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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09. 2019

남쪽으로 튀어!


(아래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1, 2권으로 구성된 소설의 표지에 한 남자가 독자를 째려보고 있다.

붉은 끼가 맴도는 곱슬머리, 수염이 거뭇거뭇 완강한 사각턱.  산적두목처럼 시커먼 눈썹. 한마디로 고약한 인상의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은 우에하라 이치로(上原一郞). 일본 학생운동의 전설적 투사였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에서 팬텀 제트기를 불태웠고 운동을 은퇴한지 오래인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공안경찰들에게 경외의 시선을 받는다.

제 3자 서술시점의 또다른 주인공 이름은 우에하라 지로(上原二郞), 그의 아들이다. 보통 일본에서 이치로, 지로라 하면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이름이다.

작가는 어쩌자고 부자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을까? 아들 속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은 어쩌면 형제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뜻일까.

소설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하지만 중학생 악당인 가쓰와 한 판 붙을 때 보면,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아버지는 도쿄를 떠나 이주한 이리오모테 섬에서 악덕개발업자의 불도저에 대항하여 각목을 "멋지게" 휘두른다. 아들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는 가쓰에게 확인사살 스타일의 "모진" 발차기를 먹인다.

원래 제목 <Southbound>를 "남쪽으로 튀어!"라고 번역한 것은 엉터리인 것 같은데, 또 어찌보면 절묘하다. 보다시피 제목이 주는 인상은 경쾌하다. 하지만 소설 주제가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소설에서 묘사하듯이 어깨 붙안는 낭만적 투쟁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버린 <세상>. 조직적 저항을 통해 괴물을 퇴치시킬 수 있다고 믿는 신념 자체가 일종의 순진한 바보로 취급되고 있는 오늘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에서나)

그런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주인공 우헤라하 이치로는 세상을 향해 줄기차게 부딪히기만 한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너는 아버지를 따라 할 것은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나는 이치로의 이 말들이 세상에 대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믿음임과 동시에 우리네 인생살이에 대한 고해성사로 받아들여졌다.

어쩌고저쩌고 복잡한 이야기할 것 없이 이 소설의 미덕은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자꾸자꾸 페이지 넘기고 싶은 재미와 박진감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뭣보다 공감이 가는 것은, 전직 과격운동권이란 낡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이 살아볼만한하다는 뭉근한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센 낙관주의라고 할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슬그머니 화가 났다. 옛날에는 일본 소설이라면 "몽환적 사소설(私小說) 나부랭이"라고 비웃었기 때문에. 당대 한국소설의 현 주소야말로 세계 최고봉이라 으쓱댔기 때문에.(지가 쓴 것도 아니면서 왠 으쓱?)

하지만 오늘날 우리 소설의 모습이 어떤가. 서점을 한번 방문해보시라. 이 일본소설의 최소한 미덕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탁월한 한국소설"들이 얼마나 흘러넘치는가 이 말이다.

몇년 전 박민규인가 카피라이터 출신 소설가가 뜨고 있다는 말에 그이의 작품 거의 전부를 읽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입맛이 썼다. 뿌리로부터 솟아나는 힘이 없었다. 작품 속에 개인적, 사회적인 희망의 제시가 일말의 수준으로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이 다 사라진 쓸쓸한 터 위에 말초적인 언어유희와 서투른 장난끼만이 가득했다. 황성옛터에 밤이 오면 달빛이라도 쓸쓸한 맛이 있지, 도대체 이게 뭡니까? 싶었던 것이다.


쟝르 소설은 어떤가. <종의 기원>을 비롯한 추리소설가 장유정의 작품을 여럿 읽었다. 미미 여사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소설을 (표면적으로는) 닮았다. 하지만 세상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무엇보다 인간의 심연에 대한 응시에 있어 아직 깊이가 얕다.

이런 말 하면 여러 사람한테 욕 먹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별로 기대 안하고 집어든 <남쪽으로 튀어!>가 내가 최근 몇 년 간 읽은 50권 이상의 소설 가운데 가장 괜찮은 작품이었음을 고백한다.

책을 내려놓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굳세고 튼튼하고 날렵하며 매력적이고 섹쉬하기까지 하던 한국 소설들은 다 어디로 갔나?이러다가는 미친 척 하고 내가 작품을 쓰겠다고 덤벼드는 비극이 생기는 거 아냐?...
(물론 엄청난 농담이다^^)

추신) 2013년 2월에 개봉한, 김윤석과 오연수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상황에 맞추느라 시나리오 작가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완성도나 충족감에 있어 오쿠다 히데오 원작의 반에 반도 못 미친 듯 했다. 입맛이 더욱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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