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가을 여행지
‘한국의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서원은 조선시대 향촌 선비들의 멋과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소수서원, 경상남도 함양군 남계서원, 경상북도 경주시옥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 전라남도 장성군 필암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도동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병산서원, 전라북도 정읍시 무성서원, 충청남도 논산시 돈암서원 등 총 9곳이다.
유네스코는 9개 서원을 통해 성리학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건축물은 물론 원래의 지형과 주변환경, 기록유산, 무형의 유산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한국관광공사가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은 한국의 서원을 소개했다.
영주 소수서원
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하나다.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쇠락하자, 퇴계 이황이 1549년 경상관찰사 심통원을 통해 조정에 편액과 토지, 책, 노비를 하사하도록 건의했다. 명종이 이를 받아들여 이듬해 친필 편액을 내렸으니, 조선에서 처음이다.
백운동서원은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모셨고, 소수서원은 그와 함께 안축, 안보, 주세붕을 모신다. 주세붕은 어진 목민관으로 칭송 받았는데, 백성이 산삼 공납으로 힘들어하자 소백산에서 산삼 종자를 채취해 인삼 재배에 성공한 인물이다. 소수서원은 풍광이 빼어난 죽계천 앞에 터를 잡았으며,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향교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입학하는 데 자격을 두지만, 수업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학문을 하려는 이들에게 열린, 진정한 무상교육이다.
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 부르는 데는 소수서원이 길러낸 숱한 선비와 거기서 비롯된 선비 정신이 이후 독립운동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흔적을 따라 대한광복단기념관과 무섬마을을 여행한다. 책 한 권 들고 찾기 좋은 금선정은 지역 주민도 잘 모르는 명소다.
함양 남계서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경남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선비의 고장으로도 통한다.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는데,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있다. 정여창의 위패를 모신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시대 서원 건축의 본보기를 제시한 곳으로 평가 받는다.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에 들기도 했다.
남계서원에는 동방5현으로 불리는 정여창의 숨결이 서려 있다. 유생이 휴식을 취하던 풍영루와 사당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고, 기숙사인 양정재와 보인재 앞에 있는 연지가 이색적이다. 정여창의 고향이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잘 알려진 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에는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186호)을 비롯해 100년 넘은 전통 한옥 60여 채가 남아 있다.
화림동계곡을 끼고 6.2km 이어진 선비문화탐방로 1구간은 함양 정자 문화의 진수를 맛보는 길이다.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천년의 숲’ 함양상림(천연기념물 154호)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경주 옥산서원
조선시대 유교 교육기관이자 명문 사립학교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곳이다.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서 숲과 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있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엄격한 강학과 성현의 문화가 만나는 옥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서원 앞 계곡에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가 절경이다. 회재가 이름을 붙인 5개 바위 가운데 세심대(洗心臺)에는 퇴계 이황이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에서 그가 이 천혜의 자연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만하다.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은 건축학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자연과 하나 된 공간 배치와 구조가 멋스러워 잠시 머물러도 힐링이 된다.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국가민속문화재 189호)의 명품 고택을 돌아보는 시간도 황홀하다. 독락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40호)은 조형미가 빼어나 신비롭고 예술적인 감동을 준다.
안동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제자들은 스승이 돌아가시고 딜레마에 빠졌다. 스승을 모실 사당과 서원을 지어야 하는데 스승이 세운 도산서당을 허물 수도 없고, 다른 곳에 터를 잡자니 스승이 '도산십이곡'을 지어 부를 만큼 아낀 곳을 외면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도산서당 뒤쪽에 서원 건물을 지어 서당과 서원이 어우러지게 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역락서재 등 앞쪽 건물은 퇴계의 작품이요, 전교당과 동·서광명실, 장판각, 상덕사 등은 제자들이 지었다. 퇴계가 꿈꾼 유교적인 이상향인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은 이렇듯 스승과 제자가 시대를 달리하며 완성한 의미 있는 공간이다. 퇴계를 존경한 정조는 어명으로 ‘도산별과’를 실시했는데, 조선 시대 한양이 아닌 곳에서 과거를 치른 유일한 경우다. 시사단(경북유형문화재 33호)은 팔도에서 모여든 선비 7000여 명이 치른 도산별과를 기념한 곳으로, 낙동강과 어우러진 풍광이 보기 좋다.
조선 500년을 지탱한 유교 문화의 토대가 된 도산서원을 둘러본 뒤에는 퇴계의 선비 정신이 어떻게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안동 임청각(보물 182호), 서부리 예(藝)끼마을, 이육사문학관 등을 여행하면 좋다. 달빛 고운 월영교는 저녁 무렵에 더 운치 있다.
장성 필암서원
전남 장성은 호남 지방의 학문과 선비 정신을 잇는 대표적인 고장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에 우리나라 성현 18인도 함께 봉안됐는데, 호남에서는 하서 김인후가 유일하다. 인종이 세자 때 스승이던 그는 인종이 승하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명분과 의리를 지키며 여생을 보냈다. 장성 필암서원(사적 242호)은 하서의 위패를 모신 우동사와 유생이 학문을 닦던 청절당, 기숙사인 진덕재와 숭의재 등으로 구성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중 하나다. 필암서원은 예의 중심인 서원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 독특한 건물 배치를 보인다. 청절당은 입구인 확연루를 향하지 않고 우동사로 향해 있다. 진덕재와 숭의재도 우동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다른 건물로 막지 않았다. 유생은 늘 사당을 바라보며 공손히 예를 표했다.
황룡강이 흐르는 ‘옐로우시티(Yellow City)’ 장성은 여행지 곳곳에서 노란색을 발견할 수 있다. 장성군을 대표하는 음식점은 각자의 비법으로 개발한 노란빛 음식을 내고, 장성호수변길에는 황룡을 형상화한 옐로우출렁다리가 있다. 장성은 힐링에도 좋은 도시다. 편백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축령산을 산책하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백양사는 가을 여행 필수 코스다.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어 더욱 화사하다.
달성 도동서원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극찬했다. 한훤당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 이름이 ‘도동’이 된 이유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 우리나라 5대 서원 가운데 하나인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이 있다. 동방5현 중 가장 웃어른인 김굉필을 모시는 곳이다. 서원 앞을 지키고 선 은행나무가 400여 년 세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수문장인 은행나무를 지나 수월루로 들어서면 소소하면서도 섬세한 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도포 자락 여미고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동입서출의 규칙에도 귀여운 다람쥐가 등장한다. 12각 돌을 조각보처럼 이은 기단 앞에 서면 심장이 멎는다. 지루한 강학 공간에 보물처럼 숨겨진 장치를 하나하나 짚다 보면, 어느새 선조의 깊은 마음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한훤당고택은 예쁜 한옥 카페로 이름났다. 품격 높은 고가에서 즐기는 전통차와 유기농 커피가 특별하다. 도심 속 한옥마을인 남평문씨본리세거지(대구민속문화재 3호)는 전국 사진작가들이 탐내는 골목 풍경이 눈에 띈다. 화원동산 전망대에 서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풍경이 눈부시고, SNS 사진 명소로 떠오른 달성 하목정(대구유형문화재 36호)은 배롱나무꽃이 눈부신 계절이다.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사적 260호)은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낙동강에 발을 담근 병산이 푸른 절벽을 펼쳐놓는다. 아름다운 서원으로 꼽는 이유는 그림 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건물 안으로 들여놓은 솜씨 덕분이다. 만대루 앞에 서면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군더더기 없는 7칸 기둥 사이로 강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마주 선 사람도 진초록 풍경이 된다.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조선 5대 서원 중 하나다. 서애는 이순신 장군을 발탁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임금 앞이라도 주저하지 않았다. 후학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지금의 자리로 서원을 옮긴 이도 그다.
병산서원은 요즘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수령 약 400년이 된 배롱나무 6그루를 비롯해 120여 그루가 한꺼번에 꽃 피운 행운의 순간을 누리고, 서애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징비록》(국보 132호)을 쓴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88호)와 그의 삶이 깃든 하회마을(국가민속문화재 122호)이 지척이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감상하거나, 붉은 배롱나무꽃을 두른 체화정을 둘러보거나, 타박타박 옮기는 걸음마다 마음을 울리는 그윽한 비경이 함께 한다.
정읍 무성서원
신라 말 학자 고운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정읍 무성서원(사적 166호)이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에 등재됐다. 무성서원은 최치원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生祠堂) 태산사가 뿌리다. 생사당은 마을을 다스리는 이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를 올리는 사당을 뜻한다. 이후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1696년 사액 받으며 ‘무성’이란 이름을 얻었다.
마을에 터를 잡아 소박해 보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화를 면한 내공 있는 서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외삼문 역할을 하는 현가루와 강학 공간인 강당, 기숙사인 강수재, 사우 태산사 등이다.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태산사에는 최치원과 정극인 등 7인을 모셨다.
무성서원을 품은 원촌마을에 우리나라 최초 가사 작품 〈상춘곡〉을 남긴 불우헌 정극인의 묘가 있다. 최치원이 거닐었다는 정읍 피향정(보물 289호)도 놓치면 아쉽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정읍 황토현 전적(사적 295호)과 동학농민혁명기념관도 정읍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논산 돈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사적 383호)은 사계 김장생 사후 3년 되던 1634년(인조 12)에 후학들이 창건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은 기호학파로, 무엇보다 예를 중시했다. 돈암서원은 본래 지금의 자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81년(고종 18) 홍수 피해를 우려해 옮겼다. 서원이 이전하면서 여느 서원과 다른 건축 배치를 보이지만, 서원의 진정성은 동일하다.
예를 중시하던 김장생과 후대의 교육 정신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진다. 특히 돈암서원에서는 창건 당시 강당인 응도당(보물 1569호), 도담서원의 역사가 쓰인 원정비, 제향 공간인 숭례사와 내삼문의 꽃담 등이 꼭 봐야 하는 곳이다.
돈암서원에서 조선 시대를 만났다면, 계백장군유적지에서 백제 시대도 만나보자. 백제군사박물관, 계백장군기념비와 묘, 충혼공원 등이 조성됐다. 논산의 서북 끝자락 지역인 강경에서 새우젓으로 유명한 젓갈거리와 근대건축물을 복원한 근대 역사 문화 공간을 걸어보고, 논산선샤인랜드의 서바이벌체험장과 밀리터리체험관, 1950낭만스튜디오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백제부터 조선,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예(禮)를 다시 본다.
디지틀조선일보 서미영 기자 pepero9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