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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Jan 22. 2020

혈액형이 달라도 간이식이 가능한가요?

[의학정보]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장기이식에 있어서 혈액형은 매우 기본적인 면역학적 요인입니다. 환자들이 흔하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혈액형이 안 맞는데, 이식이 가능한가요?"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혈액형이 맞지 않으면 장기 이식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혈액형 이외에도 조직 적합성 항원이라든가 림프구 교차반응 검사 등 여러 가지 면역학적 요소들도 고려해야 합니다만, 간이식에서는 혈액형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간이식에서는 면역학적 요인 이외에도 간의 크기와 모양, 혈관의 분포 등도 간 기증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자~ 오늘은 그러한 복잡한 요소들은 뒤로 하고 혈액형에 대해서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혈액형이 안 맞는 기증자가 있는데, 간이식을 할 수 있을까요?"


혈액형이 맞지 않는 상태로 바로 간이식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간이식 전에 이식을 받는 환자에게 몇 가지 처치를 해야만 합니다.

자~ 우선 전통적으로 이식이 가능한 혈액형 조합을 살펴보겠습니다.


기증자 혈액형  →  수혜자 혈액형

        O+           →    A+, B+, AB+  (O형 기증자는 모든 혈액형 환자에게 기증 가능)

        A+           →    A+, AB+

        B+           →    B+, AB+

       AB+          →    AB+  (AB형 기증자는 AB형 환자에게만 기증 가능)


위에서 보셨듯이, 혈액형이 똑같은 기증자-수혜자 간에는 문제없이 이식이 가능합니다. O형 혈액형 기증자는 모든 혈액형 수혜자에게 기증이 가능하지만, AB형 기증자는 AB형 수혜자에게만 기증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AB형 수혜자는 모든 혈액형의 기증자로부터 장기를 받을 수 있지만, O형 혈액형 환자는 O형 기증자에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짝이 성립하는 이유는 각 사람마다 적혈구에 고유의 항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혈액형 A인 사람은 A항원이, B인 사람은 B항원이, AB형인 사람은 A항원과 B항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혈액형 O인 사람은 이러한 A, B 항원이 모두 없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혈액 내에는 이러한 항원을 인지하고 공격하는 항체 또한 존재합니다. 혈액형 A형인 사람은 B항원에 대한 항체가, B형인 사람은 A항원에 대한 항체가, O형인 사람은 A, B 모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고, AB형은 A와 B 모두에 대해 항체가 없는 사람입니다. 조금 어렵지요. 아래 표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혈액형             항원            항체


  A                    A                Anti-B

  B                    B                Anti-A

 AB                 A, B              None

  O                 None            Anti-A, Anti-B


따라서,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환자(수혜자)의 혈액 내에 있는 기증자가 가지고 있는 항원에 대한 항체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기증자가 A형인데, 환자가 O형이라면, Anti-A 항체를 제거해야 이식이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기증자가 AB형이고, 환자가 A형이라면, 환자로부터 Anti-B 항체를 제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혈액형이 안 맞는데도 바로 간이식이 되나요?"


이처럼, 자기와 다른 혈액형의 기증자로부터 간을 받기 위해서는 그 다른 혈액형의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를 먼저 제거해 주고 나서 이식을 해야만 거부반응 등 합병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혈액형이 안 맞는 기증자의 간을 바로 받을 수는 없고, 몇 가지 전처치(탈감작 요법)를 해야만 합니다.


1. 그럼 어떻게 항체를 없앨 수 있을까요?

     먼저 몸에 있는, 정확히 말하면 혈장 속에 있는 항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혈장교환술"이라는 처치를 받아야 합니다. 혈장교환술은 쉽게 말해서, 환자의 몸에 있는 혈장 (혈액 속의 액체 성분)을 꺼내어 걸러내서 그 안에 포함된 항체를 모두 제거하고 항체를 가지지 않은 AB형 혈액형 혈장이나 알부민을 대신 채우는 방법입니다. 콩팥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투석을 받는 것과 약간 비슷한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2. 항체는 한 번 없애면 다시는 생기지 않나요?

    혈장교환술을 통해 항체가 제거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몸에서는 계속해서 항체를 만들어냅니다. 몸속에 면역을 담당하는 여러 세포들 중 B세포라고 하는 것이 주로 항체를 만들어내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생기는 항체를 막기 위해서 리툭시맙 (Rituximab)이라는 주사약을 맞아야 합니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하면, 리툭시맙이라는 약은 항 CD20 단구 항체 (Anti-CD20 monoclonal antibody)라는 것인데, 이것은 B세포가 생성되지 못하도록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주사를 맞고 10~14일 정도가 지나면 몸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B 세포는 거의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혈액형이 맞지 않는 경우 혈장교환술과 더불어 리툭시맙 전처치를 통해 항체를 떨어뜨려놓고 간이식을 하게 됩니다.


3. 항체가 어느 정도까지 떨어져야 하나요?

     위의 두 가지 전처치를 한다고 해도 항체가 100%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식 직후 발생할 수 있는 급성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항체를 낮추어야 합니다. 항체 역가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다 설명하려면 내용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 간단하게 수치가 높을수록 항체가 많다고 이해해 두도록 하지요. (항체 역가는 1:2, 1:4, 1:8, 1:16, 1:32, 1:64....처럼 두배수 단위로 올라갑니다. 혈청을 희석하면서 그 수치를 재기 때문입니다.) 역가 기준은 검사법이나 시행하는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만, 보통은 1:32 혹은 1:16 이하가 되어야 안전하게 이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후 경과는 일반적인 간이식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이식 전 탈감작 요법을 통한 전처치가 필요합니다. 리툭시맙 주사는 보통 수술 전 1회 투여합니다. 약 효과가 6개월 정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이식 전 혈장교환술을 통해 떨어뜨린 항체는 간이식 후 대개는 다시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식 후 항체 역가가 올라간다고 해도 간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이식받은 간은 면역학적으로 환자의 몸에 순응이 되었다고 봅니다. 드물게 간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급성 거부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스테로이드 강타요법 혹은 추가적인 혈장교환술 등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의 경우, 이식 전 탈감작 요법만 추가되면 이식 후에는 혈액형 적합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국내 여러 기관에서도 혈액형 부적합과 적합 간이식의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하나요?"


혈액형이 맞는 기증자가 있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내 뇌사 기증자의 수가 현저히 적어서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적당한 시기에 간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간이식은 생체 기증자의 간을 이용하여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가족 간에 혈액형이 맞지 않는 기증자만 있을 경우, 과거에는 이식이 불가하여 환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기증자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이 되는 것입니다.


장기 부전으로 고통당하는 많은 환자들을 위해 장기 기증이 활성화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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