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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Mar 23. 2023

도토리 서재 1. 자연과 나를 연결시키는 산책의 방법

<산책자를 위한 자연학교>_트리스탄 굴리 저

도토리 서재는 생명다양성재단의 두 연구원이 번갈아가면서 책을 선정하고 대화 형태로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매달 한 권의 생태 관련 책을 소개하고 책 소개 뿐 아니라 생태감수성, 생명 존중 문화, 환경 관련 이슈에 대한 연구원들의 생각과 대화를 전달합니다.  

   

<도토리 서재>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소식지 <하늘다람쥐>의 생태 문화 컨텐츠 소개 코너이기도 한데요, 하늘다람쥐/다람쥐는 먹이를 모으는 습성이 있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마음의 양식이 가득 채워진 책방 - 생태적인 이미지에서는 도토리가 잔뜩 모여 있는 다람쥐의 저장고를 떠올리게 하여 <도토리 서재>이라는 이름으로 그 양식들을 한 권씩 소개해볼까 합니다.     


1편에서는 트리스탄 굴리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을 소개합니다.


(C)YES24


Gooley, Tristan.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2017.






성민규 연구원

<도토리 서재>에서 처음으로 소개드릴 책은 트리스탄 굴리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입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자연이 보내주는 신호를 읽게 해주는 대 백과사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량도 정말 두꺼운 책인데, 안에 하늘, 땅, 바람, 물길, 동물들의 흔적 등 온갖 자연물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정보, 그리고 그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을 A부터 Z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지연 연구원 

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기술서’같아요. 자연에서 정보를 찾고 해석하는 기술이 정말 꽉 차게 들어있는 기술서요. (그런 기술이) 어떻게 보면 되게 간단한 것 같은데, 막상 자연에 들어가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핀다고 해도, 그런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은 또 별개의 것이잖아요. 이 책을 읽고 가면 그런 것이 가능할 수 있죠.


민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장 구조가 있어요. “~가 보이면 ~다.” 예를 들어, “연못 근처에서 달팽이가 많이 보인다면 그 곳은 석회암 지대이다.” (달팽이의 껍질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회(탄산칼슘)질이 풍부한 석회암 지대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자연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단서’삼아서 그 생태계의 어떤 특징을 파악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죠. 이런 것 하나하나가 엄청난 기술 같아요.



(C)James St. John, flickr



Polygrid land snail.

달팽이가 껍질을 만드려면 다량의 탄산칼슘이 필요하다.







지연)

네, 숙련이 필요한 엄연한 기술이죠. 사실 책으로 읽어도 (현장에서) 숙련이 필요한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산의) 남쪽 사면에 ~가 많다. 이런 것은 현장에서 보고 깨우치면 바로 감이 올 것 같은데, 그런 경험 없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보만 보고는 알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민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떤 범주에 들어가냐면.. 현장에서 그런 기술들을 빠르게 이해하고 습득하도록 풀어놓은 방법들을 알려주는... 지극히 ‘기술서’다. 혹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술이나 자연 현상의 소개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으신가요?


지연

직접적인 기술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문장 자체가 너무 좋아서 소개드리자면, 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와요. “달은 바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이건 직접적인 기술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읽는 기술에 대한) 앞의 내용을 망라해주는 말 같아요.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는데, “돌이 우리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다”라는 가사에요. 돌은 가만히 있잖아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보면 우리는 돌에 비해서 날고 있는 거예요. 정말 시적이에요. 조수의 변화를 표현한 이 문장이 이 노래 가사처럼 시적으로 다가와서 좋았어요. 사실 자연 자체가 시적이잖아요.


민규)

사실 생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관계성’과 ‘연결성’에 대한 것이에요. 자연 안의 다양한 구성요소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생태학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이 기술들을 많이 알면 알수록 그런 ‘시적인 관계’를 더 많이 포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연) 

이 책은 그렇게 연결되어있는 자연계의 방대한 네트워크의 부분 부분들을 좌표처럼 알려주잖아요. 우리가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아도, 적어도 우리가 자연 안에서 무얼 하려고 할 때 그 관계를 인지하고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규)

그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기도 해요. 책에서 소개되는 일화에서 저자는 어떤 나비의 출현을 보고 그 지역의 생태적 특징을 거꾸로 추적하며 파악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어떤 부전나비류의 한 종은 특정 덩굴식물과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그 나비를 보면 그 곳에 어떤 덩굴식물이 사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식물은 석회암 지대에서만 자라난다. 따라서 이 곳은 석회암 지대이구나” 하는 것이에요. 저자는 그런 추리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고, 정말 재미를 느끼면서 이런 기술을 계속 훈련해나가는 것 같아요.


지연

이 책이 그런 기술서여서 좋았던 게, 우리가 생태를 공부하건 나무나 꽃을 공부하건 기존에 확립된 지식을 배워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단서를 배우잖아요. 그런 면에서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이라는 제목을 너무 잘 지은 게. 산책하면서 만난 단서들로, 우리 주변에 있는 공원만 가도 얼마나 다 다른 단서를 보겠어요. 그래서 자기만의 산책길, 지도를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거죠. 이 단서만 있으면. 그게 너무 훌륭한 것 같아요.  



(C)Kristin link

        




산책하면서 만난 자연의 흔적과 신호들을 기록하는 'Nature Journaling'.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자연 애호가들에게 대중적인 취미이다.






민규)

그래서 이 책은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정말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포유류 공부하면서 (- 직접 보기 힘들기 때문에 ‘흔적’을 통해서 생태를 파악하게 된다) 그런 추적기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런 기술들을 배우고 나서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어요.      


지연

산책에도 다양한 목적의 산책이 있는데요. 특히 저는 자연을 거니는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예전에 프리랜서로 일할 때 안동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하루에 산책을 3시간씩이나 했어요. 그러면 하루 반나절이 다 가요. 낙동강 주변에 펼쳐진 산세가 아름다워서 걷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산책에 대해 더 얘기하자면, 저는 산책할 때 얽혀있는 생각들이 정리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산책을 할수록 내가 더 나다워지고 보다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간다고 느낍니다. 산책과 관련된 단어들도 좋아해요. 예를 들면 ‘거닐다’와 같은 말이요.     


민규)

저는 대만에서 학교 다닐 때 산책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열매를 찾아다니는 것이었어요. 텃밭에는 용과와 파파야, 그리고 학교 안 숲에는 망고나무와 리치나무가 있었어요. 산책을 매일같이 하다 보면 언제쯤 열매가 익을지 알 수 있죠. 이걸 눈여겨보다 열매가 다 익을 때가 되면 산책 도중에 그 달콤함을 즐길 수 있었어요. 사실 열매의 위치를 잘 기억하고, 그들이 언제 익을지 파악하는 것도 일종의 자연 신호 읽기죠.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원래 우리 모두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도시 문명 이전의 인간이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갈 때는 이런 능력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죠. 우리가 애인에게 꽃을 선물하곤 하잖아요. 왜 꽃을 선물하는지? 라는 질문 이전에 우리가 꽃을 보면 왜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지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가설이 있어요. 꽃을 본다는 것은 곧 미래의 열매가 열릴 수 있는 식물을 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식량, 생존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자연 신호를 읽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자연이 보내는 신호에 더욱 귀 기울여야 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런 능력을 잃어버린 오늘날에 사람들은 (그 능력이 연결해주는) 무언가를 잃고 사는 것 같아요.     





꽃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심리 기제를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지연

민규씨가 말한대로 이런 기술을 배우면 산책이 더 즐거워져요. 자연 속에서 흔적을 보고, 단서를 찾고. 그런데 이걸 배우는 건 자연을 즐기기 위함 뿐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해주는 말을 조금 더 잘 듣기 위한 방법 같기도 해요.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자연계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서 자연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 훈련도 될 것 같아요.     


다른 얘기를 덧붙이자면, 책 302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 재단에서 모두가 공감하고 항상 얘기하는 건데 -이런 말이 책에 나와요.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가능한 한 우리 흔적을 덜 남기려고 할수록 더 많은 것을 파악하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산책한다고 해서 그 곳을 막 헤집어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요. 자연 속에 있을 때의 태도. 항상 그런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아요.    


민규)

인간 활동으로 원래의 자연이 여러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죠. 기후변화가 그렇고, 지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규모의 개발사업, 공사들이 그렇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쳐서 어떤 생물의 서식지를 더 이상 서식지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어 터널이 뚫려서 지하수 수위가 줄고, 그 때문에 도롱뇽이나 개구리가 없어진다거나... 사실 지역마다 있는 환경단체들이 이런 파괴나 변화를 감시하지만 모든 지역을 환경단체들이 다 커버할 수 없는 노릇이죠.    

 

지역에 이런 기술을 훈련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니까 자연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자연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여기저기 도처에서 훼손되는 자연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박지연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생명다양성재단|

생명다양성재단은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 및 환경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2013년 설립된 공익 재단법인입니다. 환경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누구나 환경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삶 속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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