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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16. 2020

성형광고의 사회심리학

19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평균적 미국인들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목욕을 했다 합니다. 당연히 몸냄새에 둔감했고, 구취나 체취는 사회적 무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인들은 비누, 샴푸, 암내제거제, 향수 같은 청결용품 1인당 소비에서 압도적 세계 1위를 기록 중입니다. 광고학자 트위첼이 “자연스러운 체취를 바꾸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1년에 40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고 비꼴 정도입니다.


왜 이런 극적 변화가 일어난 걸까요? 바로 1920년대부터 시작된 청결용품 광고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거품경제가 꽃을 피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같은 졸부(猝富)도 많이 태어났지만 사회적 패자도 그만큼 많이 생겨났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상화된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준다는 것은 곧 루저(loser)가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혹시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이 자꾸 생겨나는 거지요.


청결용품 광고는 그같은 대중의 강박증을 교묘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이후 90년동안 막대한 상품을 팔아치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청결용품에 대한 집착을 미국인들의 문화적 습관으로 뿌리내려버린 것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구요? 우리나라에서 고착화된 성형열풍을 되짚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서울 압구정동에 밀집한 성형외과에 상담 예약이 힘들 정도로 환자가 몰린다는 사실 아시는지요. 성인여성 5명 중 1명 꼴로 성형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성형열풍이 어디서 발원(發源)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각박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람들이 과도한 외모 집착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하루아침에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성형은 쉽습니다. 마취했다 깨어나는 짧은 순간에 끝납니다. 외모를 대중적 기준에 맞춤으로써 열등감을 완화시켜줍니다. 사회적 관계 탈락의 불안을 치유해주는 거지요. 이것이 성형의 마술이요, 성형의 사회심리학인 것입니다.


인기연예인의 성형 전(before) 후(after) 비교 사진이 발에 차일 정도로 인터넷에 널려있습니다. 심지어 공개석상에서 당당하게 성형을 고백하는 것이 자존감의 상징이라 박수를 받을 지경입니다. 성형열풍이 외모에 민감한 10대 후반, 20대를 넘어 전 사회계층으로 광범위하게 확산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미국인의 청결벽(癖)처럼, 이제 성형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적 습관으로 굳어져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광고는 세상을 되비추는 거울, 이런 흐름을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게 핵심적 영향 미치는 인터넷은 과장 성형광고의 천국이라 할 만 합니다. 법률개정을 통해 모든 의료광고가 허위과장 여부 심의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인터넷 배너광고에 대해서는 예외조치를 취한 원인이 큽니다.


성형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수요가 성형광고를 부추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형광고가 성형열풍을 불러온 진원지인 걸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만큼 답변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의 내면보다 겉모습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겁니다.


심지어 인위적 성형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달성하려는 사회는 어딘가 단단히 탈이 나 있다는 겁니다. 그런 흐름의 선두에 광고가 서 있다는 것이, 광고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제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사진은 1960년대의 성형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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