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노인

by 안신영

양 노인이라는 분이 안 광욱 교수를 방문했다.

왜소한 체구에 쑥 들어간 볼,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살과 꽉 다문 입으로 보아 평탄한 삶을 살아온 분 같지는 않았다. 안 교수와는 생면부지인 노인은 단호하게 자신의 사후에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자식들도 셋이나 있고 할머니도 계신데 막무가내로 시신을 기증하시겠다고 우기시는 것이다. 연로한 노인을 상대로 설득을 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 노인이 무슨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의중을 알아야 했다. 간혹 대학의 부속병원에서 환자가 사망을 하게 되면 그 가족들이 경제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해부학 교실에 연락을 해오기 때문이다.
양 노인이 어떻게 안 교수를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생전에 의로운 뜻으로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고 온 사람은 노인이 처음이었다. 서울에서는 의과대학의 교수들이 죽은 후에 시신을 기증하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노인은 안 교수를 찾아와 자신이 살아온 얘기하기를 좋아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안 교수는 처음에는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어렴풋이 어렸을 때의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바쁜 일들을 뒤로하고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시대에 시골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죽도록 해야 했던 양 노인.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어린 마음이지만 똥장군도 져야 했고, 쇠꼴도 베야했으며 산에 가서 나무도 해서 날라야만 했다. 일이 고되고 힘들어 그런 힘든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심했다. 일을 덜 하려면 선생님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돈을 훔쳐 일본으로 달아났다.

일본에서 신문을 돌리며 하루에 한 끼씩 밖에 먹지 못하고 공부를 하여 교사 자격증을 따서 돌아왔다.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그의 큰 아들은 대기업의 간부, 둘째 아들은 중학교 교사. 딸이 양 노인을 모시겠다고 해서 지금은 딸네 집에 있지만 딸은 매일같이 집을 노인에게 맡기고 외출을 한다.
끝도 없이 줄줄줄 풀어내는 실타래 같은 이야기는 안 교수가 바쁜지 한가한 지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런 양 노인에게 점심을 사드리고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 어느새 안 교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담백한 대구탕보다는 보신탕을 잘 드셨다.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양 노인의 얘기를 불평 없이 들어주는 안 교수는 돌아갈 때 노인의 손에 교통비를 쥐어드리기도 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와서는
“자식들 아무 소용없어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다 제 혼자 큰 줄 알지. 자식들 다 바쁜 줄은 알지만 늙은이를 귀찮아해. 나이 들면 서러운 게 많은데 제일 서러운 것이 자식한테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제일 큽디다. 지들을 위해 쌔(혀) 빠지게 일했는데... 이제 와서 제 부모 귀찮아하니. 내가 뭐 특별히 원하는 게 있나. 그저 사람 대우만 받아도 괜찮아. 늙은이 대하기를 무슨 벌레 보듯 하니 그게 문제지. ”
한숨을 자아내며 나이 듦을, 열심히 살았던 노인들이 천대받는 현 세태를 한탄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들어주는 안 교수를 노인은 자주 찾아왔다. 너 댓 시간을 노인의 넋두리를 듣고 있노라면 안 교수는 솔직히 조금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교 일이 보통 바쁜가. 강의 준비와 연구논문, 실험, 찾아오는 학생들의 상담으로 눈 코 뜰 새 없다. 그런데 하물며... 그러나 양 노인의 진심을 알게 되고 노인들의 설움 같은 것을 차츰 알게 되니 연민이 일었다. 소홀했다가는 `안 교수 당신도 늙어 보세요' 하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았다. 양 노인은 사후에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는 서류를 작성해서 학교에 접수를 하고 돌아갔다.
“어르신, 자주 놀러 오십시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안 교수는 노인에게 정을 담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으나, 양 노인은 몇 개월이 지나도 발길을 하지 않았다. 어릴 적 안 교수의 할아버지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정신이 가끔씩 나갔다 들었다 하며 손자가 귀엽다고 침을 질질 흘리시며 밥을 씹어주셨다. 가끔씩 옷에다 용변을 보아 어머니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무섭고 싫어서 피했지만 어머니만큼은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옷을 새로 갈아 입혀드리고 온 몸을 깨끗이 씻겨 드렸다.
양 노인의 말대로 요즘의 며느리들 중에는 성한 몸의 부모조차 싫어하며 멀리 한다. 옛날 안 교수의 할아버지처럼 옷에다 용변을 본다면 내다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양 노인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닐까?

퇴근을 하는 노을 진 저녁 무렵 복잡한 연산 교차로를 벗어나 삼익 아파트 옆을 우회전하면 거제 천을 따라 일방통행로가 있다. 노인복지회관에서 하루 해를 보낸 노인들이 냄새나는 도로를 따라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온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모퉁이에 앉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허연 백발의 할머니들은 붉은 노을에 반사되어 더욱 초라한 얼굴이다.


다음 날, 안 교수는 학교 수위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안 교수님! 대여섯 명의 노인 분들이 막무가내로 안 교수님 뵙겠다고 올라갑니다.” 잠시 후 연구실 밖이 웅성거린다. 문을 열어보니 양 노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 교수, 그동안 잘 있었는가. 경로당의 내 친구 들이우. 안 교수와 지낸 얘기를 듣고는 따라온다고 성화 인기라.”

양 노인은 안 교수의 안색을 살피며 노인들을 끌고 연구실로 들어섰다.
<1995. 부산 연제구민 일보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