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ess 인간들에게 결말은 사치다. 영화 브런치무비패스
러브리스 Loveless , 2017 제작
러시아 외 | 드라마 | 2019.04.18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127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러브리스>의 시작과 끝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지만, 폭력적인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아기를 품은 채, 그와 결혼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장의 조건에 부합한 남편은 회사 취직에 성공한다. 아내와 자식이 있기에 남자는 자신도 상사의 말처럼 '좋은 가정을 꾸렸다' 확신한다.
그러나 두 남녀는 서로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부부관계는 쉽게 금이 가기 시작하고, 아이는 홀로 깨닫는다.
자신은 이제 그 어떤 곳에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리스(아빠)와 제냐(엄마)에겐 사랑이 없다.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이미 영화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Loveless는 '사랑이 없는', '냉담한'을 뜻한다. 동시에 '사랑을 못 받는'도 내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아이가 12살이 될 때까지도 서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거부함으로써 서로를 증오할 이유만을 꾸준히 쌓아왔다. 뒤탈 없이 완벽하게 헤어지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딱 하나, 자식이 걸린다.
사랑받지 못한 인물들
제냐는 알리오샤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거칠게 밀며 말한다.
"열두 살이 예의가 없어요. 뭐가 될는지, 징징대기만 하고-"라고.
그리고 제냐의 엄마는 아들을 찾으러 온 딸에게 더한 언어폭력을 감행한다.
"널 넣은 게 실수야! 창녀 같잖아! 엄마라고 부르지 마, 젖 주랴? 당장 꺼져!"라고.
제냐의 삶에 사랑은 처음부터 부재했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 사랑하는 법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세습되는 것이다.
그녀는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다. 즉 어떻게 사랑하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를 제냐는 얄리오샤에게 알려줄 수 없다. 그게 당연하다. 제냐의 일상이 거친 욕과 폭력적인 손짓으로 가득 채워진 것 역시 우린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린 배움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고,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그래서 제냐는 안톤의 품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안긴다.
사랑의 부재를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보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 삶은 '반복'이다. 그가 할 줄 아는 건 제냐와 같이 남 탓하는 것뿐이다. 새로운 연인에게 끊임없이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또 다른 '좋은 가정'을 얻기 위한 방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보리스는 회사 몰래 이혼하고 재혼하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바보 같은 믿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러브리스>의 계절은 오직 냉혹한 겨울뿐이다.
스스로 배움의 의지를 상실한 남자에게 과연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수 있을까. 보리스는 분명 똑같은 행위로 세상에 맞설 것이다. 아이를 요람에 내던지면서, "당신이 엄마잖아."라고 하겠지.
임신한 마샤는 섹스 후에도 보리스가 자신을 떠날 거란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고, 안톤은 화상통화로만 자신의 안부를 묻는 딸에게 그 이상의 사랑을 요구할 수 없어 씁쓸함을 느낀다.
결국 그들 역시 사랑받기 위해 사랑에 목마른 척한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 채, 혹한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남은 건 분노와 쾌락뿐인데도 다른 이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며 자위하면서.
그리하여 <러브리스>에는 죄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감독은 끊임없이 라디오와 뉴스를 통해 러시아의 공허한 시대상황을 노출한다. 경찰보다 자원봉사단체가 더 전문적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물론이고, sns에 중독되어 자신의 감정을 박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끊임없이 서로를 탐하는 남녀의 몸뚱이에 스민 어둠으로 그들이 '사랑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한다. 아들의 실종에 결론이 반드시 필요하냐고.
단 하나의 사건, 진실이 궁금하지 않은 결말
<러브리스>는 이미 산산조각 난 가정에 난데없이 아이의 가출사건을 삽입한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 당신이 엄마잖아."와 "열두 살이면 아빠가 필요하지, 물론 당신 같은 아빠는 아니겠지만!"이 충돌할 때 알리오샤는 어둠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입을 뜰어막는다.
동시에 창문 밖에는 진눈깨비가 휘몰아치고, 그 눈발은 아이가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더 거세게 불어온다. 그 덕에 관객은 알리오샤의 마음을 매몰차게 때리는 겨울바람의 발원지를 너무나도 쉽게 알아차린다. 적어도 숲은 아니라는 것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오묘한 회색 눈을 가진 알리오샤가 <러브리스>의 거대한 핵이자 부부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동시에 영화가 갖고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다.
메인 사건을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장치와 작은 사건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감독은 과감히 아들의 실종만을 다룬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중요한 사건을 수단과 계기로만 사용한다. 요점은 알리오샤의 부재가 부부에게 어떤 기능을 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는 감독의 자신감은 작품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이가 살아있을까?'란 유일한 긴장감은 제냐와 보리스의 완벽한 사랑을 향한 집착과 뒤섞이면서 <러브리스>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관객에게 제공된다. 그것도 아주 역겨운 감정과 함께.
물론 시작부터 이미 끝을 봤기 때문에 이야기 중간중간 지루함이 묻어나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끝에 다다를수록 날카로운 바늘로 관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다.
동시에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신원불명의 시체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절망하던 두 남녀의 모습에서 전혀 사랑이 느껴지지 않기에, <러브리스>엔 끝이 필요 없다.
Loveless 인간들에게 결말은 사치다.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피아노 건반 소리.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겨울 숲의 냉혹한 한기.
죽은 나무를 가득 덮은 눈과 암흑을 품은 강.
알리오샤가 나무에 던져놓은 빨간 접근금지용 띠.
그리고 숨죽인 아이.
<러브리스>가 내논 진실은 이것들 뿐이다.
PS. 브런치무비패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