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베르겐(Bergen)

Song of the Sea

by 김배용

노르웨이의 첫 도시로 베르겐을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베르겐 도착 후에야 주변을 보면서 내가 노르웨이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오슬로에서는 공항과 호텔만 보다가, 노르웨이 현지의 집과 도로 그리고 수많은 배를 베르겐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현지 담당자와 함께 이동하는 도로는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지형에서 물과 닿은 부분을 좁은 차로가 빈틈없이 둘러졌고, 어쩌다 절벽 안으로 들어가는 구간도 나왔고, 어디는 물 위에 도로를 올려놓은 듯이 도로를 제외하고 좌우가 모두 물인 곳도 있었다. 깎아지는 절벽이 대부분이지만 약간이라도 공터가 있는 땅에는 모두 아주 전형적인 붉은색 집이 있었고 그 집 앞에는 붉은색 보트하우스가 보였다. 이미 찾아본 노르웨이의 풍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내가 예상했던 노르웨이보더 더 노르웨이다운 장면이었다.

출처 : 구글맵 스트리트뷰


베르겐 도착 후 첫날에 몇 가지 일이 있었지만 일과 관련된 부분은 언급을 줄인다. 내가 보고, 걷고, 먹은 경험과 느낌이 내가 어떤 일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전자가 우선이다. 굳이 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면 이 글을 쓰는 기간 내내 속 터지는 일만 연속이었다. 사실 나는 베르겐에 오면 안 되는 일정이었다. 오슬로에 도착하자마자 노르웨이 내륙의 노토덴(Notodden)으로 무인잠수정(ROV) 교육을 받으러 갔어야 했다. 노토덴에서 4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나서 무인잠수정과 함께 베르겐으로 이동해 무인잠수정을 카타마란 작업선에 설치 후 작업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는 계획이었다.(지나고 돌아보면 참 꿈같은 로드맵이다.) 그런데 무인잠수정이 계획된 시간에 노토덴에 도착을 못했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난 적응을 못했다.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약속된 날짜보다 늦어도 그냥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니... 언제 도착인지 제발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 답변은 '도착하면 연락하겠다'였다. 하루라도 헛되이 쓰기 싫어 다음 계획이었던 베르겐으로 일찍 온 것이었다. 다시 일 관련은 여기까지! 예상되겠지만 지연에... 연기에... 변경에... 아주... 하.......


베르겐은 노르웨이에서는 2 번째로 큰 도시이자 관광의 수도(?)라는 현지인의 자랑에 조금은 기대했다. 일을 서둘러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둘러보겠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여기서도 일정이 미뤄지면서 3일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 원인이었다. 작업선 검사 담당자의 일정을 변경할 수 없었다. 미룰 수는 있어도 좀 더 서둘러 일정을 당긴다는 옵션은 처음부터 없었다. 역시 적응 못했지만 이번에는 다음 장소가 없었다. 베르겐에서 2일 동안 기다리면서 자유롭게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이틀을 놀아야 한다는 현실은 즐겁지 못했다. 일을 못하는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혼자라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 가족들이 벌써 그리웠다. 함께 와서 이곳 베르겐을 구경한다면, 매 순간순간이 소중했을 거라는 생각에 상상해도 소용없을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두 발로 갈 수 있는 거리의 관광지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많은 정보를 찾았다. 어시장, 브뤼겐 지구, 한자 박물관, 플뢰옌 산, 릴르 룽게가르즈반 호수공원 이렇게 다섯 곳은 모두 호텔 가까이에 있었다. 특히 어시장은 호텔만 나서면 바로 볼 수 있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외출 준비를 했다. 날씨는 많은 구름에 비가 올 듯 매우 흐렸고 8월이지만 쌀쌀했다. 기온은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사람들의 옷이 아래는 짧아도 위에는 두꺼운 편이었다. 나는 단단히 준비하고 혹시 모를 우산까지 챙겨서 호텔을 나섰다. 바로 앞 어시장이 보였다. 약 20미터 거리를 걸어가면서 기대가 의문으로 바뀌게 된다. 어시장이라면 당연히 살아있는 생선과 해산물이 난잡하게 깔려있고 많은 사람들이 상인과 흥정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분위기가 차분했다. '다른 나라니깐 한국과는 다를 수 있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지만 시장에 도착했을 때 조금은 놀랐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있는 관광객은 대부분 중국사람이었다. 과장한다면 80%가 아시아인에 중국인이 50%, 일본인이 30% 정도. 나머지 20% 정도가 서양인이었다. 한국인은 못 봤다. 그리고 판매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중국인이었다. 노르웨이사람들로만 구성된 판매점은 못 봤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 유명하고 또 많이 찾는 관광지임을 알 수 있었다. 메뉴에 써진 읽지 못하는 한자를 보면서 여기가 어딘지 잊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 해산물을 찾았다.


시장에서 가장 붐비는 구간을 지나면서 무엇을 파는지 사람들 사이로 구경했다. 역시 높은 가격에 한 끼로 먹기에는 나에게는 과했다. 보통 내가 한 끼에 한국돈으로 15,000원(100kr)을 썼는데 숫자 단위가 달랐다. 음식은 일단 30,000원(200kr)이 시작이다. 주로 판매하는 해산물은 킹크랩 다리, 홍합, 새우, 가리비, 브라운크랩이 주로 있었고 수조에는 살아있는 킹크랩도 있었다. 중간에 햄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오히려 해산물보다 햄 굽는 냄새가 나를 더 자극했다. 하지만 햄도 내가 감당할 물가는 아니었다. 가성비가 너무 낮았다. 붐비는 구간은 대략 20m였다. 생각보다 짧았고 어시장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많이 아쉬웠다. 솔직히 포장마차 몇 개 이어놓은 듯한 길이에 중간에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전부다.


어시장을 가장 먼저 간 것은 호텔에서 가장 가까워서였다. 무언가를 먹겠다는 목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먹을 생각이 없었다. 혼자여서 먹기도 민망했다. 먹고 싶은 해산물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 흥이 나질 않았다. 여기를 지나서 브뤼겐 지구로 갈 수 있었다. 돌아올 때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면서 좀 더 멀리 있는 브뤼겐 지구로 걸어갔다.




당시 2015년 8월의 노르웨이 환율은 1kr이 150원 정도였다. 이 글이 노르웨이 여정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진다. 이러다 분량 조절에 실패할 듯... 다음 글을 쓰기 전에 목차를 작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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