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셜에서 말하는 adhd가 불편할까?

by 다빵

큰 애의 진단을 받고 보니 어느 순간 미디어나 sns에서 adhd를 말하는 것이 많아졌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땐 그에 관한 책을 서점에 찾아보려고 했을 때 자폐나 언어, 사회성치료 관련한 책이 많았다.

adhd는 질병일까?

아이가 병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병이 아니라고 말했다. 너는 생각이 많아서 주의력이 부족한 거지 결코 그건 장애가 아니라고. 약을 먹으면 좋아지니 괜찮다고.

남편의 이모님께 어느 날은 "그래도 첫째가 자폐나 장애가 없어서 그래도 감사해요. 아픈 것도 없고요." 그러니,

우리의 이모님은 "저게 아픈 거지." 그러셨다.

어떤 날은 이랬다. "애들 크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고 싶네요. 찾지 않았으면.... " 그러니,

우리의 이모님은 "첫째를 봐서라도 네가 건강해야 한다." 그러신다.

병원 진료를 받고 있고, 보험사 가입 요건을 따지면 adhd는 질병이겠지만 아직까지 나는 병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들의 sns에서는 adhd를 가진 애들은 사회성이 없고 눈치도 없으니 따로 교육을 좀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고 사회성 문제 때문에 상처는 사실 adhd를 가진 애들이 더 많이 받는데 꼭 조현병이 있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말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배울 수 있고 좋아지는 게 adhd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에 없던 단어, 그저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었던 걸 우린 예전에 사회적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랬구나, 좀 더 그걸 빨리 알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어른들의 고백을 나는 많이 봤다. 물론 나 역시도 생각이 많고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를 산만한 아이라고 말하는 걸 거의 듣고 자라진 않았다. 나는 주로 공상을 많이 했고, 쓸데없는 생각을 접붙여서 지냈었다. 수업 내용을 놓치면 가끔 "선생님, 그건 이해하기 어려워서요."라고 다시 되물으며 다시 설명해 주기를 바랐었다. 그런 꼼수를 어떤 선생님은 눈치를 채고 그날 나를 엄청 혼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놓친 부분을 다시 말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첫 대학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담당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보통 남자애들한테 ADHD 성향이 주로 나오는데, 애는 여자 앤 데... 이런 경우 부모 양쪽 둘 다 어렸을 때 그런 경우가 많은데 어머님 어렸을 때 주로 산만하다고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나는 전혀 아니라고 말을 했고, 담당의는 내 말을 믿지 않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정신없다, 산만하다,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기에 큰애의 기질이 유전으로 인한 걸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 남자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뭐든 적당히만 하고 커트라인에 맞게끔만 공부하면 되지 왜 잘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내게, 자기도 그렇다면서 "우리 같은 애들이 사회악이야." 이런 말을 했다. 어린 마음으로 열심히 잇쇼켄메이 하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보처럼 느껴졌던 시기였다. 적당히만 해도 어느 정도 점수가 나왔고 뭘 그렇게 애를 쓰면서 살아야 하는지 몰랐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아직도 못 찾았고 설마 죽을 때도 모르는 채 죽겠지란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 거 같다. 사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과정이라고. 그래, 살아가는 이유는 모른다고 하면 목표나 꿈은?

어릴 때 꿈도 별로 없었었다. 아주 어릴 때는 그저 예쁘고 싶어서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거 같고, 학창 시절엔 그저 적을 게 없고 선생님한테 다른 말 듣기 싫어서 외교관이라고 적었다. 그래설까. 대학도 그저 어떤 친구가 가고 싶은 학과를 말하기에 동시에 흥미가 생겨서 원하는 과를 적었고 들어가서는 친한 애들이 그 과를 간다기에 같이 따라 적었다. 그러니깐 이런 인생이 잘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첫째가 딱 내 꼴이다. 얘도 꿈을 말하지만 꼭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잘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닌 거 같다. 꼭 하고 싶다 이런 것이 없다. 꼭 갖고 싶다고 당시에만 그렇지 애착을 가지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잘하는 걸 발견해주고 싶었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고 하니 병원에서는 공부를 시키라고 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상위권의 분위기를 알 테고 그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게 생길 줄 기대하고 있다. 아직 첫째한테 그 동기부여가 생기지 못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 피우면서 다 놓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루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쟤는 주춧돌도 못 만들 거 같아 보인다.

아이의 진단을 받고 1년 정도 심리상담과 언어치료를 겸했었다. 주 2회 정도 가면서 심리상담은 많이 불편했다. 엄마로서 그 정도 해야 되지 않느냐, 다른 어려움도 있겠지만 지금은 첫째를 치료를 하는 거니 첫째에 집중해라, 아이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매번 듣고 해야 할 임무를 받고 그 임무를 수행했는지 확인했을 때 나도 매번 원하는 결과에 부응하지 못했었다. 맞는 말들이다. 너무도 맞는 말들이라, 그걸 못 지킬 때 나는 나 자신이 ‘문제 있는 엄마’처럼 느껴졌다. 발달센터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애는 문제가 있는 아이고 부모가 문제가 있으니 당연히 부모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 원의 생활을 잘하는지 물었고 이런 핸디캡이 있으니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을 때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것은 원에서보다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라고 자기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부모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식의 되돌아오는 답변에 멕이 빠졌다.

지금 세 아이 학원 스케줄에 보통 하루에 30km 정도 운전한다. 힘들지 않냐, 이사를 가는 게 어떻냐 하지만 예전 첫째를 데리고 치료센터를 가는 게 더 힘들었다. 그땐 지금보다도 더 말이 없는 첫째가 지금보다 더 답답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한 번씩 들어가는 발달 관련카페에 좋은 센터 소개해달라든지 조언 부탁한다든지 하는 글을 본다. 사실 내 경우엔 그다지 심리상담과 발달치료에 크게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냥 약 처방을 먼저 받았음 한다고 말을 한다.

약물조장을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나처럼 이미 여러 번 부딪혀본 부모라면 약이 아이의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안다. 그게 나쁘지 않다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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