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ing Surgeon Aug 05. 2021

저승사자와의 사투

금요일 밤의 응급 간이식

삐-삐-삐-

환자의 몸에 부착된 기계장치에서 시끄러운 알람이 울린다.

"선생님, 환자 혈압이 떨어져요!"

담당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환자 의식이 떨어집니다. 인투베이션 준비해 주세요!"

담당 전공의가 분주하게 환자 상태를 체크하며, 뛰어다닌다.


다음주 월요일 간이식 예정인 환자였다. 금요일 오전 회진을 돌다가 내과에 입원 중이던 환자를 보러 갔더니, 병동에서 난리가 나고 있었다. 환자는 간암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간기능이 좋지 못하여 황달도 심하고 복수도 많이 차있었다. 더 이상 간기능의 회복이 어려워 간이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증자는 환자의 아내였다. 간 기증을 위해 체중도 감량하고, 여러 가지 검사들도 받았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 수술만 받으면 남편을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토요일 입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원 준비를 위해 잠시 집에 다녀오려고 병원을 막 나서려던 차에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상태로는 환자가 월요일 간이식 수술까지 버티기 어려워 보였다.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사이, 간경화로 인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식도의 정맥이 터져서 엄청난 출혈이 발생하였다. 급하게 내시경을 하였으나 도저히 출혈을 멈출 수는 없었다.


"환자가 도저히 월요일까지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 바로 간이식을 시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수술을 들어가도 환자가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면서 응급 간이식을 하자고 얘기했다.

막상 수술을 권하였지만, 나 역시 환자가 이 상태로 그 큰 수술을 버텨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환자는 곧 사망할 것이다. 지금 간이식을 하면 그래도 환자가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


아내는 바로 기증자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였다. 그날 저녁 바로 간이식을 시작하였다.

간이식은 쉽지 않았다. 식도정맥류 출혈을 막기 위해 위와 식도 안에 풍선을 부풀려 놓는 SB 튜브를 넣어 놓아서 수술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 했음에도 위장 내의 출혈이 계속되어 위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환자의 머리맡에는 수혈을 위해 달아 놓은 핏 주머니들이 대롱대롱 달려있다. 신장 기능도 떨어져서 수술대 옆에는 인공투석기도 달아 놓았다.

병든 간을 떼어내기 위해 환자의 간에 손을 댈 때마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혈압도 함께 떨어졌다.

"교수님, 환자 심장이 잘 못 버팁니다. 잠시 수술을 중단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러다가 곧 심장마비가 올 것 같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잠시 간을 내려놓고 환자의 심장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뚜--- 뚜--- 뚜---

심장 박동이 너무 느려지고 있었다.

마취과 선생님들이 이것저것 조치를 취하고 나자 다시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뚜-뚜-뚜-뚜-뚜-

심장박동이 괜찮아진 틈을 타서 다시 수술을 재개하자 심장은 또 느려지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몇 번의 위기가 반복된다.

환자의 간에 손을 댈 때마다, 마치 저승사자가 환자의 영혼을 끌어내어 수술대에서 멀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환자를 다시 수술대 위에 끌어다 놓고 이승에 머물게 해야만 했다.

원래의 간이식 수술 방법대로는 도저히 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다. 수술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환자의 간으로 가는 혈관을 먼저 찾아서, 심장으로 가는 혈관에 우회로를 만들어야 위장관 출혈을 줄이고, 심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이 들자마자 몸은 이미 우회로를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해 놓으니 환자의 심장 상태가 다소 안정 상태를 찾는 것이 보였다. 환자를 저승사자의 손에서 조금은 멀리 떼어 놓은 것 같았다.

수술은 어려웠다. 마취과 선생님들도 환자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전의 방사선 치료로 인해 간 주변 조직들이 굳어 있어, 출혈도 많고 수술이 더욱 어려웠다.

살려내야 한다. 더 물러설 곳이 없다. 끝까지 수술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큰 부담감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와 어깨를 짓누른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가 수술실 벽에 붙어 있는 환자의 이름표를 보았다. 환자의 이름 바로 아래 주치의인 내 이름이 보인다. 이 환자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있다. 그 환자의 목숨의 무게가, 그 이름의 무게가 오늘따라 더 무겁게만 느껴진다.


어렵게 어렵게 간이식은 끝이 났다. 마취과 모니터에 보이는 환자의 심장박동과 혈압을 나타내는 숫자들이 정상화되는 것이 보인다. 수술 가운을 벗자, 수술복 안쪽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교수님, 이렇게 안 좋은 환자는 처음 경험해 봅니다."

마취과 전공의가 이야기한다.

"수술 중 몇 번의 고비를 넘겼는지 몰라요."

마취과 전공의의 얼굴을 보았다. 수술이 잘 끝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마취과 전공의의 마스크 낀 얼굴 사이로 약간의 뿌듯함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직도 펄쩍펄쩍 뛰고 있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가기 전에, 마취과 선생님들과 수술실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건네어 본다.

"오늘 밤 환자 한 분 살렸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평소에는 낯 간지러워 잘하지 않는 인사말이 오늘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이식을 하는 외과의사로 살아가다 보면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응급으로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저승으로 향해 막 들어가려는 환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방향을 틀어 수술실로 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수술 중에는 저승사자와의 사투가 벌어진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저승으로 끌고 가려는 이와 어떻게든 못 가게 하려는 외과의사의 처절한 전투이다. 수술실은 그야말로 전투이다. 피 튀는 전투가 끝나고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런 전투를 마치고 환자가 잘 회복하게 되면, 건네는 말이 있다.

"요단강 건너려고, 턱밑까지 요단강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앞으로는 요단강은 쳐다보지도 말고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오늘도 내 목숨을 깎아서 환자에게 더해준 것 같다.



Copyright(C) 2021 Dreaming Surgeon.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슬의생] 술과 간이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