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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잉어 Jan 25. 2021

정신'병원'을 예약했다

2019년 10월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내 안의 그것들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카페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 앞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참아 와서 더욱더 커져버린 알 수 없는 감정 폭탄을 터뜨렸다. 스팀 피처와 미완성된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컵만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나는 백룸으로 도망쳤다.  

    

눈물이 나왔다. 슬퍼서 기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나를 파괴하고 싶고 나를 죽이고 싶고 어서 이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 나는 눈물이었다.      


그때의 내 동료들은 내 모습을 보고 무엇이라 오해하기는커녕, 나를 세상에서 잠시 숨겨주었다. 동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죽고 싶었다. 내가 지금 쭈그려 앉아있는 이 곳에 폭탄이 떨어져서 나를 터뜨려주었으면 했다. 나의 몫을 대신해 바쁘게 돌아가는 카페 일을 대신해주고 있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어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억울했다. 하필 일할 때 숨겨왔던 감정의 지뢰가 터지다니.      


나는 그동안 외면해야 했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이제는 해야 했다. 검색 창에 <00역 정신병원>을 검색했다. 평생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정신과를 검색하는 그 순간의 기분이 묘했다. 그 시간을 빨리 모면하기 위해 나는 목록 가장 위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전화했다.      


“... 예약을 하고 싶습니다. 당장 오늘 가능할까요?”

“아, 그러시군요! 오늘은 예약이 가득 차서... 정말 죄송하지만 00시에 가능할까요?”

“아 아침은 좀 그런데요...”

“내일도 예약이 거의 꽉 차 있어서 아침밖에 안 될 거 같아요. 아니면 주말에...@#$@#$”     


나는 놀랐다. 이 세상에 나만 정신이 이상한 줄 알았는데, 내가 정신과에 전화를 하면 세상이 나를 예의주시 할 특별한 존재가 될 줄 알았는데. 나처럼 정신과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았다니. 안도감 같은 느낌이 듦과 동시에, 정신과에 예약한 사람이 되었다는 현실이 ‘지구라는 이상한 곳에 살아가는 지지리 복도 없는 비련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렇게 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아침 시간에 정신과 진료를 예약했다. 그리고 내 전화소리를 들은 동료가 괜찮냐고 물어오며 한 마디 했다.      


“미용실 예약 잘했어요? 기분 풀고 와요”       


정신과와 미용실. 두 장소의 성격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기분이 이상할 때 가는 곳이라는 ‘뜻밖의 공통점’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울다가 웃다가, 어딘가의 털이 잔뜩 자랐을 거다 아마. 그렇게 웃김과 슬픔과 나 자신에 대한 파괴의 감정을 들고 나는 정신과로 향했다. 


내 썩은 정신의 동앗줄을 붙잡아 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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