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와 도마씨
너를 만나러 갔는데 너는 어디로 간 것인가?
“One way to express the spiritual crisis of our time is to say that most of us have an address but cannot be found there,” by Henri Nouwen, Making All Things New: An Invatation to the Spiritual Life
번역하자면 "우리 시대의 영적 위기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은, 우리 대부분이 주소를 갖고 있지만 그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헨리 나우웬이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적은 글이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어서 느끼는 쓸쓸함 이라기보다 타인과,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연결이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 "주소는 있지만 거기서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은 "나는 여기 살아, 그런데 나는 여기에 없어"라는 말이다.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너와 연결할 수 있는 나는 없다. 네가 나에게 와도 나를 만날 수가 없다. 이것이 외로움이다.
너를 만나러 갔는데 너는 어디로 간 것인가?
그것은 내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바빠진 것이다. 너와 연결되기 위해 시간을 떼어 놓을 수도, 기다릴 수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심심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다. 집에서 나 혼자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은 참을 수 없어 집을 나간다. 그래서 내 주소를 들고 나에게 와도 나를 만날 수 없다. 바쁜 나는 피곤하고 이제 너를 만날 수 없다.
현대 사회의 외로움은 역설적이게도 너무 외로울 시간이 없어서 외로워지게 된다. 늘 연결되어 있어서 오히려 고립된다. 하루 24시간 스마트 폰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무한한 정보에 플러그를 꽂아 놓고 있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길 위에는 수많은 광고들이 '연결'되기를 초대한다. 러닝 크루에 등록해서 달리기도 해야 하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PT도 받아야 하고 책모임이나 드로잉 강습받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간간히 자격증도 따고 해외여행도 간다. 이 모든 것들을 직장까지 다니면서 하려면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정도가 '기본'이다. 아이들 둘을 키우면서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온라인으로 영어 수업까지 듣는다. 신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멘탈 관리도 놓치지 않으려면 이 정도 루틴을 유지해줘야 한다. 그런데 외롭다. 그래서 더 바빠진다. 그래서 너는 나를 만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 주소를 알고 있는 당신이 나를 만나러 와도 바쁘거나 아니면 지쳐있어서 당신을 만날 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피곤하고 외로워서 떠나기로 했다. 직업과 직장, 사람들과 한국과도 단절했다. 마치 주소를 없애버리는 느낌이어서 돌아올 곳이 없으면 어쩌나 불안했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해서 살다 보면 나는 나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모든 것과 단절하고 외로움에 들어가니 나를 찾을 수가 있었다. 헨리 나우엔은 이것을 '외로움의 사막에서 고독의 정원으로 바꾸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독의 시간에서 나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타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단절이 연결이 되었다.
토마스는 나 없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단칼에 잘라냈다. 그의 말은 차갑고 예리하다. 이곳과 저곳을 나누고 여지를 남겨 놓지 않는다. 돌아보면 마치 토마스의 수도원에 들어가 중독을 치유하는 시간을 보낸 듯하다. 처음에는 괴로워하다가 나는 점차 고요하게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내면에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워갔다.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조금씩 하루의 리듬을 알아채면서 이것이 인생의 리듬이겠구나. 얕게 알아챘다. 침묵과 소리, 안과 밖, 나와 타자, 하늘과 땅이, 둘로 혹은 셋으로 여러 개로 나뉜 것들이 파도처럼 아니 파도를 만드는 바람처럼 소리도 색깔도 보이지 않지만 리듬 안에서 춤을 추었다. 아름 다고 평화롭고 경이로웠다. 토마스의 단칼에 나누어진 것들이 수도원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을 투영하여 새로웠다. 이 바람이 오고 가는 리듬 안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곳이 미국 시골의 수도원이든, 체코의 프라하든, 아니면 한국의 그 어느 도시에서라도.
이 여정 말미에 또 다른 토마스를 만났다.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1915–1968)은 미국의 트라피스트(Trappist) 수도사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성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의 책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 끼치는 영적 여정 안내서로 유명하다. 내가 이 글 첫 회차 글 <예기치 못한>에서 말한 그 수도원에 그는 26세에 입회해서 평생 수도사로 살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러 켄터키 그 시골 '주소'로 찾아왔다. 칠층산에서 그는 어떻게 세속과 단절하여 수도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수도원에서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공동체를 배웠는지 적었다. 그는 수도원에 있었지만 사람의 인권과 세상의 평화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안에 있었지만 밖에 있었고 그는 자신과 있었지만 또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의 글은 토마스 아 캠피스와 달리 복잡하고 포용적이다. 잘라내지 않고 안아내며, 닫지 않고 열어 보인다. 세상과 단절했으나 연결되어 살았던 그 수도원에서 또 다른 토마스를 만나고 나는 나의 '주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