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왔어
진눈깨비가 내린다는 예보대로 오후부터 눈이 흩날렸다. 싸라기처럼 가벼운 눈과 물기가 섞인 진눈깨비가 공중에서 춤을 추듯 흩날리다 호수 위로 내려앉았다. 이런 날이면 물새들이 흩어질 법도 한데, 그들은 늘 그렇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몇은 물 위에서 느긋하게 몸을 띄우고, 몇은 물가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수에 여전히 너희가 있어줘서 고맙다.
지난가을, 휴무자 대체 근무로 이곳(매직아일랜드)에 왔을 때도 나는 제일 먼저 호수로 향했다. 물새들이 혹시나 자리를 비운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하며. 짧은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던 너희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혼자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안도감은 지금도 또렷하다.
올해 다시 석 달을 함께하게 된 것도 반갑다. 유난히 추운 날, 무뚝뚝한 얼굴의 가마우지 한 마리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모습조차 반가웠다. 영하의 날씨에도 변함없이 모여 옹송거리는 너희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그 끈질김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어제는 강추위 속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둔덕 위에 왜가리가 서 있었고, 그 아래 물가에는 오리들이 줄지어 있었다. 보기 좋았다. 가끔 갈매기가 날아와 곁에 앉아도 아무도 내치지 않았다.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도 품을 줄 아는 너희의 느긋함이 부럽기도 하다.
검은 물닭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요즘에는 아기 오리 세 마리가 어른오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 위를 동동 떠다닌다. 앙증맞은 몸짓을 보고 있자면 저 작은 생명들도 이 겨울을 지나면 제법 듬직해지겠지 싶다.
근무하다 마음이 지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수를 바라본다. 너희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된다. 고마움에 먹이라도 던져주고 싶지만, 완전한 야생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기에 마음만 접는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거리라는 것도.
가끔 포효하듯 ‘꽤액깩, 꽤액깩’ 소리를 내며 거위가 나타나고, 밤이 되면 그 거위도 너희 곁에서 함께 잠을 청하기도 한다. 늦은 밤 퇴근길에 그 풍경을 돌아보며, 내 마음에도 조용한 온기가 스며든다.
평화로움 자체로 빛나는 너희가, 이 겨울을 무탈하게 건너가기를. 오고 가는 계절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오늘도 조용히 바라보며 소망해 본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