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유시민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접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지금 바로 읽고 싶다’였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넣거나 그것도 기다리기 어려우면 서점에 들러 당장 책을 사버렸겠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더 정확하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서고 검색창에 ‘ㅇ’부터 시작해서 ‘ㅏ’로 끝나는 책 제목을 넣고 검색을 기다리는 순간 설레기까지 했다. ‘누가 빌려 갔으려나.’ ‘오늘 바로 빌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잠시 후, 모니터 화면에는 [대출 가능]이라는 상태 표시창이 떴다.
도서관 십진분류법을 따라 부리나케 책장 사이를 헤맸다. 그 사이에 누가 빌려갈까 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800번대의 책장에서 ‘유’와 ‘윤’ 사이를 여러 번 오고 갔지만 그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도서를 검색했고 여전히 대출이 가능한 상태였다.
“이 책을 빌리고 싶은데 책장에서 못 찾겠어요.”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사서 선생님은 나와 비슷하게 책장을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다른 분이 도서관 내에서 읽고 계신 것 같아요.”
그 운 좋은 다른 분께 약간의 질투감을 느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한 명 한 명의 책 앞표지를 뒤집어 보고 싶은 바보 같은 욕구가 치밀었지만 애써 정신을 차렸다.
다음날, 여전히 그 책은 [대출 가능] 상태였다. 다시 도서관에 가서 책장 사이를 오고 갔다. 이번에는 ‘요’부터 시작했다. 엉뚱한 이름에 꽂혀 들어가서 못 찾는 걸 수도 있으니까.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타케 신스케를 지나 윤고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유시민은 없었다.
“제가 어제도 이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 책을 못 찾아서 실패했거든요. 다른 분이 읽고 계신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책이 도서관에 없는 것 같은데 희망 도서로 신청할 수 있을까요?”
“이미 도서관에 들어온 책은 희망 도서 신청이 안 돼요. 다시 한번 책을 찾아볼게요. 찾게 되면 연락드릴까요?”
“네, 연락 부탁드려요.”
2주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연락이 왔다. [해당 도서는 파손 등의 문제로 대출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라는 문자였다. 이제 그 책을 검색하면 [대출 가능]이 아니라 [대출 불가]로 바뀌었고 여전히 희망 도서 신청은 불가능했다.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도서관에 새로 신청할 수도 없는 그런 책이 된 것이다. 그 책에 대한 아쉬움이 한 겹 얇은 휴지 조각처럼 옅어질 무렵, 학교에서 책을 사준다고 했다. 얇은 휴지 조각 같던 그 책은 이제 고급스러운 상자 안에 들어간 도톰 3겹 갑 티슈가 되어 내게 왔다.
유시민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건, 마음을 한 스푼 덜어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게서 덜어진 그 한 스푼이 못내 아쉬워서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보려고 애를 썼다. 여전히 남아있는 한가득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마음을 다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니 우리는 마음을 다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리라. 다만 최선을 다해 온 마음을 모으다 보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들까지 섞이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을 다하려다 기대감을 모으게 되고 기대를 다 하려다 실망을 모으게 되고 실망을 문질러보려다 미움을 모으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아야 하는지도. 한 스푼쯤 덜어낼 마음을 거르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있다.
그 책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좋은 책은 기적을 일으킨다. 그걸 읽는 누군가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세상에 좋은 책은 분명 있다. 하지만 좋은 책 보다 더 중요한 건 읽는 ‘나’ 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기적이나 불행을 만들어 내기도 할 테니까, 혹은 아무런 의미 없이 읽히고 잊히기도 할 테니까.
그러니 한 발짝 멀어지는 용기가, ‘나는’ 필요하다.
+ 유시민 작가가 알릴레오 북스에서 소개한 첫 번째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었다.
<청춘의 독서>의 마지막 장 역시 <자유론>이다.
건강한 관계(거리감)에 대한 그의 마음이 반영된 건 아닐까.
( <자유론>의 서문에는 밀이 공동저자로 여긴 아내에 대한 감사가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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