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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Apr 01. 2019

날 만나러 오는 너에게

시린 날들을 지나




잘 살고 있다고 네 스스로 다독이던 인생을 누군가 말 한마디로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인생의 반환점들을 쉽게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너 혼자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 같을 때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퇴근의 홀가분함보다 다음날 출근할 걱정이 너를 짓누를 때 

혼자 먹을 밥을 만들다 먹기도 전에 지칠 때 나를 떠올려줘

잠들기 직전 너를 담고 있는 방이 서늘하고 한 없이 공허하게 느껴져 발끝이 차가울 때 

한 시간도 채 잠들지 못하고 캄캄한 어둠 속 울멍진 감정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볼 때

출장을 다녀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도 길게 느껴져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것만 같을 때 

긴 여행을 마치고 네가 정신없이 어지러 둔 채 그대로 온기 하나 없는 너의 방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날 일이 두렵고 가슴이 시릴 만큼 불안하다면 나를 기억해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잘 살고 있는 척 허세 부렸던 네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자꾸만 초라해져 네 뒤의 그림자조차도 보잘것없어 보인다면

누구 하고라도 전화하고 싶어 통화 목록을 찾아보다 그저 덮어 버렸다면 나를 떠올려줘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려다 뭐라고 보내야 할지 몰라 한참 들여다보다 검은 액정 속의 너를 볼 때 

이대로 사는 건 너무 초라하고 저 길로 가보려 하니 무섭게 느껴져 어느 쪽으로도 발 내딛기가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이 네가 한 말들을 쉽게 잊고 너의 얘기를 쉽게 할 때

어머니와 통화하는 동안 안 쪽 입술을 꾹 물고 있다가 끊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을 때 

그때 나를 기억해줘 

네 등에 가만히 손을 대고 너를 지지하고 있는 나를     



나는 지금 당장 너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없고 너를 안아 줄 수 없지만 

네가 어떤 마음이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건 너를 지지하고 있어.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너를 바라볼 거야. 때때로 너는 나를 잊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지키고 있어.

그러니 찬란하고 좋은 날에는 나를 떠올리거나 찾지 않아도 된다. 

미치도록 바람 부는 날 도로에서 이리저리 날리는 검은 비닐봉지와 낙엽 같다고 느껴지는 날, 

그런 날 내가 네 뒤에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  


네가 나를 떠올리며 씩씩하게 살고 있으면 어떤 날 내가 네 옆에 웃으며 서 있을 거야. 아직 너는 모르겠지만. 

네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서 꼭 안아 줄 거야. 네 차가운 두 손을 맞잡고 따뜻하게 해 줄 거야. 

환한 내 집으로 가서 언 몸이 녹을 수 있게 향긋한 차를 줄 거야. 우리 같이 밥을 지어먹으며 너의 지난 얘기를 듣고 안아 줄 거야. 수고 많았다고 말해줄 거야. 수고한 손과 발을 따뜻한 이불속에 쏘옥 넣어줄 거야. 지친 몸을 편안하게 눕게 해 줄 거야. 잠이 솔솔 오는 향을 피우고 예쁜 조명을 켜 줄게. 쉬이 잠 못 들던 네 이마를 만져 줄 거야. 깊고 깊은 잠을 자도록 지켜봐 줄게. 따뜻한 햇살 아래서 실컷 늦잠을 자고 같이 일어날 거야. 


지금은 너는 나를 볼 수 없겠지만 나는 너를 보고 있어.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를 지나 우리는 곧 함께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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