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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근 Dec 10. 2018

'세계 1% 연구자' 논란과 저널리즘

<중앙일보> 최준호 기자의 '女과학자 조OO,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 (https://news.joins.com/article/23161389) 이라는 기사를 비판하면서, 조 박사를 포함해 상당수 '세계 1%' 수학자들한테 심각한 연구 윤리 문제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https://brunch.co.kr/@dkam/11 참고


그러면 이제 이런 기사가 나오기까지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만약에 단지 '조OO가 세계 1% 수학자로 뽑혔다'는 기사였다면 대개 '오~ 훌륭한 분이시구나'하고 넘겼을 것이다. 이렇게 바이럴을 타지도 않았겠고, 내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봤더라도 '세계 1% 수학자를 어떻게 뽑았대?'하고 기사를 읽어보다가 피인용 지수로 어쩌고 하면 그냥 피식 웃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경력 단절/지방대 차별 때문에 교수 임용이 되지 않았다고 쓰면 그것은 한국 대학 사회에 대한 (기존의 숱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비난이 돼 버린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만약 그분이 지원했다는 10개 대학이 구체적으로 지목됐다면 이는 당연히 소송감이다.)


그러면 자연히 논의의 주제가 그분이 정말 '세계 1%'로 뽑힐 정도로 학문적 업적이 있는지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팩트 체크를 더더욱 충실히 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팩트 체크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수학에서 피인용 지수를 갖고 '세계 1%'를 뽑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몰상식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대한수학회장 이향숙 교수도 "피인용지수 상위 1% 논문의 연구자라고 해서 세계 상위 1% 수준의 연구자라고 해석하지는 않는다"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게다가 경상대 연구팀의 상습적인 연구 윤리 위반 등의 문제는 수학계 내부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내가 이 사건이 불거진 뒤 개별적으로 접촉했던 수학자들은 한결같이 경상대 연구팀을 학계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는커녕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다가 일면식도 없는 수학자들에게서 "수학계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냉가슴 앓듯 하는 문제를 용기 있게 밝혀줘 고맙다"는 이메일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니 두어 군데서 교차 검증을 받았더라면 충분히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기자는 출산/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은 지방대 늦깎이 박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학문적 성과, 그런데도 교수 임용에서 번번이 탈락 등 대중이 공감할 요소를 두루 갖춘 스토리에 욕심이 나서 검증을 게을리했던 것이 아닐까?


기사는 조 박사의 나이도 45세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주민등록 정보와 연동되는 한국연구자정보(KRI)에는 조 박사가 76년생으로 돼 있으며, 조 박사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76년생으로 돼 있다. 더구나 2년 전 <중앙일보> 기사(https://news.joins.com/article/20625079)에도 조 박사는 당시 40세로 나온다. '늦깎이 박사'라는 설명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나이를 세 살 더 많게 적은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기사 검증에 소홀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무리 주의하더라도 기자는 때로 오보를 낼 수 있다. 최준호 기사는 저 스토리가 진실이라고 확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박을 당했고, 그것이 "어설프고 잘못된 팩트"에 기반한다고 생각한다면, 본인이 다시 확인해보고 팩트를 제시하면서 재반박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런데 대뜸 내게 '감방'과 '사이버 명예 훼손'을 운운하며 협박하다니! 나뿐만이 아니고 내 주장에 동조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 불특정 다수까지 포함해서. 게다가 자신은 막강한 지면을 갖고 있고 나는 페이스북 담벼락이 전부인데.



게다가 그 협박에는 팩트가 아니라 한국연구재단과 대한수학회장의 권위가 동원된다.


최준호 기자가 '한국연구재단의 반박자료'라면서 공개한 자료는 사실 나한테 무척 고마운 자료다. 그게 아니었으면 경상대 연구팀의 논문들(편수가 좀 많은가?)을 다 뒤져야 할 뻔했는데, 검증할 것을 특정해줬으니 말이다. 단시간 내에 그들의 수법을 파헤치는데 큰 도움이 된 자료다. 최준호 기자는 그걸 어떻게 '반박자료'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한편, 한국연구재단에서도 "우리는 최준호 기자와 뜻을 함께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놓은 자료도 반박자료가 아니었다"라고 내게 밝혀왔다.


그리고 "대한수학회장이신 이향숙 교수님도 뜻을 같이 하십니다"는 대목에 대해서 이 교수는 이렇게 해명했다.




이 부조리극의 하이라이트는 내 주장이 호응을 얻어가자 최준호 기자가 오히려 조 박사 뒤로 숨는 장면이었다. 그가 "중3 딸이 페북의 글을 보며 울고 있다고 합니다. 포스팅을 주저하던 조 박사는 딸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라고 한 대목은 차마 눈뜨고 봐주기가 힘들었다.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하기는커녕 심지어 조 박사의 해명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 그의 '중3 딸'까지도 방패막이로 삼다니...


저널리즘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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