홍콩에서 알게된 서양인 남성들은 한국의 사생활/모텔/화장실 불법촬영에 대해 정말 경악했다. 면접 마지막에 '한국의 spycam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대체 왜 그런 거에요??'하고 눈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 서양인 면접관도 있었다. (쪽팔림은 나의 몫...) 어떤 서양인 남성은 (그 나라에선 남자가 군대를 간다) '우리도 군대 가는데 그걸 갖고 남녀 불평등이라 하지 않아. 대체 왜 군대 때문에 남성이 여성에게 피해의식을 가지는거야?'라며 궁금해했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결론은 홍콩에서도 여성 성적 대상화흔하다는 것. 한국만큼 스파이캠이 악질인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서양인 남성과 연애하는게 가장 평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이다?! 이건 모르겠고, 서양인과 연애한다면 나름의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연애란 워낙 케바케이기도 하고.

비오는 밤, 센트럴 랜드마크 앞 트램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고,

집에 와서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 '너의 꿈을 세계에 펼쳐...' 같은 글로벌 커리어 책들을 미련없이 처분할 수 있으니 너무나 좋다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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