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예년과는 다르게 너무도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크리스마스가 되겠지만 이 시간이 주는 이유 없는 설렘만으로도 코로나 때문에 지친 일상에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 올 한 해는 마흔 살이 넘은 나에게도 너무나 낯선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마주하는 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연말이고 해서 습관처럼 올 한 해를 천천히 돌이켜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에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건강한가?
2017년 3월 10일.
이 날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날이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 속에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됐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여당은 180석의 거대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한번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건강이 최우선 순위인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건강한 걸까?
난 민주당 지지자다.
지금까지 참여한 모든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민주당 외 다른 정당을 선택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내 또래나 젊은 세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보수는 기득권층이고 그들은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 반대급부인 진보, 진보에서도 거대 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차마 보수에 표를 줄 수 없다는 생각이 컸던 게 사실이다. 언제나 그랬듯.
많은 국민이 민주당을 선택했고 그렇게 국민이 만들어준 180석의 거대 여당은 모두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를 잘 이끌어가고 있는 걸까?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 울 것
3년 7개월의 임기가 지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이 말처럼 우리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을까?
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사회가, 세상이 시끄럽다.
성공적으로 평가받던 K방역이 흔들리고 있고 백신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빠르게 늘어나는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는 한계에 부딪쳤고 수많은 집단감염과 감염경로도 파악되지 않는 깜깜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이 백신 확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안도감에 취해 손을 놓고 있었는데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백신을 '게임 체인저'로 받아들이고 조기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이 늦어지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궤변을 내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거리두기 단계를 세분화했음에도 경제적 파급효과를 이유로 언제나 한발 늦는 모습을 보이며 상황을 더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올해 있었던 인천 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인천 국제공항은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기업 우선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선망의 기업이고 입사를 위해서는 외국어 능력, 필기시험, 면접, 대외 활동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곳이다. 물론 방향성이 맞다는 것은 안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집단내 합의와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이 문제를 결론지어 버렸다. 역차별이라는 아우성이 나올만한다.
이 정부 들어 집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부동산 정책이 스무 번 넘게 나오는 동안 집값이 안정되기는커녕 정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규제지역이 지정되며 규제지역 주변으로 집값 상승이 나타나는 풍선효과가 반복되고 있다. 오죽하면 '패닉 바잉'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집값 안정을 위한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주택공급 확대에 대해서는 귀를 닫았으며 또한 임대차 3법의 무리한 시행으로 임대인, 임차인 모두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었다.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왜 귀를 열고 듣지 않는 것인지.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모습은 입법과정에서 보여주는 거대 여당의 독단, 독선적인 모습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임대차 3법, 기업 경영인들이 끊임없이 재고를 요청했던 공정경제 3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등 많은 입법과정에서 야당과 협치 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전문가의 조언도 필요 없는 모양이며 특히나 여당 내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설 곳이 없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한마디로 협의와 협치가 사라졌다.
내로남불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처럼 논리 없는 막무가내식 말이 또 있을까.
여당이 보여주는 입법과정에서의 독단과 독선에 대해 강성 지지자들은 보수도 그랬는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야는 언제나 상반된 입장에서 자신들의 의석수로 상대를 몰아붙여왔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 쪽이든 먼저 변화하는 쪽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쳇바퀴 같은 정쟁은 끝나지 않고 국민들이 느껴야 하는 피로감은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오늘자 기사를 보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이 선고됐다고 한다. 기소 때부터 표적수사니 하면서 말이 많았는데 1심에서는 15개 혐의 중 11개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많은 얘기들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재판부에 대한 비난은 없었으면 한다. 범죄 여부와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재판부 고유의 권한이며 여기서 중요한 건 정경심 교수가 11개나 되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물론 1심 판결이기에 항소심에서 어떻게 결과가 바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팩트는 11개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 이것 하나뿐이다.
나이를 먹으면 보수화 된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진보 지지자인 나도 요즘은 조금 생각이 바뀌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정말 모르겠다. 내가 보수적으로 바뀌는 건지 지금 여당인 민주당이 나를 보수 쪽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건지.
메리 크리스마스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도 시간은 돌고 돌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니까 소원을 하나 빌어보려 한다. 올해는 그냥 넘어갔지만 내년에는 꼭 로또 1등에 당첨되고 가족, 친구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라본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일하는 정치인들이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자신의 이익이나 정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코로나로 경직되고 얼어붙은 이 사회, 이 나라, 그리고 우리 국민을 위해 일해 주기를. 지금 같은 내로남불의 모습이 아니라 여야가 협치 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진짜 어른의 모습도 기대한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것만큼 멋진 모습도 없지 않은가.
집콕으로 보내게 될 성탄절이지만 그래도 모두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