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ny Nov 25. 2017

뉴욕에서 만난 소프라노 조수미

2017/01/30

“Hi Sumi! I’m so sorry….”

그는 조수미를 보자마자 대뜸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납작 엎드려 절이라도 할 판국이었다.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지휘자 롱유(Long Yu)였다. 그는 중국 출신으로 현재 세계 무대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이는 지휘자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중국의 카라얀’으로 칭송할 만큼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안부 인사도 건너뛰고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했다. 


롱유는 격앙된 목소리로 중국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건우에 이어 조수미도 중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2년 전에 이미 예정된 투어가 물거품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2월 19일 광저우, 23일 북경, 26일 상해 공연 예정이었다. 그녀의 매니지먼트는 연주 날짜가 다가오면서 자초지종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느 시기가 되자 연락이 잘 안 되었더니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고 했다. 롱유는 옆에서 듣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조수미에게 중국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대해 미안함을 전하며 본인이 중국에 돌아가는 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는 한참을 이어졌고 조수미가 연주곡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화제를 돌리자 그제야 롱유도 악보를 펼치며 리허설을 시작했다. 



1월 말 미국을 찾은 그녀는 뉴욕필하모닉 시즌 정기 공연의 초청을 받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인연이 닿지 않았던 뉴욕필하모닉과의 첫 호흡이었다. 지휘를 맡은 롱유와는 여러 차례 중국에서의 연주를 함께 했던 편한 지휘자였다. 뉴욕필하모닉과는 모두 다섯 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오케스트라와의 첫 리허설부터 단원들의 큰 갈채를 받았다. ‘절정의 기량’이라는 표현이 좀 진부할 수 있겠으나 무대에 선 조수미를 설명할 더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단원들은 연주자인지 관객인지 한 곡 한 곡 리허설을 할 때마다 그녀의 연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밝게 웃으며 동료 연주자들과 감탄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링컨센터의 데이비드 게펜홀은 연주하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휘자는 밸런스를 맞추는데 꽤나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조수미는 홀의 구석구석마다 소리가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요구했다. 새로운 홀을 찾을 때마다 늘 하는 일이다. 객석이 비어있는 홀에서 리허설을 하지만,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소리가 어떻게 전달이 될지까지 미리 염두를 해둬야 실제로 무대에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당혹스러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리허설을 마친 후 조수미와 마주 앉았다. 좀 진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여전히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연주를 위한 여행과 리허설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었을 텐데, ‘인간 조수미’의 인생의 화두가 궁금하다.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더니) 요즘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순간의 소중함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중요할 수 있는 그 순간에 나는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리던 순간도, 나를 끔찍하게 사랑해줬던 반려견 3마리와 고양이도 한 번 안아주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그래서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의 건강을 더욱 걱정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 나를 도와주셨던 니나 할머니도 이제 83세가 되셨는데 지금은 거동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불편하신 상황이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120살쯤 된 강아지 신디야말로 하루에 여섯 번 약을 먹어야 하고 시력도 잃었다. 사람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할 만큼 건강이 나쁘다. 그들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절감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소중한 존재들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을 직접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슬픔을 객관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일 그 현장에 있었더라만 내가 감당했을 고통의 크기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궤변일 수도 있지만 하늘이 도와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최근 중국 공연 취소된 것이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까지 대서특필되었다. 원인은 최근 국내 정치적 여건 때문으로 짐작이 되는데, 당사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예술인들도 예정되었던 중국 일정이 모두 취소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실 한국을 오랫동안 떠나 있기도 하고, 워낙에 연주 여행이 많은 터라 고국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 단적으로 중국 연주가 취소된 것만 보더라도,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이 투어를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경우 예술은 정치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는 한 명의 예술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예술가가 애쓸 부분이 있는 것이다. 롱유를 통해서 중국 문화예술계의 저항이 맹렬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 윗선이 이 긴장을 언제쯤 풀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근 활동을 보면 그야말로 광폭행보이다. 영화 ‘유스’에 출연한 것도 큰 화제였다. 극 중 ‘조수미’의 역할로 등장했는데 수많은 소프라노들 가운데 왜 하필 ‘조수미’였을지가 궁금하다. 

대본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내 노래를 즐겨 듣는 팬이라고 했다. 워낙에 소렌티노 감독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가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등에서 수상했던 경력이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유스’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쁨이 컸다.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소렌티노 감독이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확신과 함께 안도감이 들었고, 실제로 내가 출연하는 부분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영화감독을 제외하고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 촬영 환경은 어땠나?

서로 마찬가지다. 나 역시 영화 촬영이 처음이었으니까. 오페라 가수가 영화에 출연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웃음) 내겐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고 재미있게 촬영을 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테이크를 끊어서 촬영한 건 아니었고, 최대한 실제 공연의 느낌을 살리는 쪽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작곡가이자 지휘자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케인은 실제로는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나를 알 턱이 없었다.(웃음) 내가 출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지휘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두 명의 지휘자에게 4주 동안 지휘를 배웠다고 했다. 내게도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가요 앨범 ‘그리다’를 출반 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수미스러운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화 촬영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늘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음악가들과의 호흡이 새로웠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수미가 가요 음반을 낸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기대감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측면에서 내게는 분명 큰 도전이었다.


세대를 아우르는 곡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1983년에 한국을 떠났는데, 그때는 방송을 통해 한국 음악을 접할 방법도 없었고 그야말로 문화적인 단절 속에 지냈다. 그러다 보니 세대를 풍미했던 한국 가요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요즘이야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의 트렌드를 접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 나는 유행을 모르고 산지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 셈이다. 앨범 작업의 첫 시작은 피디에게 200곡을 전달받는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직접 듣고 일곱 곡을 골랐다. 편곡과 연주 그리고 피처링으로 도움을 준 가수분들과의 작업을 통해 앨범이 목표로 했던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성하게 빚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출연에 가요 음반까지 냈는데 다음은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나? 

스페인과 러시아곡들 가운데 보석과 같은 작품들이 많다. 일단은 이런 곡들을 모아서 앨범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창작곡에 대한 마음이 생겨서 발표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바리톤 토마스 햄슨이 브람스의 마지막 가곡인 ‘Vier ernste Gesänge’(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현악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서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와 함께 투어를 했다. 마티아스 괴르넨도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슈베르트의 가곡을 자주 연주한다. 장르를 살짝 바꿔 원곡을 장점을 더 끌어낼 수 있을만한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지금까지 맡지 않았던 오페라의 역할에 대한 도전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

카라얀이 노르마를 제안했을 때 거절했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얀은 내가 ‘밤의 여왕’ 역할에 너무 집중하지 않도록 조언했던 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목이 혹사되기 쉬운 곡이기 때문이다. 가끔 노르마에 나오는 아리아를 부르긴 하지만 다시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역을 맡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이번 뉴욕필하모닉 연주에서 부르는 ‘Signor, ascolta!’도 처음으로 준비한 곡이다. 워낙에 류의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콘서트 형식의 무대에서는 못해본 역할의 곡들을 불러보긴 하지만, 역을 맡아서 정식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무거운 역을 자꾸 하다 보면 성대에 무리가 가고, 결국 내가 가진 소리를 잃어버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연주 일정을 소개해달라.

프라하에서는 말러 4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Die Frau ohne Schatten를 무대에 올린다. 게오르그 솔티가 이끈 빈필하모닉과 함께 했던 데카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었던 작품이라 더 의미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연주가 있고 마닐라에서 자선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마리아 칼라스에 헌정하는 데뷔 30주년 기념 투어가 이어진다. 6월에는 영국 웨일즈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BBC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학생 시기에 음반으로 만났던 거장들과 함께 심사를 하게 되어 기쁘다. 8월에는 몬트리올 심포니와 켄트 나가노 지휘로 포레의 레퀴엠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연주할 예정인데, 특별히 켄트 나가노와는 음반 작업도 많이 했고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서 함께 연주해온 절친이라 더 기대가 된다. 그리고 9월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야외극장에서 공연이 있다. 오랜 동료인 안드레아 보첼리, 그리고 셀린 디옹과 엘튼 존이 함께 꾸미는 무대이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고 콜롯세움이라는 무대가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많이 기다려지는 연주이다.  


해외 연주가 끊임없이 있는데 한국에서의 일정은 없는가?

오는 5월에는 국제무대 30주년 기념 공연 중 일정상의 문제로 작년에 하지 못했던 지방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9월 2일에는 서울에서 파크콘서트가 ‘파리’를 콘셉트로 예정되어 있다. 파리의 4계절을 잘 그려내서 한국의 관객들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다. 사실 맡겨진 모든 연주가 소중하고, 이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공연은 좀 더 특별하다. 한국을 떠나 있는 한국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긴장감 같은 것이다. 제일 손도 많이 가고 신경이 더 쓰인다. 외국 무대가 친구를 대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면, 고국의 무대는 가족들을 모시는 기분이다. 가족은 누구보다 가장 특별한 존재들 아닌가? 한국의 관객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들이다. 그래서 더 세세하고 꼼꼼하게 연주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의 그녀가 막 하산을 명 받은 초절기교를 완벽하게 익힌 젊은 무사였다면, 50대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오늘날의 조수미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운데 아직까지 조수미만큼 종횡무진하는 가수가 누가 있을지를 물었다. 안 그래도 오랜 절친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단다. 어쩌다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으로 무대를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본인들도 기막혀했더란다. 진부한 표현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절정의 기량’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쏟은 열정만큼의 노력을 기울인 다른 수많은 음악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늘이 빛나고, 내일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녀의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밤의 여왕’만 계속 불렀다면 지금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겠지만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맞다고 믿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새롭게 계획하고 도전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얻는다. 내 예술세계는 그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마침 한국인 관광객 일행이 그녀를 알아보고 말았다. 그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줬다. 그리고 돌아가며 사진 촬영까지... 어제 뉴욕에 도착해 오전 몇 시간을 미팅과 리허설에 쓰고 시차에 한참 피로가 몰려올 시간일 텐데... 그녀는 하루 저녁의 연주를 위해 로마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2박 3일이라는 빡빡한 일정을 마쳤다. 그리고 그날 밤 홍콩필하모닉과의 연주가 있다며 서둘러 JKF공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2017/01/30


매거진의 이전글 코플랜드 하우스에서 만난 김택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