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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재 Sep 13. 2024

산이 준 가르침에 대하여

특별할 것 없는 토요일 저녁, 나는 늘 그렇듯 비어 가는 잔고를 채우기 위해 일련의 노동(비슷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월급이라는 것은 잡다하다 못해 하찮은 이유들로 매달 10일 즈음이 되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명목은 소위 월세니, 전기요금이니 하는 공과금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 푼 두 푼 써대는 군것질 값과 지독하게 피워대는 매캐한 연기에 지불하는 목숨값 같은 것이다. 나름 가슴속에 꿈을 새겨 넣고 산다는 나에게, 그 노동은 때로는 매우 고맙기도 하고 매우 밉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토요일은 꽤나 밉고, 역겨웠다.


 나는 주문이 없을 때면 전자책을 켜고 1분 남짓한 틈새를 채우며 조급한 마음을 달래곤 하는데, 그때 붙잡은 책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 책에 내 혼과 정신이 뒤집혀서 펄펄 끓는 용광로의 쇳물처럼 우악스러운 모습을 취했다.


 젊은 날에 어머니를 잃은 것, 기묘할 정도로 냉소적이고 무던한 주인공의 모습에 오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아르바이트생 치고 거창하다 싶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와 함께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때 주문이 쏟아졌다. 그런데 평소 아무렇지 않았던 주문소리들이 지독하게 썩어가는 하수구의 음식물 찌꺼기처럼 역겹고 더럽게 느껴졌다. 나는 진짜로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내 꼴에 대한 한심 함이기도 했지만, 용기 없는 예술가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가면을 쓴 유명인의 추잡스러운 정사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 것 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 산에 가야겠다.


산,

나에게 산은 어느 순간 아버지요.

또 어머니이고.

부처이면서 내 살점과 혈액 같은 것이자.

문명의 이기적인 발전만큼이나 편안한 내 매트릭스 같이 포근한 무엇이다.


나는 서둘러 잠에 들었다.

일어난 후에는 밀린 빨래들을 오랜만에 내려 쬐는 햇빛아래 널어놓고, 도망치듯 인왕산에 올랐다.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뒷길이 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시린 물을 한 통 사들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급하게 산을 올랐다.


인왕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 중턱에 기차바위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나는 40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곳에 도착하여 잠시 물을 좀 마시며 돌 덩어리 위에 퍼질러 앉아있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급하게 담아내며.


그때 노랗게 브릿지를 먹인 8살쯤 되어 보이는 야무진 여자아이와 6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올라온 아이들의 엄마가 똘망진 딸과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정상에 가야 해?”


나는 앞선 대화를 듣지도 못했지만, 그 호기롭고 총명한 질문에 따끔하며 혼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 올라가서 사진 찍고 싶어, 너 얼른 안 오면 엄마 두고 그냥 간다? “


하하 아이들의 엄마가 하는 대답은 지극히도 당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떠한 가치판단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여자아이의 마음에 대해 커다란 존경을 보낼 뿐이었다.


“근데 난 가기 싫은데, 내가 안 가면 설빙이랑 떡볶이도 안 사줄 거야?”


아이는 이내 불안한 듯 엄마에게 되물었다.


“시간이 없어 엄마 빨리 정상 갔다가 언니 데리러 가야지, 빨리 가자 동생이랑 그냥 먼저 간다?”


“얼마나 걸리는데??”


“10분 정도 걸리지! “


”지금 몇 시 몇 분 몇 초인데?? “


”1시 10분”

엄마가 짜증스러운 기색을 살짝 드러내며 초 단위는 생략한 채 대답했다.


“타이머 켜줘 진짜 10분이면 가는 거지?”


“대신 네가 좀 서둘러야 돼”

 나는 한번 더 웃음이 터졌다. 조건을 거는 어른에게, 아이는 더 거센 조건들을 걸어대며 어른이 얼마나 치사한 존재인지 거울처럼 비추어 보여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는 네가 그렇게 조건적으로 행동하는 게 너무 싫어 “하고 말했지만, 아이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엄마가 먼저 조건적으로 그랬잖아! “


아이의 말에 틀린 것이 없어 보였다. 그 아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떡볶이였을까? 설빙이었을까? 아니면 정상까지 힘을 내어서 갈 수 있게 마음을 헤아리고 응원해 주는 엄마의 말이었을까.


나는 그것의 답을 알 수 없지만, “대신 도착하면 나중에 떡볶이 사줘야 해”하면서 엄마와 동생보다도 한참을 앞질러 정상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떡볶이나 설빙 같은 물질적인 것보다 늘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와 애정 어린 말을 원하는 어린이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요구한다고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물질적인 것으로 때로는 만족하는 시꺼먼 어른인 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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