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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델루나 Jan 08. 2016

공주필지-1

(공동체 주거를 위해 필요한 지식)

우리는 왜 같이 살아야 하는가? -1


2~30대로서 한국에서 산다는 것


한국에서 사는 2~30대를 일컬어 요즘 'N포세대'라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
그에 더해 '내집'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5포세대 그리고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세대를 '7포세대'라고 한다. 즉 N이라는 것은 포기할 숫자를 대입할 수 있는 방정식의 X같은 존재이다.


경제가 흔들리고 복지가 빈약한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각개전투'를 해야 한다. 즉 각자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의 인상률에 비해, 집값의 인상 속도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 거품이 끝나더라도 가격이 내려가긴 하겠지만, 우리 세대가 집을 살 수 있을 만큼은 아니다.


요즘 어른들은 우리 세대를 보며 '포기가 빠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그 시절'이 주던 '혜택'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그것을 포함해서 '고생'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를 보며 자신들이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물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만 주구 장장하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배는 고팠을지언정, '기회'가 고프지는 않았다. 모두가 어려웠고 그렇지만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공급과 수요가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이미 부의 재분배는 이루어졌고, 계층화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심화로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자본이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다. 즉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노동자로서 시작한 사람은 자본가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며, 이미 가지고 있는 기득권들이 투자와 주식을 통해 벌어들이는 자본의 양을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하니 요즘 흙 수저라는 계급론이 등장하고 헬조선이라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고 슬프다는 말 지금 한국 사회의 단면을 바라보면 그 '웃프다'는 단어를 자연적으로 쓰게 된다. 예전 적어도 노동을 통해 혹은 학력의 향상을 통해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자본가의 세상에서 노동자란 그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도구'일 뿐이고 고학력자란 자기들에게 좀 '더'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학력을 추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예전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내가 무언가 해보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한 회사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나만 하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들어가기도 힘든 회사를 또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니 안 잘리기 위해 상사 혹은 회사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어야 하며, 또 잘릴 경우를 대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며 이리저리 알아보는 이중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한국은 비정규직이라는 자본가들에게는 너무나 '편한'그리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 임금만 지불하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 이것은 자본가들에게는 얼마나 꿀같은 장치일까? 내가 사장이라도 이 제도를 어떻게든 활용할 것이다. 내가 지금 노동자의 포지션이기에 불공평하다고 하겠지만, 위치가 바뀌면 풍경도 바뀌는 법이다. 누구나 일상에서도 그렇게들 하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싼 마트를 가고, 동네 상권을 이용 안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우리가 '살기'위해 한다고 하겠지만, 자본가들 역시 자신들이 '살기'위해 그렇게 한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제도'이다. 흔히 하는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법이 없다고 했을 때 누가 얼마나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자기의 본성이 통제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짓밟히고 나서도 그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개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에 맞기기에는 이 사회는 너무 커졌고 또 무감각해졌다.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다. 난 지방에서 4년제 건축공학과를 나와서 서울에서 3년간 실무를 하고 뉴욕에 유학을 갔다 2년 반전에 돌아왔다. 지방에 있을 때는 서울에서 건축을 제대로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을 잘하기보단 수주를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수주를 잘 할 수 있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유학을 택했다. 그러나 돌아와서 보니 이미 나 같은 재원은 널리고 널렸으며, 일감은 점점 줄어들고, 심지어 지방은 10년 전이나 변한 게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박탈 당했다. 나이는 이제 40대를 향해 가지만, 공부하니라 내 수중에는 한 푼도 없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전셋값도 마련하긴 힘든 상황이고, 또 결혼한다고 한들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있을 자신조차 없다. 심지어 내 생활의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 부모님하고 같이 살고 있다. 이게 나만 해당하는 사항일까? 서울에서 직장생활할 때도 한 달 집세와 생활비를 쓰고 나면 저축할 돈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 거기에 뉴욕에서의 생활은 드라마처럼 아름답지도 럭셔리 하지도 않았다. 정말 최소한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생활이 계속된다면 이러한 미래에 어떤 비전이 있을까? 일상의 평온함이 보장되지 않는데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거창한 건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 우리의 불안을 덜어줄 '나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외롭기는 싫어하지만 혼자이길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하며, 그런 공간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함께' 도모할 수는 없을까? 자신만의 '최소한의 공간과 '공유 공간'을 통해 방해받지 않지만, 외롭지 않는 삶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공간을 '같이'만들어 갈 사람들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하는 경제적인 이유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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