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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이 Apr 16. 2019

네 개의 이별과 두 개의 위로

숨어 있는 시간들을 보다




그 해 나는 좀 특이한 타이밍에 놓여 있었다.

 

2월 어떤 남자와 소개팅을 했고 1달가량 만났는데 결국 연락이 흐지부지 되며 끊어졌다. 잘해 보고 싶은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같이 있을 때가 아니면 지독하게 방어적인 행동으로 범벅된 습관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못난 습관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또 잘 알고 있어서 계속 자책했고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에게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친구는 짧다고 하면 짧은 5-6개월 정도 연애를 했다. 밤새 조금 더 만나보자고 매달리고 붙잡아도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듣고 있는데 며칠 전 괜히 집에 있기 싫어 혼자 카페에 앉아 손톱을 뜯고 있던,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그의 문자를 받고 신호를 건너지 못하고 서 있던 내 속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가 그 직전 그런 일이 없었다면 쉽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금방 지나갈 거라고.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1달 동안 얼마나 속이 뜨거웠다 시렸는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몇 번 보지도 못한 남자 때문에도 그랬는데 두 계절을 같이 보낸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속 시린 소리를 듣고 또 밤새 울며 매달렸다는 그 속을 감히 내가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더 울라고 했다. 진상도 좀 부리라고 했다. 또 실컷 우울해하고 술도 마시라고 단, 혼자 말고 나를 부르든 누구를 불러서 그러라고. 그래서 우리는 허튼짓을 할까 술은 마시지 못하고 퇴근하고 툭하면 둘 자취방 중간 지점의 카페에 앉아 있었고 평소 같으면 시체처럼 잤을 주말 낮에는 죽도록 아무 곳이나 걸어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5월 즈음 나는 다른 어떤 남자와 연애를 했고 3개월가량의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며칠 좀 울었다. 일기를 쓰다가도 그림을 그리다가 집에 오다가 친구를 만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리고 밥을 먹다가. 울음이 잦아들 때쯤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7년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7년을 만난만큼 헤어지는 것도 오래 걸려서 몇 달째 헤어진 것도 만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가 결국 완전히 마침표를 찍던 날. 몇 달간의 애매한 관계를 다시 회복해 보려고 남자 친구가 사는 지역 근처로 이사한, 계약 기간이 한참 남은 방에서 실감이 나지 않아 그저 멍하니 모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몇 개월 동안의 마음고생을 얘기하려니 세 번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하고 원망을 하고 술을 마셨다. 그래도 취하지 않아서 더 마땅하지가 않았다. 긴 시간 이어지던 친구의 이야기에는 혼자 있던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와 어떠했는지 그때 그 순간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그런 것들밖에 없었다. 밤을 새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내 방으로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 길 내내 조용조용 그의 입장을 이야기하던 친구는 큰 소리로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욕을 했다. 


마찬가지로 아마도 내가 그 직전 헤어짐이 없었다면 이번에도 역시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고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 직전에 고작 몇 개월 만난 인연으로도 얼마나 울었는지 혼자인 틈새마다 운 시간들을 겪었기 때문에 다 체념한 듯 말하는 그 눈 뒤의 장면들을 알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줄 알았다가 잠에서 깨어 꿈이라는 걸 알고 울었을 것이고 대충 밥을 차려 먹다가 잘 챙겨 먹으라는 그의 말이 생각나 울었을 것이고 또오해영을 보다가 밥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고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해영도 밥을 먹을 때마다 상처에 목이 막혀 밥 먹기 힘들었겠구나 생각했을 것이고 퇴근시간 맞춰서 해주던 전화가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울었을 것이고 집 냉장고에 그가 좋아해 사둔 미쳐 다 먹지 못한 만두를 보고 울었을 것이고 함께 와 있기를 꿈꿨던 미래의 지점에 혼자 서 있다는 사실에 울었을 것이고 다음 돌아오는 계절에 하자 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졌음에 돌아온 계절에 울었을 것이고 주말이면 집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던 그 자리가 비어 있어 울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겨우 견디고 지나서 입을 떼고 말을 해도 울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 전화를 걸었을 친구에게 달리 해 줄 말은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그것밖에 없었다. 그저 시간이 어서어서 지나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시원해 창문을 다 열고 공기가 푸르스름해지는 새벽하늘을 보며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이런 이별은 더 이상 하지 않을 만큼 산 줄 알았는데 내가 아직 어린가 보다 또 누구를 만나고 알아가고 시간을 쌓을 일이 두렵다고 말하는 친구 앞에서 말 사이에 숨어있는 말하지 못했을 장면을 보게 해 준 묘한 타이밍이 다행이었지만 이제 이런 다행은 필요 없으니 더 이상 우리 모두 혼자 울 일 없었으면, 웅크려 누워 속 시릴 일이나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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