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기준
차디찬 겨울바람을 견뎌 12월의 끝에 도달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어떤 이는 밤새 동해 앞바다로 달려가 뜬 눈과 잠든 눈 사이에서 새해의 첫 태양을 바라볼 테고, 또 어떤 이는 두꺼운 이불속에서 꼼지락대다 몸을 일으켜 벽에 걸어둔 옛 달력을 치우고 새 달력을 걸어둘 테다. 행복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도 저마다의 삶에 맞춘다. 그래도 올해의 목표를 세우고 각오를 다지는 건 모두가 한마음인 듯하다.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책을 읽거나 또는 학업과 취업 그리고 더 나은 이직을 꿈꾼다. 한 해의 시작점에 서 있으면 우리의 마음만은 여름보다 뜨겁다.
그런데 왜 새해가 돼서야 우리의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는 걸까? 아마 매년 1월 1일이 새해의 첫날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기에 처음은 중요하다. 격투기 선수는 초반에 기선제압을 하고, 작가는 첫 문장에 하루를 바치고,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달력에 적는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꾸준히 하기엔 365일은 너무 긴 시간인 걸까? 끝을 보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걸까? 어쩌면 우린 애초부터 미완성된 시작점에 서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달력은 고대 이집트 때 태어나 고대 로마를 거쳐 16세기 유럽에 ‘그레고리력’으로 재정됐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양력이 ‘그레고리력’이다. 그런데 이 그레고리력은 매년 약 26초씩 어긋나는 중이다. 그래서 4년마다 윤년(2월 29일)을 추가하지만, 여기서 또 400년마다 3번의 윤년을 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달력은 복잡하게도 미완성이다.
삶이 늙어갈수록 처음이란 기준은 사람마다 다름을 이해한다. 누군가는 첫사랑을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짝사랑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첫 연애라 일컫고, 다른 누군가는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 부른다.
또 자신이 태어난 첫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당연히 생일이라 믿겠지만, 간혹 “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살았으니 내 첫날은 생일보다 이전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 “아니지. 엄마 뱃속이 아니라 아빠 쪽에 있을 때부터 살아 있었으니...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고개를 훔치는 자도 있다.
처음이란 기준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정하기보다 자신만의 삶에 맞춰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내 처음의 기준은 매일 새벽 5시다. 어쩌다 보니 이 시간이 일어나는데, 생각해 보면 내겐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고, 저녁을 먹지 않아 주로 낮에 약속을 잡고, 남들보다 일찍 자서 새벽 5기로 기준을 잡았다. 그래서 내겐 처음이란 매일 일어나는 시간이며, 하루를 계획하는 일순이고, 가장 나다운 순간이다. 연일 목표를 적는 펜의 긁힘은 어설픈 나를 정제된 어른으로 만든다. 그래서 내 삶은 아침부터 결연하다. 호사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