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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억의 밤'
by 장항준 Dec 04. 2017

마지막, 그리고 숨겨둔 이야기

6화

영화가 개봉했으니 <기억의 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형제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보니, 자칫 나의 한 마디가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스포일러 지뢰밭’이라고까지 표현했으니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늘은 <기억의 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는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 지뢰’를 밟지 않을 정도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해 드릴까 한다. 




1.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

‘유석’이 납치 당하기 전까지 얼마나 다정하고 지적인 인물이었는지 보여주는 장면 중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이 있다. 그장면에서 칠판에 고양이 한 마리가 상자 안에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은 오스트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다양한 물리학 이론 중 가설의 완전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모순을 지적하기 위한 이론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말하는 양자역학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함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닌 모순이 닮아 있다는 생각에서 영화 속에 채용했다. (덧붙여 워낙 어려운 이론이다 보니, 김무열배우가 가장 많은 NG를 냈던 장면이었다. ^^;)



2.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

이삿짐을 정리하는 ‘진석’이 책장에 책을 꽂는 장면에서 유독 소설책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1980년 움베르토에코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적 추리소설이라 불리기도 하는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유럽의 암울한 시대에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추론해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단순히 추리 소설로 보기에는 인류학적 지식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녹아 있는 소설이지만, 중세의 우울한 배경과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전면에 배치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설정한 책은 아니지만, 우리 소품팀에서 준비해준 책들 중 바로 ‘이거다!’ 싶었던기억이 남아있다.



3. 잔혹 동화 [푸른 수염]

<기억의 밤>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긴장감을 느낀 장소를 꼽자면, ‘2층 집’이 아닐까 싶다. 절대로 열면 안 되는 작은 방의 이미지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동화였던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에서 차용했다. 줄거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마을 사람 모두가 두려워하는 ‘푸른수염’과 한 여인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모두의 걱정과 달리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는 어느 날, 중요한 용무 때문에 지방으로 떠나는 ‘푸른 수염’이 아내에게 성의 모든 출입문을 열 수 있는 열쇠 꾸러미를 건넨다. 그러면서, “모든 방에 들어가도 좋지만, 아래층 복도 끝 방에는 절대 출입하지 말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푸른 수염이 돌아오기 전날 밤, 아내는 고민에 빠진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아래층 복도 끝 방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아내는 끝 방 문을 열고 마는데... 그 안에는 지금까지 ‘푸른 수염’과 결혼했던 이전 부인들의 시신이 매달려 있다. 그리고 충격에 빠진 아내의 뒤에 푸른 수염이 등장하며 동화가 끝난다. 금기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것을 열어 보았을 때의 대가. 이 모든 것을 함축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극의 대부분이 집안에서 펼쳐지는 이번 작품과 잘 어울리는 설정이라 생각했다.



이제 <기억의 밤>은 개봉을 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관객 분들에게 맡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처음에는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시작한 브런치이지만, 글을 쓰면서 잊고 있던 촬영 현장의 설렘과 추억들이 기억나는 순간들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어보면 난 여전히 영화감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앞에는 꼭 하나의 단어가 더 붙는다. ‘행복한’ 영화감독. <기억의 밤>을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6주 동안의 브런치를 마치며, 


여러분도 ‘행복한’ 누군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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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 영화 감독이자 스토리텔러, 장항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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